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설' 미우라. 미우라는 1990년대 일본을 대표하는 스트라이커였다. 2012년 자선경기에 출전한 미우라. /게티이미지 |
'축구 팔순' 미우라의 끝없는 열정
[더팩트 | 심재희 기자] "젊은 친구들과 공 차는 것 자체가 즐겁다!" 지난해부터 다시 본격적으로 공을 차기 시작한 필자가 최근 또래 친구들을 만나면 곧잘 하는 이야기다. 일주일에 한 번 풋살, 한 번 축구를 하면서 체력도 좋아졌고 살도 많이 빠졌다. 개인적으론 '건강'이라는 두 글자보다 더 의미 있는 것이 바로 '만족'이다. 플레이의 수준을 떠나서 공을 차면서 여전히 즐거움을 느끼고, 머릿속에 그린 장면을 실제로 몸으로 펼쳐보이며 얻는 '쾌감'이 정말 좋다. '축구'를 업으로 살면서 잠시 잊었던 축구의 진짜 감동을 다시 확인하며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어서 매우 행복하다.
각설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다름 아닌 이웃나라 일본의 '51살 현역' 축구 선수 때문이다. 미우라 가즈요시. 1990년대 축구 좀 봤다는 한국 사람이라면 곧바로 알아챌 수 있는 이름이다. 일본을 대표했던 스트라이커. 항상 아래로 여겼던 일본이 무서운 발전과 함께 한국을 위협하게 했던 그 선수. 그런데 최근 그가 전해온 뉴스가 입을 다물 수 없게 만든다. 이제는 '추억의 선수'로 떠올려지는 미우라가 내년에도 현역으로 뛴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다.
1967년생. 미우라와 나카야마는 우리나라 나이로는 이미 50살을 넘었다. 만으로 따져도 올해 51살이 된다. 2018년에도 선수 활약을 예약하면서 '50살 현역'을 이어갈 전망이다. 긴 설명이 필요하겠나. 요즘 흔히 말하는 '대.다.나.다'라는 표현이 곧바로 떠오른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미우라를 참 싫어했다. 학창 시절 '팀 코리아'를 열렬히 응원했던 필자는 일본의 성장세를 애써 부인하면서 '한일전 필승 모드'를 발동했다. 하지만 일본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머리카락을 곱게 반으로 가른 미우라는 왼발 오른발 가리지 않고 헛다리 드리블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선진 축구'를 보였다. 아시아에서도 2류라고 생각했던 일본 축구가 오랜 투자와 J리그 출범으로 '아시아 1류' 한국을 위협했고, 1990년 중반에는 한국의 어깨 위에서 세계 수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중심에 바로 미우라가 있었다.
'브라질 유학파'인 미우라는 '한국 킬러'로 통했다. A매치에서 한국을 상대로 3골, 북한을 상대로 3골을 뽑아냈다. '도하의 기적'으로 마무리 된 1994 미국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한국을 상대로 결승골을 넣은 장면은 결코 잊을 수가 없다. 화려한 커리어를 자랑하는 그는 뜨거운 박수를 받으며 현재 2부리그에서 뛰고 있다. 미우라는 J2 요코하마FC 소속으로 J리그 최고령 득점 기록을 갈아치워가며 다음 시즌에도 선수 생활을 이어갈 예정이다.
해외 진출, 풋살 전향, 부상 은퇴, 현역 복귀, 그리고 50살 현역. 그야말로 산전수전 다 겪은 미우라. 전성기만큼 화려하진 않지만 여전히 축구 열정을 불태우며 열심히 달리고 있다. 1990년대 일본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빠르게 달리며 날카로운 슈팅을 날리던 모습은 더이상 없을지 모르지만 현재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며 '축구 팔순 잔치'를 벌이고 있다. 그래서 그의 무한도전이 정말 대단하고 또 부럽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일본 축구 전설들의 '부러운' 무한도전을 바라보며 스스로 다짐해 본다. '축구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그들처럼 나 역시 힘 닿는 데까지 열심히 뛰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