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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곽 위원장과 만난 이만수 감독(왼쪽)은 '빅 스마일'이라는 그의 별명처럼 밝은 표정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 노시훈 기자 |
우리 시대의 리더와 이슈메이커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현재를 살고 있는가. 또 어떻게 미래를 설계하고 있는가. "따분한 보수는 가라"며 '쿨 보수'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곽승준(52)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장관급)이 변화와 개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내고 있는 사람들과 특별한 만남을 갖는다. 20~40대가 주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는 <더팩트>과 '쿨한 융합'이라는 목표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고 있는 곽승준이 펼치는 색깔 있는 대화는 이슈메이커들의 또 다른 면모를 볼 수 있는 새로운 장이 될 것이다. <편집자 주>
임진년(壬辰年) 새해가 밝았다. 올해는 60년 만에 오는 흑룡의 해라고 해서 주위에서는 더욱 기대를 거는 눈치다. 정말 올해는 흑룡의 기운을 받아 온갖 어려움과 고달픔을 모두 떨쳐버리고 신나게 비상하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다. 총선 대선을 깔끔하게 잘 치르고, 남북관계에도 획기적 전기가 마련되면 이 또한 얼마나 통쾌할 것인가. 통쾌하고 신나며 짜릿한 것으로 따지자면 9회말 역전 결승 만루홈런을 빼놓을 수 없다. 야구계의 김성근(70) 고양 원더스 감독과 이만수(54) SK 와이번스 감독을 신년 특집 릴레이 인터뷰의 대상자로 선정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일흔의 나이에도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또다시 기성 야구계를 상대로 역전 만루홈런을 노리는 김 감독이야말로 '쿨한 만남'의 적격자가 아닐까. 또 그런 김 감독과 불편한 관계에 놓여 있으면서도 나름대로 새 출발을 준비하고 있는 '헐크 감독'은 어떤 생각으로 새 시즌을 준비하고 있을까. 야구광을 자처하는 나로서는 두 사람과 대화 자리를 놓칠 수 없었다.
'헐크' 이만수 감독은 매스컴 앞에서 나서는 것을 꺼렸다. 롤러코스터 같았던 지난해의 기억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듯했다. 680만 최다 관중 속에 출범 30주년을 맞은 프로야구에서 팬들로부터 역대 최고의 스타로 선정된 것이 영광이었다면 시즌 도중 김성근 감독이 경질된 뒤 SK 감독대행으로 나서는 과정에서 팬들의 큰 반발을 산 것은 아픔이었다. 위기를 잘 수습해 SK를 준우승으로 이끈 뒤에도 또다시 김성근 감독과 '불화설'이 불거져 한 차례 홍역을 치러야 했다. 하지만 막상 인터뷰장에 들어선 이 감독은 '빅 스마일'의 본색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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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힘들었던 미국 생활에서 겪었던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이야기 하고 있는 이만수 감독. |
◆ "매일 써왔던 일기, 힘들었던 순간 가장 큰 힘 됐다"
- 이만수 감독에 대해 알아보니 매일 소망노트를 쓰는 습관이 있다고 하더라. 주로 어떤 내용을 적었나?
내가 지금까지 40년 넘게 빠지지 않고 써온 것이 일기하고 야구일지다. 특히 야구일지는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가장 큰 도움이 됐다. 지난 5년간도 김성근 감독님 밑에서 어떤 야구를 했는지 꾸준히 기록했다. 이번에 감독 대행을 맡아 많이 힘들었는데 예전에 써왔던 것들이 많은 도움이 됐다. 쓸 때는 힘들었지만 그것이 오늘의 나를 만들지 않았나 생각한다.
- 소망노트에 재미있는 내용이 많다. 미국 싱글A 코치 시절 구단 측에서 프리배팅 10개 중 한 개라도 담장을 넘기면 타격코치로 임명하겠다고 했는데 7~8개를 넘겼다고 들었다.
