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방한 뒷얘기…콜라와 독도새우
입력: 2017.11.09 08:56 / 수정: 2017.11.09 09:04

7일 방한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서 국빈만찬을 갖고 건배를 하고 있다./청와대 제공
7일 방한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서 국빈만찬을 갖고 건배를 하고 있다./청와대 제공

[더팩트 | 청와대=오경희 기자] 한바탕 폭풍우가 지나간 듯했다. 한반도 안보 위기의 키를 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7일 1박2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았다. 청와대는 일찌감치 '국빈' 맞이에 팔을 걷어붙였다. 내외신 기자들도 이른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였다.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의 한마디와 행동, 행선지 하나하나가 뉴스거리였다.

이날 오전 5시, 청와대 앞길과 인근은 통제됐다. 광화문 길목부터 줄지어 선 경찰들의 행렬이 눈길을 끌었다. 청와대 프레스센터인 춘추관으로 향하는 초입에서도 검문검색을 강화했다. 기자들이라고 예외는 없었다. 신분을 꼼꼼히 확인했다. 청와대 출입증은 밖으로 유출할 수 없기 때문에 일부 기자들은 자신을 '증명'하느라 애를 먹었다며 우스갯소리도 했다.

◆ 내외신 기자들 집결…文대통령, 트럼프 마중 나간 까닭

물리적 시간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체류 기간은 24시간 남짓이지만, 실제 스케줄표는 빼곡했다. 첫날부터 쉼없는 일정이 예정돼 있었다. 이를 취재할 기자들의 마음도 분주했다. 그러나 모든 일정은 시작 전까지 엠바고(보도를 일정 시간 미루는 것)가 걸렸다. 청와대 루트가 아닌 외신 발과 경찰 발 등에서 새 나온 정보와 보도로 일부에선 볼멘소리도 나왔다. 속칭 '물 먹는 경우'이기 때문이다.

당일 아침엔 '특별한 일정'이 추가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평택 주한 미군기지인 '캠프 험프리즈'에 먼저 내려가 트럼프 대통령을 맞기로 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첫 공식 일정이기도 했다. 당초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청와대 공식 환영식 행사에서 트럼프 대통령 내외를 맞이할 계획이었다. '파격 영접'이란 평가가 나왔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중 한국에 머무는 시간이 일본과 중국보다 짧은 1박2일이라는 점을 의식한 조치란 해석이 뒤따랐다. 문 대통령은 '국빈만찬'과 별도로 기지 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오찬도 함께하기로 했다. 기자들은 "두 끼나 먹냐"며 농담 반 진담 반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 일본서 '와규' 먹은 트럼프 대통령, 뭘 먹나…고기? 와인?

트럼프 대통령 방한을 맞은 국빈만찬 메뉴./청와대 제공
트럼프 대통령 방한을 맞은 '국빈만찬' 메뉴./청와대 제공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일정 중 메인 가운데 하나가 '국빈 만찬'이었다. 양국 간 신뢰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무대이기 때문이다. 특히 '만찬 메뉴'가 이벤트이기도 하다. 어떤 음식을 접대할지 방한 전부터 관심을 끌었다. 고기를 좋아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입맛을 고려하고, 알코올 의존증으로 사망한 형 때문에 술을 먹지 않기에 콜라로 건배 제의를 할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만찬 예정시각은 오후 7시였다. 밤샘 근무는 따 놓은 당상이었다.

뚜껑을 열어보니 청와대는 양 정상의 기호에 맞춘 한식을 준비했다. '옥수수죽을 올린 구황작물 소반', '동국장 맑은 국을 곁들인 가자미 구이', '360년 씨간장으로 만든 소스의 한우갈비구이와 독도 새우 잡채를 올린 송이돌솥밥 반상', '산딸기 바닐라 소스를 곁들인 트리플 초콜릿 케이크와 감을 올린 수정과 그라니타'로 구성했다. 사전 예고 기사를 곧바로 작성했다.

