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과 광해, '투 트랙' 외교 전략
입력: 2018.02.21 08:39 / 수정: 2018.02.21 10:03

문재인(왼쪽) 대통령은 취임 후 투 트랙 외교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평가다. 사진은 문 대통령이 지난 9일 평창 동계올림픽 리셉션 행사에 참석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아베 신조(오른쪽) 일본 총리와 대화를 나누며 이동하던 당시. /청와대 페이스북
문재인(왼쪽) 대통령은 취임 후 '투 트랙' 외교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평가다. 사진은 문 대통령이 지난 9일 평창 동계올림픽 리셉션 행사에 참석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아베 신조(오른쪽) 일본 총리와 대화를 나누며 이동하던 당시. /청와대 페이스북

북핵, 사드, 위안부, 美 보호무역주의 등 실리 외교 구사

[더팩트 | 청와대=오경희 기자] 조선의 15대 왕 광해(1608년 재위)는 사멸하는 명나라 대신 신흥 강국 후금을 인정하고 '등거리 외교(중립 외교)'를 펼쳤다. 위험에 처한 명은 조선에 지원군을 요청했으나, 광해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는 1592년 명과 일본의 전쟁에 낀 임진왜란으로 망가진 조선을 또다시 전쟁에 빠지게 하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약소국의 왕이었던 광해는 '실리'를 쫓았다.

한반도의 운명은 400여년 후에도 반복된다. 한국은 북핵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과 일본, 중국, 러시아 등 강대국 사이에 놓여 있다. 그래설까. 문재인 대통령의 외교 전략은 광해와 닮아 있다. 강대국들과의 관계에 있어 '투 트랙(twoㅡtrack)' 전략을 구사한다. 안보와 통상 등 사안별 접근을 분리해 접근하겠다는 것이다. 즉, '실리 외교'란 분석이다.

대표적인 게 북핵 문제다. 취임 후 문 대통령은 '제재와 대화'라는 북한 핵 포기 전략을 펴왔다. 문 대통령은 한·미·일 등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와 압박 국면에 동참하며 강경한 입장을 피력했지만, '북한 스스로 대화 테이블로 나와야 한다'고 일관된 메시지를 내고 있다. 이는 최근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복원된 남북 대화 국면에서도 읽힌다. 전임 박근혜정부가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어렵다'는 입장이었던 것과는 큰 틀에서 기조가 변한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14일 오후(현지시각) 시진핑(왼쪽) 국가주석에게 옥으로 만든 바둑알과 바둑판을 선물 받고 있다./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14일 오후(현지시각) 시진핑(왼쪽) 국가주석에게 옥으로 만든 바둑알과 바둑판을 선물 받고 있다./청와대 제공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로 갈등의 골이 깊었던 대중(對中) 관계 해법도 같았다. '구동존이(求同存異,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같은 점을 찾는다)'를 취했다. 한·중 양국은 지난해 10월 31일 '양국 간 협의 결과'를 발표하며, 사드에 대한 서로의 인식을 인정하되, 경제 통상 등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회복하기로 합의했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는 "입장은 입장이고, 현실은 현실이다"고 평가했다.

일본과는 '위안부 문제'가 뇌관이다. 일각에선 한·미·일 안보 협력에 장애물이 될 가능성을 우려한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이 역시 '역사와 외교'를 분리했다. 지난 9일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 참석 차 방한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문 대통령은 세 번째 정상회담에서 미래지향적인 관계와 협력을 약속하면서도 위안부 문제에 대해선 온도차를 보였다.

문 대통령은 "역사는 역사대로 진실과 원칙을 훼손하지 않고 다뤄갈 것"이라며 "동시에 저는 역사문제 해결과는 별도로 한·일간의 미래지향적인 협력을 위해 정상적인 외교관계를 회복해 나갈 것"이라고 의중을 나타냈다. 그간 문 대통령은 '위안부 문제가 해결됐다는 데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오른쪽) 일본 총리가 지난해 9월 7일 오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학내 마련된 양자회담장에서 정상회담을 갖기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오른쪽) 일본 총리가 지난해 9월 7일 오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학내 마련된 양자회담장에서 정상회담을 갖기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청와대 제공

가장 최근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를 '투 트랙'으로 대처했다. 문 대통령은 철강·전자·세탁기 등 미국의 한국산 제품에 대한 전방위적인 수입규제 확대와 관련해 지난 19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불합리한 보호무역 조치에 대해서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위반 여부 검토 등 당당하고 결연히 대응해 나가고, 한·미 FTA 개정 협상을 통해서도 부당함을 적극 주장하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문 대통령의 통상 현안과 관련한 발언으로 가장 강도 높은 수위였다. 특히 남북 대화 흐름을 북·미 대화로 이어가려 애쓰던 상황에서 나온 메시지라 이목이 쏠렸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문재인 대통령의 생각은 안보의 논리와 통상의 논리는 다르다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지난 10일 문 대통령은 북한의 정상회담 제안에 대해 사실상 북·미대화의 유의미한 진전을 선결조건으로 제시했다.

향후 문 대통령의 외교 전략 또한 동일선상에 놓일 것으로 전망된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20일 기자들과 만나 "어제 '안보는 안보대로 통상의 논리는 통상대로' 취지의 대통령의 말씀이 있었다. 이 부분과 관련해 그동안 지난해 말 이후로 우리 정부가 보여준 모습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면 된다. 일종의 투 트랙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면서 "이 부분은 우리만 그런 게 아니라 미국 측의 입장도 동일하지 않나. 튼튼한 한미 동맹 바탕에서 현실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경제 통상 문제는 국익 극대화 관점에서 볼수 있다. 이러한 방침은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갈 것"이라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7일 청와대에서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 한미 FTA는 좋은 협상이 아니었다며 (재협상을 통해) 자유롭고 공정하며 호혜적인 무역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압박 수위를 높였다. /청와대 제공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7일 청와대에서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 "한미 FTA는 좋은 협상이 아니었다"며 "(재협상을 통해) 자유롭고 공정하며 호혜적인 무역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압박 수위를 높였다. /청와대 제공

'중국 등 한국과 교역 파트너들과의 외교에서도 같은 대응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 이 관계자는 "어느 나라든 통상 문제와 관련해 제도적인 변화를 통해 그와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그런 부분은 국가를 막론하고 '동일한 원칙'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미 양국은 정상간 통화 일정을 조율 중인 가운데, 통상 문제가 거론될지 주목된다. 오는 25일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딸 이방카 트럼프 백악관 선임고문이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에 참석할 예정이다.

ar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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