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용식 대표 “치우친 종편, 국민 영혼 갉아먹어”
  • 정진이 기자
  • 입력: 2011.01.20 11:19 / 수정: 2011.01.20 11:19



[권경률기자]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정보통신 강국이다. 우리나라에서 인터넷과 휴대폰이 없는 삶은 상상만으로도 불편하기 짝이 없다. 온라인 세상에 발을 담그지 않으면 일도, 사랑도 위태롭다. 언제부터였을까? 아마도 전화선으로 네트워크를 연결하던 그 시절이 출발점 아닐까? PC통신 전성기 말이다.

나우콤은 1990년대 PC통신 ‘나우누리’를 서비스하며 수많은 폐인을 양산한 바로 그 ‘문제적 회사’다. 문용식 대표를 만나자마자 강짜를 부려봤다. 대학시절 ‘나우누리’에 빠져 학점 다 말아먹었다고. “아,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문 대표의 입장은 단호하고 분명했다. ‘그게 왜 내 책임이니’ 하는 눈빛. ‘성격’, 있으시다.

문용식 대표는 풍운을 몰고 다니는 인물이다. 1979년에 대학에 입학한 그는 학생운동에 앞장서다가 세 번이나 구속을 당했다. 수감생활만 도합 5년 1개월. 80년대의 절반을 감옥에서 보냈다. 대학을 졸업한 그가 IT사업에 뛰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만 해도 아직 정보통신에 대한 인식이 없었는데 말이다.

“주변에선 선견지명이 있었대요. 선견지명은 무슨…. (웃음)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어요. 감옥 살다가 나왔는데 대기업에서 뽑아주겠어요? 오직 아이디어로 승부를 낼 수밖에 없었죠. 때마침 가까운 선배가 IT사업을 함께 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고심 끝에 먹고 살기 위해 그 길을 택했습니다. 그야말로 호구지책이었죠.”

달리 갈 곳이 없었던(?) 그는 나우콤에서 20년 동안 한 우물을 팠다. 바닥에서부터 기업경영을 익히며 PC통신-인터넷-모바일로 이어진 IT 비즈니스의 격변을 헤쳐 나왔다. 나우콤은 1994년 PC통신 서비스 ‘나우누리’로 시작해 현재 인터넷방송 ‘아프리카TV’, 웹스토리지 ‘클럽박스’, 온라인게임 ‘테일즈런너’ 등 활발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하위 90% 희생 위에 상위 10%의 성채가…

하지만 그 와중에도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꾼 젊은 날의 의기는 굽이마다 욱하며 뛰쳐나왔다.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작년 10월 그는 트위터 상에서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과 한 판 맞장을 떴다. 회사 임직원들의 복지혜택 확대를 거론한 정 부회장의 트윗에 “슈퍼 개점해서 구멍가게 울리는 짓이나 하지 말기를… 그게 대기업이 할 일이니?”라는 반말 투의 답글을 단 것이다.

왜 그랬을까? 정 부회장의 말마따나 대기업에 대해 ‘분노’를 가진 탓일까? 그게 아니면 혹시 젊은 날 대기업에서 취직 안 시켜준 앙금이 남아서? “그건 아니고. (웃음) 대기업이 골목 상권을 죽이고 있는 상황에서 회사 임직원들의 복지혜택을 자랑하는 걸 보고 순간 욱했던 거죠. 구글이 건설한다는 이야기 들어봤나요? 애플이 식품을 팔지는 않잖아요? 대기업이 전문분야를 키워 세계로 나가야지 국내에서 문어발 해서야 쓰겠습니까?”

문 대표는 대형마트가 피자까지 팔아서 동네 피자가게 문 닫게 만드는 현실이 답답했다고 한다. 주변 상권 다 붕괴시키면서 회사직원, 그것도 소수 정규직의 복지만 챙기면 되는 건지 묻고 싶었단다. 당시 그가 제기한 대기업 피자 문제는 이후 ‘통큰치킨’이 등장하며 정점을 찍는다.

“우리나라는 재벌 대기업의 힘이 너무 큽니다. 대한민국 국가경제를 좌지우지합니다. 하위 90%의 희생 위에 상위 10%의 견고한 성채가 유지되는 형국이죠. 이렇게 극단화되면 사회 안정과 통합이 깨집니다. 물론 그 10% 성채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 예컨대 공무원, 공기업, 대기업 종사자들은 세계 평균수준 이상의 안락한 보상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혜택을 위해 국민의 90% 이상은 불안에 허덕여야 합니다.”