자연스레 방한 직전 일본을 2박3일 간 공식방문했을 시 만찬 메뉴로 시선이 쏠렸다. 아베 총리는 일본의 고유한 맛보다 트럼프 대통령의 취향을 적극적으로 반영해 접대했다. 고기를 좋아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입맛에 맞춰 방일 첫날 점심에는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간 햄버거를, 저녁에는 와규 스테이크를 대접했다. 일부에선 "아베가 아예 작정을 하고 트럼프 접대를 하더라"며 비교하기도 했다.

◆ 헬기 소리=동선 알람, 기자들에 '비밀 통로' 열었다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공동기회견을 준비 중인 우리 측 윤영찬 국민소통수석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 문재인 대통령 전용헬기 이륙 장면, 회견 장 내 동시통역기./청와대=오경희 기자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공동기회견을 준비 중인 우리 측 윤영찬 국민소통수석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 문재인 대통령 전용헬기 이륙 장면, 회견 장 내 동시통역기./청와대=오경희 기자

연이은 일정에 기자들의 점심 시간도 짧아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오께 경기 오산기지에 도착한 뒤 평택기지를 방문했고, 이어 오후 2시 25분께 청와대에 도착해 공식 환영식과 단독·확대 정상회담, 친교 산책, 공동언론기자회견, 국빈만찬 등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두두두.'

대통령 전용 헬기가 뜨면 일정이 시작됐다는 의미였다. 대통령은 보안과 동선을 고려해 지방 일정인 경우 헬기를 이용한다. 오후 2시 30분께 헬기 도착 소리가 들렸다. 문 대통령이 평택 기지서 돌아왔고, 춘추관 2층 브리핑룸도 어느새 만석이 됐다. 양 정상회담 풀단(펜, 영상) 취재 기자들에겐 이날 '비밀 통로'가 열렸다. 브리핑룸 뒤로 청와대 직행 통로 이동이 허용됐다. 평소엔 이동 거리 상 청와대 참모진만 이용할 수 있다.

◆ 기자들의 꽃 '공동언론행사'…대기하며 '덜덜덜'

기자들로선 하이라이트는 양 정상의 공동기자회견이었다. 앞서 정상회담 결과물을 내놓는 자리다. 운 좋게(?) 내신 기자의 한 명으로 취재 기회가 주어졌다. 주변 기자들은 농담 삼아 '돌발 질문'을 권하기도 했고, "트럼프 대통령 실물 후기를 들려달라"는 등 관심을 가졌다. 회견엔 내외신기자 80여명이 참석했다.

브리핑룸 뒤 전용문을 통해 청와대로 들어간 뒤 이동 차량에 탑승해 대기했다. 타사 후배 기자는 "선배, 저 너무 떨린다"며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태연한 척 했지만, 속마음은 마찬가지였다. '혹시나 모를 질문 기회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란 막연한 기대와 설렘이 교차했다. 그러나 시간은 계속 흘러만 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린원(전용 헬기)에서 캠프 험프리즈를 공중에서 시찰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향후 일정도 모두 미뤄졌다. 청와대 관계자들도 발을 동동 굴렀다.

한 시간여 남짓 대기한 뒤 행사 장소인 영빈관에 도착했다. 중앙을 중심으로 좌우로 내외신 기자석이 배치됐고, 각 자리엔 동시 통역기가 놓였다. 사회를 맡은 윤영찬 국민소통수석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영어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행사를 준비했다.

