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30년] '5공의 부산물'에서 '국민 스포츠'로 대역전
입력: 2011.10.13 12:57 / 수정: 2011.10.13 12:57

▲ 올해 출범 30주년을 맞은 프로야구가 처음으로 관중 600만명을 돌파했다. / 사진제공=서울신문
▲ 올해 출범 30주년을 맞은 프로야구가 처음으로 관중 600만명을 돌파했다. / 사진제공=서울신문

[소미연 기자] 프로야구의 시작은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에서 빚어진 '민심이반'으로부터 시작됐다. 1979년 10·26사태로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하자 당시 국군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은 그해 12·12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군부의 실권을 장악, 이듬해 5월17일 비상계엄령을 전국에 선포했다. 이에 맞서다 사망한 시민은 191명, 부상자가 852명에 달했다.

무력으로 사태를 진압한 전 전 대통령은 1980년 9월1일 대통령으로 취임했으나 국민들의 반감이 높아 고민이 상당했다. 무엇보다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부담이 배로 커졌다. '3S(Sports·Sereen·Sex) 정책'이 나온 이유다. 국민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프로야구가 창설된 셈이다.

1981년 6월 전 전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스포츠장려책을 지시했고, 당시 실무를 맡고 있던 이상주 교육문화수석 비서관이 야구인 이호헌·이용일씨와 함께 야구의 프로화를 구체화시켰다. 그 결과 전 전 대통령의 지시가 내려진지 6개월여 만인 12월11일 MBC청룡(서울), 삼성라이온즈(대구), 롯데자이언츠(부산), OB베어스(대전), 해태타이거즈(광주), 삼미슈퍼스타즈(인천) 등 6개 구단의 창립총회가 열렸다.

이후 1982년 3월27일, MBC청룡과 삼성의 개막 경기로 프로야구가 시작됐다. 전 전 대통령이 시구에 나선 이날 경기는 MBC청룡팀이 승리했다. 한국프로야구 사상 최초의 승리팀이다. 원년 우승팀은 OB였다.

OB가 1985년 서울로 연고지를 옮기자 이듬해 대전을 연고지로 한 빙그레이글스가 창단됐다. 1991년엔 쌍방울레이더스가 전북을 연고지를 두고 등장했으나 모기업의 부도로 해체를 맞으면서 SK와이번스로 탈바꿈했다. 그러나 SK그룹이 구단을 인수한 것은 아니었다. 구단 해체 후 새 창단을 하면서 쌍방울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새롭게 창단된 SK는 연고지로 인천을 택했다. 당초 인천이 연고지였던 삼미는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 현대유니콘스, 우리히어로즈, 서울히어로즈, 넥센히어로즈를 거치면서 현재는 서울이 연고지다.

앞서 MBC청룡은 MBC 문화방송 노·사간 합의에 의해 구단을 매각하기로 의결하자 1990년 럭키금성그룹이 구단을 인수해 LG트윈스로 팀명을 변경했다. 빙그레도 1993년 현재의 한화이글스로, OB는 1999년 두산베어스로 팀명을 변경했다. 모그룹이 해체된 해태는 현대자동차그룹 산하의 KIA자동차가 2001년 구단을 인수해 현재의 KIA타이거즈로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프로야구의 정착은 순탄치 않았다. 영·호남의 지역감정을 부추긴다는 점에서 한계를 보였던 것. 실제 프로야구를 둘러싼 영·호남의 지역감정은 1986년 ‘불’이 붙고야 말았다. 당시 해태와 삼성의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삼성이 패하자 1000여명의 삼성 팬들은 해태 구단 버스를 불태워버렸다. 이어 4차전에서도 삼성이 패하자 경찰 2000명가량이 경기장 주변으로 투입되기까지 했다. 이날 경찰이 발사한 최루탄은 무려 7발이다.

1989년 '쌍방울 창단 음모설'이 나온 것도 지역감정에서 비롯됐다. 당시 제8구단 창단 후보로 경남과 전북이 지목됐는데, 한일합섬과 쌍방울이 각각 연고지로 마산과 전주를 내세웠다. 롯데와 해태가 달갑지 않았을 터. 특히 전라도 전체를 기반으로 했던 해태는 전북에 구단이 생길 경우 신인 선수의 수급 등 불이익을 볼게 뻔했다. 이에 따라 해태 팬들 사이에선 호남 사람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던 해태 구단을 영남 정권이 쌍방울을 통해 호남을 분열시키려 한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소문은 당시 김대중 평민당 총재의 한 마디로 불식됐다. 구단을 호남에 유치하는 것도 좋다는 뜻을 밝혔던 것. 이를 계기로 해태와 호남 사람들의 반대가 수그러들었다.

정치와 함께 시작했던 프로야구는 사실 출범 이후에도 정치권의 압력을 계속 받아왔다. 한국 프로야구의 수장인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가 '낙하산'이라는 불명예를 벗어난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프로야구 출범 30년 동안 정치권의 입김 없이 뽑힌 총재는 12~14대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과 17~18대 유영구 전 명지학원 이사장, 그리고 현 19대 총재직을 맡고 있는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이 전부다.

외압에도 불구하고 프로야구에 대한 국민들의 열기는 해를 거듭할수록 뜨거워져갔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과 2009년 WBC클래식 준우승 등 선수들의 수준 높은 경기력이 관중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이로써 올해 시즌 관중은 680만명에 달했다. 지난해 보다 무려 15%가 증가한 수치다. 경남 창원을 연고지로 한 NC다이노스의 창단에 이어 제10구단 창단을 앞두고 전북과 수원이 유치전에 뛰어든 것도 프로야구에 대한 국민들의 변함없는 애정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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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팩트 정치팀 ptoday@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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