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쇄신과 개혁' 선두주자 '남원정' 엇갈린 운명
  • 박형남 기자
  • 입력: 2011.08.11 11:25 / 수정: 2011.08.11 11:25

▲한나라당 내 쇄신·개혁바람을 일으켰던 남원정. 왼쪽부터 남경필 최고위원, 원희룡 최고위원,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사진=더팩트DB

▲한나라당 내 '쇄신·개혁'바람을 일으켰던 '남원정'. 왼쪽부터 남경필 최고위원, 원희룡 최고위원,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사진=더팩트DB


[박형남 기자] 한나라당 내에서 '쇄신'과 '개혁'이라는 화두가 등장하면서 주목받는 이들이 있다. 바로 한나라당 내 소장파다. 특히 원조 소장파격인 '남원정(남경필 원희룡 정병국)'이 개혁진영의 중심적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현재 이들은 각자의 길을 걷고 있다. 말이 좋아 각자의 길이지 실제론 자기 정치를 하겠다는 신호탄이다. 정치적 목적으로 인해 내부 불신이 쌓였던 이유가 크다. 당시 '쇄신·개혁'의 원조였던 '남원정'이기에 이들의 '각자도생'은 운명과도 같다. 한때 원조 소장파로 명성을 날렸던 '남원정'의 과거를 되짚어봤다.

남원정의 개혁적 발언, 한번 터졌다 하면 속수무책이었다. 한나라당 내 논란을 일으키며 말 그대로 진흙탕 싸움도 불사했다. 진보적인 목소리른 내는 것은 기본이요, 가히 당내 혈투를 일으킬 정도다. 겉으로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우시지만 속내는 뻔하다. 십중팔구 목적은 '파워게임'이기 마련. 권력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라는 말이 실감되는 대목이다. 권력투쟁으로 얼룩진 상황에서도 불구하고 당시의 남원정은 한나라당 내 '개혁성향'에 '차세대 주자'로서 빛을 발했다.

사실 남원정이 개혁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미래연대(미래를 위한 청년연대)' 때문이다. 이회창 전 총재시절인 1999년, 당내에 젊은 피를 수혈받기 위해 만들어진 소장파 모임으로써 '새 정치의 주역이 되자'는 기치를 내걸었다. 이후 지역주의 청산, 계보정치 타파 등을 잇달아 주장하며 여야 386세대 연대를 추진하는 등 '튀는' 행보를 보여왔다.

급기야 남원정은 17대 총선을 앞두고 '보수 중진 물갈이론'을 주장하면서 당내 분란을 일으켰다. 실제 남원정은 부패정당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최병렬 당 대표의 사퇴를 이끌었고, '오세훈 선거법'으로 상징되는 개혁입법과 정치개혁 등에 앞장섰다. 이를 계기로 남원정은 개혁을 바라던 이들의 지지를 받으며 '차세대 리더'의 길을 걸었다. 이른바 '남원정 전성시대'를 이끈 셈이다.

차세대로 리더로 떠오른 남원정은 "2004년 한나라당이 앞으로 '개혁적 중도보수'를 지향해야 한다"며 "매주 수요일 공부모임을 통해 당 개혁의 방향을 토론하겠다"고 '중도보수론'을 꺼냈다. '새정치수요모임'이 여기서 파생됐다.

그 결과 남원정은 '미래연대' 이어 '새정치수요모임'을 결정하는 등 제 2의 도약을 이끌었다. 지난 2004년 7월 전당대회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 다음으로 원희룡 최고위원이 2위를 차지하며 지도부에 입성한 것이 이를 반증한다.

이 기세를 몰아 남원정은 '새정치수요모임'을 결성한 이후 가장 먼저 한나라당 내 사상투쟁을 선언했다. 미래연대 소속 의원들과 함께 국가보안법 폐지, 비전향 장기수의 조건 없는 송환 등을 잇달아 주장하며 한나라당 내 '보혁갈등'을 일으킨 데 이어 개혁의 중심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도 잠시. 남원정 전성시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내부분열이 시작됐던 것. 지난 2005년 전당대회가 화근이었다. 남원정은 권영세 의원을 단일 후보로 선출했지만 정작 본선에서 권 의원에게 표를 몰아주지 않았다.

더구나 남경필 의원은 대선 후보로 나선 원희룡 최고위원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지만 경선 직전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다. 정병국 의원은 일찌감치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고 있었다.

남원정에 대한 비판 여론도 가중됐다. 개혁적인 목소리를 내기 위해 당에 대한 비판을 했지만 비전과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고, 이는 '남원정의 위기'를 불러왔다. 원희룡 최고위원도 "비판만 했을 뿐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이 와중에 원희룡 최고위원이 당 사무총장을 맡으면서 남원정은 서서히 와해됐고 각자도생의 길로 접어들었다. 급기야 남경필 최고위원은 친이계가 쇠퇴하고 신주류로 급부상한 쇄신파의 리더로 떠올랐고, 원희룡 최고위원은 친이계 핵심들과 교감하며 주류의 길을 걸었다. 정병국 의원도 이명박 정부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지내고 있다. 한 사람은 '개혁과 쇄신'의 길을 계속 걸어가고 있고, 나머지 사람들은 중도 포기한 셈이다.

결국 남원정은 내부 분열로 인해 서서히 세력을 잃어가다가 서로 간 이견대립으로 완전히 와해됐다. 이후 이들은 자기 정치의 활로를 찾아가고 있다. 원조 소장파인 남원정 시대는 사실상 저문 셈이다. 한국 정치사의 '소장파'로서 10여년을 풍미한 '남원정', 그나마 아직 40~50대로 젊다는 점에서 가능성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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