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케이뱅크에 이어 지난해 7월 카카오뱅크가 출범했지만 은산분리 규제에 발목이 잡혀 성장 속도가 점차 더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더팩트 DB |
인터넷은행 '메기효과', 정부 규제로 주춤…규제 완화 시급
[더팩트ㅣ서민지 기자] "금융 시장의 혁신은 물론 대한민국의 4차 산업 발전을 일으키는 메기 역할을 할 것입니다."
국내 인터넷전문은행 1호 케이뱅크가 출범 당시 던진 출사표다. '메기효과'는 미꾸라지 어항에 천적 메기를 넣으면 미꾸라지들이 살아남기 위해 움직이면서 활기를 찾는 현상을 말한다.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적절한 위협과 자극이 필요하다는 비유인 셈이다.
메기효과는 인터넷은행 출범 당시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 옆에 따라다니곤 했다. 경직된 은행권 문화에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실제 인터넷은행은 등장부터 그야말로 열풍을 일으켰다. 케이뱅크는 4일 만에 가입자 수 10만 명을 끌어들였다.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의 힘을 받은 카카오뱅크의 열풍은 더욱 거셌다. 카카오뱅크는 약 5일 만에 가입자 수가 100만 명을 돌파했다.
큰 열풍을 예상하지 않던 은행권은 다소 긴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인터넷은행이 예금금리는 높게, 대출금리는 낮게 제공하자 시중은행들도 줄줄이 금리를 조정했다. 기대했던 메기효과가 효과를 발휘하는 듯했다.
하지만 인터넷은행은 갈수록 힘을 잃는 모습이다. '은산분리' 규제에 발목이 잡혔기 때문이다. 은산분리는 산업자본이 의결권 있는 은행 지분을 최대 10%(의결권은 4%) 보유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이다. 인터넷은행은 ICT(정보통신기술) 기업이 주도적으로 끌고 가야 하지만 은산분리가 족쇄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은행은 은산분리 규제에 따라 지분비율에 맞춰 증자를 진행해야 하는 만큼 주주 간 협의가 뒷받침돼야 한다. 은산분리 규제가 완화되면 KT(케이뱅크), 카카오(카카오뱅크)가 증자에 적극 나서 실탄을 확보하면 되지만 현 상황에서는 일부 주주사가 증자를 거부할 경우 새로운 투자자를 유치하는 등 다른 방안을 찾아야 한다.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는 은산분리 규제로 유상증자 때마다 어려움을 겪고 있다. /더팩트 DB |
실제 케이뱅크는 지난해 9월 10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진행했을 때 일부 주주사가 불참 의사를 밝혀 100억 원의 실권주가 발생해 새 주주사를 유치했다. 케이뱅크 주주사는 20곳으로 주요 주주사 KT, 우리은행, NH투자증권, 한화생명, GS리테일, KG이니시스, 다날 외에는 투자 여력이 충분하지 않다. 케이뱅크는 자본금 한계에 부딪히자 지난해 7월에 이어 지난달 일부 대출 상품 판매를 잠시 중단하기도 했다.
금융사인 한국투자금융지주를 최대주주로 두고 있는 카카오뱅크는 그나마 상황이 낫다. 주주가 9곳으로 케이뱅크에 비해 주주사 설득이 쉬운 편이다. 하지만 카카오뱅크도 지난 4월 진행한 유상증자에서 한국투자금융지주가 지분율(당시 58%)보다 적은 금액을 출자해 실권주가 발생했고 카카오는 이를 우선주로 전환해 증자를 마무리 지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인터넷은행 입장에서는 쏟아지는 비판이 억울할 수밖에 없다. 당국이 '중금리 대출 확대'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현재 자본으로는 모든 요구를 맞춰줄 수 없기 때문이다. 인터넷은행은 중금리 대출이 활성화되지 않을 경우 "메기 효과가 실종됐다"는 지적을 받고 대출을 늘릴 경우 "건전성에 빨간불이 들어왔다"는 우려에 휩싸인다.
당초 인터넷은행 출범 전만 해도 은산분리 완화가 곧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에 업계가 들썩였다. 그러나 은산분리 완화는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1년 넘게 답보 상태를 이어가고 있다. 그나마 최근 금융 당국이 은산분리 규제 완화를 다시 논의한다고 전해져 업계 안팎에서 기대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금융 당국은 인터넷은행이 은행권 관행을 뒤집고 혁신을 일으킬 것을 주문해왔다. 하지만 1년이 지난 현재까지 인터넷은행이 처한 환경은 달라지지 않고 있다. 여건은 마련해주지 않은 채 주문만 한 것이다.
금융 혁신을 위해서는 은산분리 규제 완화가 뒤따라야 한다. 여건이 마련되지 않아 동력을 잃어버린 '메기'는 금세 기존 은행과 다를 바 없는 '미꾸라지'로 전락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