◆ 여유 넘친 트럼프, 긴장한 文대통령…끝은 허탈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청와대 접견실에서 회담을 갖고 있다./청와대 제공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청와대 접견실에서 회담을 갖고 있다./청와대 제공

오후 5시 20분께 회견은 시작됐다. 양 정상은 중앙에 나란히 섰고, 한미 동맹의 굳건함을 재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이어폰 너머로 흐르는 동시 통역사의 호흡은 가빠졌고, 기자들의 노트북 타이핑 속도는 빨라졌다.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 내외신 기자들은 양 정상에게 각 2개의 질문을 번갈아 할 수 있었다. 질문자는 윤 수석과 샌더스 대변인이 임의로 지정키로 했다. 그런데도 짜여진 각본(?)처럼 탈 없이 진행됐다.

처음 눈앞에서 마주한 '강골'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 패권을 쥔 미국 대통령답게 '여유'가 넘쳤다. 내외신 기자들의 질문에도 당황하지 않고, 강조할 발언을 할 때 오른쪽 팔을 들어 손짓을 자주 활용했다. '코리아 패싱은 없다'고 묻는 국내 기자의 질문에도 곧바로 "없다"고 답했다. 후순위 질문이었지만 이를 먼저 꼬집어 말했고, 문 대통령의 발언에도 자신의 의견을 부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정부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상징색인 파란색 계열의 넥타이를 맸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미소를 지으며 경청하던 문 대통령은 잠깐 긴장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외신 기자로부터 질문을 받은 순간, "다시 한 번 얘기해달라고" 했다. 재차 질문에도 "이해가 잘 안가는 부분이지만"이라며 답을 이어갔다.

긴 대기 시간에 비해 무대는 금세 막을 내렸다. 긴장했던 마음마저 무색했고, 허탈했다. 몇몇 동료 기자도 비슷한 속내를 이야기 했다. 질문 기회를 잡지 못했던 데한 아쉬움과 회담 성과물 등 때문이었다. 일각에선 "코리아 패싱 없다는 한마디로 달래고, 사업가 출신의 트럼프 대통령이 무기랑 FTA 등 통상 협상하러 온 세일즈 맨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다.

◆ 박효신, 독도새우, 이용수 할머니… '국빈 만찬' 뒷 이야기

지난 7일 저녁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빈만찬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함께 참석한 멜라니아 트럼프는 검은색 시스루 드레스를 입고 나타나 시선을 끌었다. /청와대 제공
지난 7일 저녁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빈만찬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함께 참석한 멜라니아 트럼프는 검은색 시스루 드레스를 입고 나타나 시선을 끌었다. /청와대 제공

큰 일을 치른 두 정상은 오후 8시께 '국빈만찬'에서 친교의 시간을 가졌다. 화제가 된 사람은 가수 박효신 씨였다. 그는 만찬장에서 2014년 3월 발표한 <야생화>를 불렀고, 라이브 무대가 중계되면서 호평을 받았다. 이후 3년 8개월 만에 음원차트에 재등장했다.

이 노래는 문 대통령의 취임 100일 기념 기자회견 전, 영빈관 리허설 시간에도 흘러나왔던 노래다. 청와대 관계자는 "야생화는 케이팝의 대표적인 음악이고, 한미 양국이 고통과 어려움을 이겨내길 청하는 마음으로 이 노래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청와대는 전통주를 만찬주로 준비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예상대로 콜라로 건배제의를 해 눈길을 끌었다. 술잔에 담긴 '검은색 음료'를 놓고 기자들은 '와인인지, 콜라인지'를 문의하기도 했다.

뒤늦게 주목을 받은 만찬 메뉴도 있었다. 바로 '독도새우'다. 이는 국내 언론보다 일본 언론이 캐치했다. 한국과 독도 영유권 분쟁 중인 일본 언론은 '다케시마 새우(竹島エビ)'가 아닌 '독도새우'란 표현에 발끈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만찬장에 초대된 이용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와 포옹까지 했다. 일부 기자들은 "기자로서 일본 언론에 한방 먹었다"라고도 했지만, 한국으로선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됐다는 평가다. 국제사회에 '독도새우'가 유명세를 탔기 때문이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8일 국회 연설과 현충원 참배 일정을 마친 뒤 출국했다.

ar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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