한국에서는 이만수 하면 다들 알아줬는데, 미국에 처음 가니 아무도 날 모르더라(웃음). 키도 작고 덩치도 작으니 '니가 코리언 베이브 루스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어느 날 마이너리그 감독이 '네가 잘 한다는 시범을 보여라' 하길래 타석에 섰다. 코치들은 "하나만 넘겨도 인정해 주겠다"고 하는데도 영 자신이 없었다. 그날따라 담장은 왜 그리 멀게 느껴지던지…. 게다가 17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모여 구경을 하니 잘 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심했다. 그렇게 첫 공을 쳤는데 펜스에 노바운드로 맞더라. 그제서야 '이거 별거 아니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7개를 내리 담장을 넘겼다. 자존심이 상한 미국 코치들이 다음날 한 번 더 해보라고 하길래 그 다음 날에는 8개를 넘겼다. 그러자 총 감독이 마이너리그 전 선수를 모아 "앞으로 타격에 관해서는 이만수가 시키는 대로 하라"고 말하더라. 그런 계기가 없었다면 미국에서 지도자 생활이 굉장히 힘들었을 것이다.
- 미국에서 코치 생활을 하던 시절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은 것 같다. 이만수 감독이 있던 싱글A 팀은 전국 최다 관중 기록을 세웠고, 아직도 메이저리그 몇몇 선수들은 코치 시절 이 감독을 알고 있더라. 지도자 입문 1년 만에 시카고 화이트삭스 트리플A팀 코치로 가더니 이듬해에는 메이저리그 불펜 코치까지 올랐다. 이른 성공에는 이유가 있었을 텐데?
싱글A 킨스톤 인디언스 코치 시절 이야기다. 하루는 감독이 날 부르더니 3루 작전 코치로 나가라고 하더라. 그땐 미국에 간지 얼마 안 돼 할 줄 아는 영어라고는 '렛츠 고' 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냥 3루에 가서 막 파이팅 외치며 한국식으로 막 떠들었다. 그게 미국인들에게는 신기해 보였던 거다. 하루는 경기가 지루하게 이어지다 보니 양팀 감독이 주심과 짜고 날 웃음거리로 만든 적도 있었다. 당시에는 너무 창피해 화도 났지만 관중들의 표정들은 정말 밝았다. 나중에 관계자로부터 들어보니 그런 내 모습 때문에 구단 인기가 크게 늘었다고 하더라. 이국땅에서 열정적인 모습으로 야구에 임하는 모습을 좋게 봐준 것 같다.
- 이 감독은 프로야구 개막 1호 안타-홈런, 타자 최초 트리플 크라운 수상 등 선수로서도 맹활약했다. 지도자로서도 누구도 손에 쥐지 못한 월드시리즈 반지를 얻었다. 하지만 한국프로야구 동료 감독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사령탑 데뷔는 늦은 감이 있다. 섭섭한 마음은 없었나?
그런 건 없다. 10년 동안 미국에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경험하지 못한 것을 더 쌓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월드 시리즈 우승한 경험은 상상을 초월한다. 미국에서 제일 높은 빌딩인 시어스타워(현 윌리스타워) 100층이 넘는 높이에서 꽃가루를 던지는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내게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내가 미국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을 때 후배들이 감독 됐다는 소식을 듣긴 했다. 주위에서도 '후배들이 감독하는 데 속상한 것 없느냐'는 말도 하더라. 하지만 기회가 온다면 나중에는 (감독을)할 수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그런 걸 크게 의식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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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날 이 감독은 김성근 감독과의 갈등은 과장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
◆ "김성근 감독과 갈등은 과장…감독 스타일은 달라"
- 최근 김성근 감독과 빚은 갈등 분위기가 큰 화제를 모았다. 이번 기회에 풀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김성근 감독님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조금이라도 이야기가 나오면 금세 그거 가지고 물고 늘어진다. 요새 예민한 것도 있고, 팬들은 좋은 면을 잘 안 보니 더욱 그렇다. 스토브리그라서 기사가 많이 없으니까 언론에서 이런 것들을 흥미 위주로 다룰 때가 많이 있다. 일구회 시상식 할 때도 만나서 끝나기 전에 감독님께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나와 감독님 관계는 아무렇지 않은데 과장된 게 많다.
- 김성근 감독의 쓴소리에도 꾸준히 입을 닫아 왔다. 사실 억울한 것도 많았을 텐데?
