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형 전 대법관 "삼성 준법경영 의지 확인…이재용 만나 독립성 확약받았다"
  • 이성락 기자
  • 입력: 2020.01.09 14:33 / 수정: 2020.01.09 14:33
삼성 준법감시위원장을 맡은 김지형 전 대법관이 9일 오전 11시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에 있는 법무법인 지평 사무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서대문구=이성락 기자
삼성 준법감시위원장을 맡은 김지형 전 대법관이 9일 오전 11시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에 있는 법무법인 지평 사무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서대문구=이성락 기자

삼성 준법감시위 시동…위원장에 김지형 전 대법관[더팩트ㅣ서대문구=이성락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나 '준법감시위원회'(준법감시위)의 자율성과 독립성에 대해 확약을 받았고, 준법경영 의지를 확인했다."

삼성 준법감시위원장으로 내정된 김지형 전 대법관은 9일 오전 11시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에 있는 법무법인 지평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나조차도 삼성이 준법경영에 대한 진정한 의지가 있는지 의심을 했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독립적 외부 인사들로 구성된 준법감시위가 자율성·독립성이 보장된 상태에서 삼성 총수와 임직원들의 준법 여부를 감시하는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를 고려한 발언이다.

김 전 대법관은 고민 끝에 준법감시위원장을 수락한 배경에도 "삼성의 의지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 전 대법관은 "이재용 부회장의 형사재판에서 유리한 양형사유로 삼기 위한 면피용이라는 의심이 있었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역량 부족 등 이유로 준법감시위원장을 완곡히 거절했었다"며 "그러나 삼성의 개입을 배제하고 철저히 독립적으로 운영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김 전 대법관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판결을 많이 내린 진보 성향 법조인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삼성전자 백혈병 질환 조정위원장과 지난해 고 김용균 씨 사고 진상규명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서울고법 부장판사 등을 거쳐 노무현·이명박 정부에서 대법관을 지냈다.

김 전 대법관은 "삼성이 먼저 변화의 문을 열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며 "변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먼저' 변해야 한다는 것인데, 무엇이 계기가 됐든 삼성이 먼저 벽문을 열었다는 사실 자체가 변화를 향한 신호다. 진의에 대해 많은 의구심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런 불신을 넘어서는 것이 삼성의 과제이자, 준법감시위의 과제"라고 밝혔다.

이어 "삼성이 변화를 택한 타이밍이 썩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실패하더라도 뭔가를 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며 "삼성의 변화는 기업 전반의 변화로 이어질 것이다. 또 기업 전반의 변화는 사회의 변화로 연결된다. 위원회는 삼성과 우리 사회에 가로막힌 벽을 부수고 서로 소통하는 채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김지형 전 대법관은 앞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나 준법감시위의 자율성과 독립성과 관련해 확약을 받았다고 말했다. /더팩트 DB
이날 김지형 전 대법관은 "앞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나 준법감시위의 자율성과 독립성과 관련해 확약을 받았다"고 말했다. /더팩트 DB

이날 김 전 대법관은 준법감시위에서 활동할 위원들의 명단을 공개했다. 법조계, 학계, 시민사회 등 외부위원을 압도적 다수로 배정하겠다는 기준 아래 △고계현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사무총장 △권태선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 △김우진 서울대 경영대학원 교수 △봉욱 변호사 △심인숙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을 선정했다. 이는 준법감시위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받기 위한 기본적인 조직 구성이다. 삼성 내부에서는 이인용 삼성전자 사회공헌업무 총괄 고문이 참여한다. 이 역시 삼성 내부의 결정이 아니라 김 전 대법관이 직접 선정했다.

김 전 대법관은 "위원회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위원장 포함 전체 내정자 7명 중 6명을 외부위원으로 꾸렸다. 영역별 전문성과 우리 사회의 대표성도 확보하려고 했다"며 "기업의 준법⋅윤리경영을 향한 유의미한 변화와 진전을 바라는 관점에서 합리적인 비판과 균형 잡힌 견해를 견지한 인물로 채웠다"고 설명했다.

김 전 대법관과 이들 위원은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생명, 삼성SDI, 삼성전기, 삼성SDS, 삼성화재 등 삼성 주요 계열사 7곳과 협약을 체결하고 이사회 결의를 거친 후 활동을 시작하기로 했다. 본격적인 출범은 이달 말 이뤄질 전망이다. 준법감시위는 회사 이사회 산하 등 내부에 속한 기구가 아니며, 관계사들에 대한 준법감시 업무를 위탁받아 자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예정이다.

김 전 대법관이 제시한 준법감시위 운영 원칙은 △주요 의결 또는 심의사항에 법을 위반할 위험요인이 없는지 사전 모니터링·사후 검토 △법 위반 위험요인을 인지할 경우 조사 및 보고 시행 △법 위반 사항 확인 후 시정 및 제재 요구 △준법감시 프로그램 및 시스템이 전반적이고 실효적으로 작동하도록 하는 구체적인 실행 방안 구현 등이다.

김 전 대법관은 "준법감시위는 삼성의 최고경영진이 기업가 정신을 올바르게 발현해내고, 그럼으로써 위대한 글로벌 기업으로 더욱더 뻗어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며 "이를 위해서 조직감시위는 삼성 최고경영진의 법 위반 리스크를 철저히 관리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기자간담회 현장에는 준법감시위의 활동 범위, 법 위반 사항 발견시 검찰 고발 여부, 기존 컴플라이언스와의 차별성 등과 관련한 취재진의 질문이 쏟아졌다. 이에 김 전 대법관은 "준법감시위가 공식 출범하면 위원들과 논의 후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설명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은 준법감시위 운영과 관련해 준법감시위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존중한다며 글로벌 수준의 준법 시스템이 구축될 수 있도록 이사회 의결 등 필요한 절차를 신속히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더팩트 DB
삼성은 준법감시위 운영과 관련해 "준법감시위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존중한다"며 "글로벌 수준의 준법 시스템이 구축될 수 있도록 이사회 의결 등 필요한 절차를 신속히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더팩트 DB

이처럼 삼성이 새해 첫 화두로 준법경영을 강조하고 또 이를 실현할 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적극적인 행동에 나선 건 국정농단 관련 뇌물공여와 같은 일의 재발을 막는 방법을 알려달라는 재판부의 주문에 답을 하기 위함이다. 앞서 이 부회장 파기환송심을 맡은 재판부는 삼성에 총수도 무서워할 준법감시제도가 작동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그룹 차원에서 정치 권력의 뇌물 요구에 응하지 않을 수 있는 답을 가져오라고 주문했다.

이 부회장도 지난 2일 화성 반도체 공장에서 새해 첫 업무를 시작하며 "잘못된 관행과 사고를 과감히 폐기하자"고 말했다. 이어 "우리 이웃, 우리 사회와 같이 나누고 함께 성장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자 100년 기업에 이르는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며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의지를 강조했다.

삼성은 이날 김 전 대법관의 기자간담회 이후 준법감시위 운영과 관련해 "준법감시위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존중한다"며 "글로벌 수준의 준법 시스템이 구축될 수 있도록 이사회 의결 등 필요한 절차를 신속히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rocky@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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