그는 대한민국 건국 이후 60여 년 동안, 특히 IMF 이후 10년 동안 너무 승자 독식의 정글자본주의 사회로 치달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제는 함께 잘 사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터넷방송 플랫폼 ‘아프리카TV’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거대 신문사들이 종합편성채널 사업자로 선정된 것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사람에게는 육체와 영혼이 있습니다. 하루 세끼가 육체의 양식이라면, 영혼의 양식은 미디어로부터 받아들이죠. 그런데 너무 한 쪽으로만 치우치면 국민의 영혼을 갉아먹습니다. 신문도 그들이 압도적인데, 방송마저 편중되면 큰일 아닙니까?”

문 대표는 국민 영혼이 건강하려면 미디어 생태계의 다양성이 필수라고 믿는다. “올드 미디어가 힘의 우위를 내세워 여론몰이를 하는 상황에서 UCC, 블로그, SNS 등 뉴미디어가 여론의 균형을 잡아줘야 합니다. 아프리카TV의 역할도 더 커졌다고 봅니다. 날이 갈수록 어깨가 무거워지는 걸 실감합니다.”

IT 격변 헤쳐 온 비결? 직원들과의 소통!

아프리카TV는 지난 2008년 촛불집회 생중계로 떴다. 물론 문 대표가 직접 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누빈 것은 아니다. 개인 BJ(Broadcasting Jockey)들이 자발적으로 현장의 모습을 전했고 그것이 단체, 기관으로 확산되었다. 나우콤은 인터넷방송 플랫폼만 제공했을 뿐이다. 방문객수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하루 50명 보던 방송이 5천명, 5만명을 거쳐 순식간에 50만 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아프리카TV가 온라인 시위의 메카로 떠오르자 날벼락이 떨어졌다. 2008년 6월 검찰이 문용식 대표를 구속한 것이다. 물론 직접적인 빌미는 저작권 침해 방조에 대한 고소 사건이었지만 때가 때인지라 촛불시위 확산을 막으려는 정치적 의도가 아닌지 의혹을 샀다. “만약 정치적 의도가 개입됐다면 무지와 천박함에서 비롯된 거죠. 권력 가진 사람은 백날 설명해줘도 몰라요. 아프리카TV로 접속이 몰리니까 제가 다 한 줄 알죠.”

2008년 촛불집회는 ‘소통의 리더십’이 중요함을 일깨웠다. 그것은 문 대표가 걸어온 길에도 고스란히 녹아있다. “저는 CEO의 ‘C’가 ‘Chief(수장)’이 아니라 ‘Communication(소통)’이라고 생각해요. 소통은 직원들이 하는 이야기를 귀 담아 듣고 반영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IT사업의 패러다임이 PC통신-인터넷-모바일로 격변하는 가운데 나우콤이 위기를 기회로 만들며 성장해온 비결이죠.”

사람들이 문용식 대표에게 가지는 선입견은 운동권, 독종, 이상주의자 등 한 마디로 ‘강성’이미지다. 그러나 가까이서 본 그는 사람 좋은 웃음에 직원들 말 잘 듣는 ‘유쾌한 보스’였다. 게다가 아내 이야기만 나오면 입이 귀에 걸리는 애처가이기도 했다.

“80년대 감옥은 직계 존비속이 아니면 면회도 못했어요. 제 경우엔 어머니는 연로하시고, 여동생은 학생이라 뒷바라지할 사람이 없었죠. 그런데 당시 사귀고 있던 집사람이 결단을 내렸어요. 친정오빠를 설득해 혼인신고를 하고 옥바라지에 나선 겁니다. 흔히 결혼을 할 때면 사실혼이 먼저냐, 법률혼이 먼저냐 농담을 듣는데 우리는 법률혼이 훨씬 앞섰죠.”

혹 평소 짝사랑하던 여인을 엮으려고 옥바라지를 들먹인 게 아닐까? 짐짓 다잡아 물어보았다. 돌아오는 대답은 “운명”이란다. “사랑과 결혼이 어떻게 술수로 됩니까? 남녀관계는 하늘이 점지해주는 거예요. 노무현 전 대통령 말처럼 그게 바로 운명입니다.”

문 대표의 좌우명은 ‘꾸준함을 이길 그 어떤 재주도 없다’는 것이다. 얼마 전 출간한 책 제목이기도 하다. 누구나 시행착오는 불가피하다. 일을 하다가 실패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려움이 있더라도 일관성 있게 밀어붙이는 힘이 중요하다. 더불어 사는 세상을 향한 문 대표의 길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멈춤 없이 이어질 듯싶다.

<사진=배정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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