괜찮다. 어른한테는 아랫사람이 가만히 있는 게 낫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른한테 대꾸하면 안 된다. 시간 되면 다 잊혀진다. 괜히 언급해서 시끄럽게 할 필요 없다. 내가 야구판을 떠날 때라면 모르겠지만 지금 이 바닥에서 서로 흠집 내는 건 원치 않는다.
- 엄격했던 김성근 감독과 지도 스타일이 상반되는 경향이 있다. 성향상 마찰이 잦을 수밖에 없었을 것 같은데?
사람마다 각자 스타일이 다르지 않나. 난 현역 때부터 좋으면 깡충깡충 뛰어 다녔다. 그렇게 감정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게 내 색깔이다. 선수들에게도 자율적으로 훈련하도록 한다. 세상에서 제일 편한 것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다. 반대로 가장 어려운 것이 스스로 놔두는 거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메이저리그 진출을 목표로 미국에 갔던 수많은 선수들이 실패한 거다. 미국에선 전혀 터치 안한다. 한국에선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시켜서 했던 훈련들이 몸에 배어 있다. 선수들은 '왜 날 안가르쳐주나'라고 하는 것보다 직접 코치를 찾아와 배우고자하는 열정을 보여야 한다. 강압적인 것은 있던 열정도 지치게 한다. 진정한 자신의 야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 김성근 감독의 훈련 방식은 독하기로 유명했다. 지난 5년간 전임 감독의 지도를 따랐던 선수들도 이 감독의 취임과 함께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지금은 잘 진행되고 있나?
가장 힘들었던 것이 지난 5년 동안 김성근 감독님 스타일에 젖어 있는 선수들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도록 하는 문제였다. 그래도 진실은 통하는 것이더라. 감독대행이 되고 보니 선수들이 다들 패닉 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런 선수들을 경기를 잘 치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내 임무였다. 하지만 정말 힘들었고, 때때로는 정말 미국으로 다시 도망가고 싶었다. 어떻게 해도 안 따라오니까. 그래도 시합 내내 소리 지르고 1회부터 9회까지 괜찮다고 격려해주니 차차 선수들이 알아주더라. 지난 5년간 나를 봐왔던 선수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만약 5년 동안 SK에 몸담지 않고 곧바로 사령탑으로 들어왔다면 무조건 꼴찌였다. 지난 시즌 마치고 선수들에게도 '너희들 때문에 감독이 됐다'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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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신의 야구관을 진지하게 말하고 있는 이만수 감독. |
◆ "야구는 선수가 하는 것…관중들은 감독 아닌 선수 보러온다"
- 이만수 감독의 지도 스타일은 파이팅이 넘친다. 선수들과도 소통을 강조하는 것 같은데, 일부에서는 가벼워 보이는 이미지가 우려된다는 지적도 있다.
여태까지 동양적인 것은 전부 권위 속에 있다. 그런 가운데 이만수가 갑자기 나타나서 설레발을 치니 사람들은 낯설고 생소한 것이다. '나이는 많은데 무게가 없다', '촐랑거린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하지만 난 선수가 그라운드에서 열심히 뛰는데 감독이 뒤에서 무게 잡고 있는 건 원하지 않는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선수들과 상관없이 감독이 팔짱 끼고 있어도 선수들이 알아서 다 한다. 하지만 한국은 다르다. 엉덩이 두드리며 격려하고, 할 수 있다고 용기를 북돋워 주고, 심판과도 싸우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지도자라고 생각한다.
- 본격적으로 감독 인생을 시작하는 현재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이만수식 감독관'을 꼽자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야구는 선수가 한다'는 것이다. 경기에 나서는 선수들이 잘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까지가 지도자의 역할이다. 우리나라는 일본의 영향을 받아서 거꾸로 지도자가 나서는 경우가 많다. 물론 성적에 대한 책임만큼은 감독이 지는 게 맞다. 그러나 결국 경기를 치르는 것은 감독이 아닌 선수들의 몫이라는 것이다.
- 과거 SK야구에서 김성근 감독이 주로 부각됐던 것과 정반대다.
야구장에 감독 보러 안 온다. 잘 보이지도 않는데 누가 감독 보러 오겠나. 이만수 보러 온다고 착각하면 안된다. 관중들은 땀 흘리며 뛰는 선수들 보러 오는 것이다. 내년부터 SK는 감독이 스타가 아니고 선수가 스타다. 다음 시즌부터는 SK 선수 모두가 스타로 자리매김 할 것이다.
