
이재용 부회장 구속영장 기각에 삼성 "최악 면했다"[더팩트ㅣ이성락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 결정이 내려지자 초긴장 상태로 대기했던 삼성은 '최악은 면했다'며 일시적 안도감을 나타내는 분위기다. 다만 사법 리스크와 경영상 불확실성이 여전히 부담으로 남아 있어 안팎의 긴장감은 유지되고 있다. 삼성은 영장 기각 직후 입장문을 통해 향후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수사심의위) 소집 결과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 애초부터 무리수였나…이재용 구속영장 기각
서울중앙지법은 9일 오전 2시쯤 경영권 부정 승계 의혹으로 수사를 받아온 이재용 부회장 등 삼성 전·현직 고위 임원 3명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원정숙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기본적 사실관계는 소명됐고, 검찰은 그간의 수사를 통해 이미 상당 정도의 증거를 확보했다고 보인다"며 "불구속재판의 원칙에 반해 피의자들을 구속할 필요성 및 상당성에 관해 소명이 부족하다"고 기각 이유를 설명했다.
법조계에는 '사실관계 소명' 대목에 주목하고 있다. 1년 반 동안 수사를 바탕으로 제출된 400권, 20만 쪽 분량에 달하는 검찰 수사 기록에서 사실관계 소명 외 '범죄 소명'을 위한 결정적 증거(스모킹건)를 찾을 수 없었다는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삼성도 "법원의 기각 사유는 기본적 사실관계 외 피의자들의 책임 유무 등 범죄 혐의가 소명되지 않았고, 구속 필요성도 없다는 취지"라며 법원 판단을 반겼다.
이 때문에 검찰이 치명상을 입게 됐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재용 부회장이 수사심의위 판단을 받겠다고 나선 지 이틀 만에 이를 무력화할 수 있는 구속영장 청구라는 승부수를 던졌지만, 결과적으로 무리한 수사 과정을 비판하는 여론의 역풍을 맞게 됐다. 이번 결과를 통해 그동안 '혐의 소명'을 자신했던 검찰은 기업을 압박하기 위해 무리하게 구속하려 했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삼성, 영장 기각에 일시적 안도 후 '다시 긴장'
'총수 부재'라는 초유의 사태를 막은 삼성은 크게 안도하는 분위기다. 앞서 재계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미중 무역 갈등, 한일 갈등 등 대외 악재 속에서 '총수 부재'에 따른 충격까지 떠안게 되면, 삼성의 경영상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 상태였다. 이전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 수감 당시 상황을 비춰봤을 때 대규모 투자 또는 인수합병(M&A) 등이 원활히 진행되지 않아 글로벌 기업과의 미래 준비 경쟁에서 뒤처질 것이라는 걱정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영장 기각 결과를 받아든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았지만, 삼성은 다시 '긴장 모드'에 들어갔다. 급한 불을 껐을 뿐, 재판 장기화 등 기업을 흔드는 사법 리스크 우려가 완전히 해소된 건 아니다.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등 기소 의지를 분명히 드러낸 터라 장기전을 예상할 수밖에 없다. 검찰이 영장 재청구에 나설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검찰은 "영장 재판 결과와 무관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향후 수사에 만전을 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우선 삼성은 '밀린 현안' 해결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대외 악재로 인해 삼성의 주력 사업 실적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앞서 "신사업에 과감하게 도전하겠다"며 미래 준비에 박차를 가했던 이재용 부회장은 휴식 없이 곧바로 정상 업무에 돌입했다. 재계 관계자는 "이재용 부회장은 다시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하며 경영 보폭을 넓힐 것"이라며 "최근 준법 경영과 시민사회와의 소통을 강조해왔던 만큼, 이와 관련한 활동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 구속영장 기각에 수사심의위원회 판단 주목
삼성은 사업 현안 해결과 별개로 곧 열릴 수사심의위 준비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용 부회장 측 변호인은 지난 2일 검찰 외부 전문가에게 기소 타당성에 대한 판단을 구하고 싶다며 수사심의위 소집을 요청했고, 서울중앙지검 검찰시민위원회는 오는 11일 수사심의위 소집 여부를 결정할 부의심의위원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부의심의위원회는 검찰시민위원회 중 무작위 추첨된 15명으로 구성된다.
이날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은 향후 수사심의위 기소 판단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 입장에서는 소집 여부조차 안갯속에 빠졌던 수사심의위 소집 절차가 예정대로 진행되면서 반격의 기회가 열린 셈이다. 승기를 잡은 삼성은 이재용 부회장의 무혐의 입증을 위한 준비에 만전을 기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용 부회장 측 변호인은 "향후 검찰 수사 심의 절차에서 엄정한 심의를 거쳐 수사 계속과 기소 여부가 결정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물론 수사심의위에서 불기소를 의결하더라도 검찰이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영장 기각에 따른 역풍 등을 고려할 때 검찰이 의결 내용을 무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까지는 검찰이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한 이상 기소는 불가피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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