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동계올림픽 이후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과 미국 사이를 어떻게 중재해 나갈지 주목된다. 지난 25일 폐회식에서 문 대통령이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인사하고 있다. 왼쪽은 이방카 트럼프 백악관 보좌관./임영무·남윤호기자 |
[더팩트 | 청와대=오경희 기자]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화는 꺼졌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평화의 불씨'를 살리는 데 총력을 기울일 전망이다. 북·미 간 '중재외교'에 모든 역량을 쏟아부을 것으로 보인다. "기적같이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게 문 대통령의 의지다.
평창올림픽 기간 격무에 시달린 문 대통령은 27일 하루 연가를 내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그러나 어깨는 무겁다. 남북대화와 북미대화, 두 개의 바퀴를 균형 있게 굴려야 하기 때문이다. 북미 양측은 대화 필요성에는 공감대를 이뤘으나, '전제조건'에 합의를 이룰지 가늠할 수 없다. 4월로 예상되는 한미군사훈련을 고려하면, 물리적 시간은 불과 한 달 가량 남았다.
◆ "북미 대화 용의 있다" 북, 대화 손짓
평창 올림픽 기간 '북미 대화' 가능성은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제1부부장과 만남에서 사실상 남북정상회담 제안을 받자,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전제조건을 달았다. 그 '여건'은 '북미 대화'를 가리켰다. 김여정 제1부부장은 북 고위급 대표단원으로서 개회식에 참석했다.
김여정 제1부부장의 바통은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이어받았다. 김 부위원장은 지난 25일 폐회식 참석 차 북한 고위급 대표단장으로서 방남했다. 대남 정책을 총괄한다는 점에서, 북한이 남북관계를 개선하려는 뜻으로 풀이됐다.
김영철(오른쪽)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27일 출경을 위해 경기 파주시 남북출입사무소로 들어서고 있다. 왼쪽은 천해성 통일부 차관./남윤호 기자 |
실제 김영철 부위원장은 2박 3일간 최소 4차례에 걸쳐 고위급 접촉을 가졌다. 방남 첫날, 평창 모처에서 문재인 대통령 회담하고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만찬을 가졌다. 26일에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남관표 안보실 2차장, 천해성 통일차관,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오찬했다. 북한으로 귀환하는 27일 오전에는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서훈 국정원장 등과 조찬을 했다. 여기에 비공식 일정이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김 부위원장은 문 대통령과 회담에서 "북미 대화를 할 충분한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정의용 실장과의 오찬에서도 같은 뜻을 거듭 밝히며, "미국과의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고 강조했다고 청와대 핵심 관계자가 전했다.
◆ "대화 문턱 낮춰야" 관건은 美 설득
관건은 대화의 '조건'이다. 미국은 '비핵화'를 내걸었고, 북한은 이를 거부해 왔다. 북한이 대화의 의지를 보였지만, '비핵화를 위한 대화'에는 나서지 않을 수 있다.
한반도 운전석에 앉은 문 대통령은 중재안을 제시했다. 북한에는 비핵화를 위해 취해야할 방법론을 구체적으로 전달했다. 미국에는 "대화의 문턱을 낮춰야 한다"고 26일 류옌둥 중국 국무원 부총리와 접견에서 밝혔다. 즉각적인 비핵화 협상을 시작하기엔 난관이 적지 않은 만큼, 북·미 간 사전에 입장차를 좁혀야 한다는 게 문 대통령의 구상으로 읽혔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27일 김영철 부위원장이 문재인 정부의 북핵 핵심 담당자들과 일련의 회담을 가진 것과 관련해 "우리는 중매를 서는 입장이기 때문에 양측의 입장을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북쪽의 대화 파트너(미국)에게 신뢰를 쌓는 일이 굉장히 중요하고 북측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들어보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6일(현지 시각) 북미 대화와 관련해 "적절한 조건에서만 대화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이 관계자는 "대화를 시작하려면 서로 간 분위기를 맞춰가야 하지 않겠느냐"며 "그런 차원에서 양쪽과 양적 대화를 할 방안을 얘기해 봤다"고 언급했다.
◆ 트럼프와 통화하고, 특사 파견할 듯
지난 25일 올림픽 폐회식에서 이방카 트럼프 미국 백악관 보좌관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통일선전부장)이 박수를 치고 있다. /임영무 기자 |
일단 문 대통령은 북미 대화의 장을 열기 위한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만약 4월 초 한·미 연합 군사훈련이 재개된다면, 대화의 모멘텀이 끊길 수 있다. 이를 위해 예비 대화 분위기 조성에 나설 전망이다.
우선 문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조만간 통화를 할 것이란 관측이다. 그러나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방카 트럼프 백악관 보좌관과 김영철 부위원장이 왔다갔고, 우리도 관련 메시지를 취합해 분석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그러한 분석이 이뤄지면 우리 동맹국들, 미국 등에도 상황을 설명해야 한다"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이어 "미국과 얘기는 여러 루트를 통해서 할 수 있다"며 정상 간 통화가 아닐 가능성도 열어뒀다.
남북 대화 국면을 이어가기 위한 차원으로, 대북 특사 파견 추진 가능성도 점쳐진다. 김정은 위원장이 김여정 부부장을 '특사 자격'으로 파견한 데 대한 '답방' 차원이란 명분이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27일 <더팩트>에 "허심탄회한 대화가 앞으로 지속되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한국정부가 북한에 고위급 대표단과 특사를 파견해 후속 대화를 이어갈 차례"라며 "4월경에 한미연합군사훈련이 재개되기 전, 즉 3월 중에는 한국 정부가 북한에 고위급 대표단이나 특사를 파견해 김정은을 만나 북한의 새로운 입장을 보다 정확히 파악해야하고 남북한 이견을 더욱 좁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