- 다음 시즌 SK의 목표라면 당연히 우승인가?
우리가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선수들에게 딱 세 가지를 강조했다. 기본, 집중, 팀워크만 지켜달라고 말이다. 이 세 가지만 지킨다면 최고의 팀이 된다. 우승하라고 말로 하지 않아도 좋은 성적은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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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감독이 팬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성의껏 적고 있다. |
◆ "스포츠, 국제 영향력 으뜸…꾸준한 관심 가져줬으면"
- 이 감독은 선수 시절 국가대표로도 많이 활약했다. 야구선수로서 나라를 대표해 국제 경기에 나선다는 것은 어떤 의미로 다가오나?
나라를 빛낼 수 있는 일은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가장 영향력이 큰 것은 스포츠다. 김연아 선수를 보면 정말 세계적이지 않나. 국내보다도 외국에서 인기가 상상을 초월한다. 내가 미국에 있을 때도 도심을 벗어나 시골 쪽에 가니까 한국을 모르더라. 88올림픽을 이야기하니 그제서야 알더라. 노벨 평화상을 어느 나라 사람이 받았는지는 그들에게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다. 스포츠는 그런 면에서 파급력이 크다.
- 국제 대회 이야기를 하니 국내 야구 인프라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축구는 월드컵 유치 이후 국제 대회를 치를 수 있는 수준급 경기장을 갖췄다. 반면 야구장의 시설은 정말 후진적이다. 최근 야구 열기가 엄청난 점을 감안하면 불만이 있을만 한데?
국내 야구장 사정은 정말 열악하다. 외국 선수들이 오면 부끄러운 수준이다. 지난번에 대통령께서 잠실야구장을 방문했다고 들었다. 다음에 와주신다면 잠실보다 경기장 상태가 좋지 못한 대구나 광주, 대전구장에 와주셨으면 좋겠다. 600만이 넘는 관중들이 찾아와 즐거움을 찾는 곳이니 하루빨리 시설이 개선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 대통령 이야기가 나오니 생각난 게 있다. 미국에서 월드시리즈 우승팀은 백악관에 초대 받아 대통령과 만찬을 나눈다. 메이저리그 우승 반지를 거머쥐었을 때 부시 대통령을 만났을 때 기분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이런 것들이 우리나라에도 필요하다는 생각은 없나.
거기 가면 대통령과 완전히 친구나 다름없다. 서로 이름을 부르니까(웃음). 그런 것들은 한국에서도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국내 프로 스포츠를 꼽자면 야구, 축구, 농구, 배구, 골프가 전부다. 온 국민이 좋아하는 스포츠를 함께 즐기면서 화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대통령도 스포츠의 인기를 잘 이용한다. 앞으로도 대통령께서 꾸준히 프로 스포츠 무대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국민과 함께 호흡하는 자리가 마련되길 바란다.
- 어느덧 마지막 질문을 던질 시간이 다가왔다. 이 감독에게 야구 인생의 최종 목표란 무엇인가?
좋은 야구인으로 남는 것이 나의 마지막 꿈이다. 언제까지 할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이나마 야구계에 밑거름이 되고 싶다. 지금껏 인생에 풍파가 많았던 만큼,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야구인이 될 수 있다면 만족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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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만수 감독은 '꿈은 이루어 진다. 그러나 인내를 갖고 끊임 없이 기다려야 한다'는 글을 팬들에게 전했다. |
이만수 감독은 앞서 만난 김성근 감독과는 야구에 대한 시각차가 너무나 달랐다. 불거진 불화설을 뒤로 하고 이들의 '쿨~한 화합'을 위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던졌지만 결국 선명하게 대비되는 각자의 스타일을 모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두 감독 모두 고난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걷는 열정, 또한 자신보다는 선수들을 위하는 마음만큼은 한가지였다. 각자 새로운 목표를 향해 또 하나의 드라마를 만들어 갈 두 감독의 멋진 행보를 기대해 본다.

<정리=유성현 기자, 사진=노시훈 기자>
더팩트 스포츠기획취재팀 기자 yshalex@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