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해리스 '중동 분쟁' 해결 원해
北 러시아 파병에 '美 중심 질서' 흔들
비핵화 정책 뒷순위로 밀려날 가능성
민주당의 미국 대선 후보 카멀라 해리스와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 중 누가 백악관에 입성하느냐에 따라 요동치는 세계 안보 지형의 변화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이 과정에서 북한 비핵화 과제가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AP. 뉴시스 |
민주당의 카멀라 해리스와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선 승리가 누구에게 돌아갈지 세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미국 대선이 결과를 예측할 수 없을 만큼 박빙으로 진행되면서다. 특히 국내 정치권과 산업계는 미 대선 결과에 따라 정치, 경제, 안보에 상당한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더팩트>는 미 대선 결과를 앞두고 후보별 공약에 따른 국내 정치·경제·외교·안보에 미칠 파장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김정수 기자] 격화하는 중동 정세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북한의 파병까지. 복잡다단한 안보 위기가 국제사회를 덮친 가운데 5일 미국 대선이 카운트다운을 시작한다. 민주당의 카멀라 해리스와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중 누가 백악관에 입성하느냐에 따라 국제 안보 지형의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과정에서 북한의 비핵화라는 과제가 뒷순위로 밀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미국의 북한 비핵화 정책에 이상 신호가 감지된 건 지난 8월이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이번 대선을 앞두고 내놓은 새로운 정강 '북한 비핵화'라는 표현은 빠져 있었다. 그나마 민주당은 '불법적인 미사일 역량 구축'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공화당에서는 비슷한 언급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양당 모두에 '비핵화는 불가능하다'는 공감대가 짙게 깔렸다는 해석과 함께, 이제는 미국이 북핵을 관리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지난달 한미 양국이 발표한 안보협의회(SCM) 공동성명에 비핵화 표현이 9년 만에 제외됐던 사실도 이러한 관측에 무게를 실었다.
해리스가 집권한다면 민주당 정강과 바이든 행정부의 이같은 대북 정책을 계승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북한 비핵화에 대한 해결이 아닌 관리에 집중되는 셈이다. 앞서 바이든 행정부는 대화의 문을 열어두면서도 동맹국과 연대해 북한을 제재·압박하는 '전략적 인내'로 일관했다. 다만 북한 비핵화를 위한 해법 찾기에는 적극적이지 않았다. 해리스 행정부에서도 유사한 기조가 유지된다는 우려다.
해리스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향해 독재자, 폭군 등이라 날을 세우며 그와 만나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사진은 해리스가 지난 2022년 9월 바이든 행정부의 첫 고위 인사로 한국을 방문해 경기 파주시 오울렛 OP에서 북한 지역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 /더팩트DB |
이재묵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사실 해리스의 민주당 정부를 되돌아보면 오바마 행정부 때나 바이든 행정부에서 북한에 관해 특별히 한 게 없다. 정체돼 있는 것"이라며 "북한은 미국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핵 보유국을 선언했다. 핵실험과 같은 결정적 모멘텀이 없는 이상 해리스는 현상 유지를 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이 교수는 또 "트럼프는 민주당 정부를 향해 '그동안 무엇을 했느냐'고 지적하고 있고, 자신은 북한의 김정은과 만나봤다고 강조하고 있다"며 "워낙 예측불가능한 트럼프이기 때문에 김정은과 만날 가능성이 있다. 우리 정부에서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지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해리스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독재자라고 직격하며 그의 비위를 맞추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지만, 트럼프는 김 위원장과의 관계를 치켜세웠다. 오히려 트럼프는 적은 내부에 있다며 민주당에 화살을 돌렸다. 민주당의 대북 정책이 북한의 핵기술 개발 의지를 증폭시켰다는 논리다. 그러면서 이미 김 위원장과 북미 정상회담 등에서 만나본 자신이 문제 해결의 적임자라는 주장을 펼쳤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은 "트럼프 집권 시 북미 간의 대화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생각한다"며 "다만 북미 간 대화가 이뤄지더라도 우리 정부가 패싱당할 우려가 있는데 한반도 운명을 북미에 맡기는, 우리 입장에서는 이방인이 될 가능성도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고 제언했다. 공화당 정강에 비핵화 표현이 사라진 상황에서 '트럼프-김정은' 일대일 회담은 자칫 위험한 거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트럼프와 해리스 모두 대외 정책으로 북한보다 중동을 택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사진은 트럼프가 지난 2019년 6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군사분계선에서 김 위원장과 만나고 있는 모습. /뉴시스 |
다만 트럼프도 당선 이후엔 북핵 문제보다 중동 사태 해결을 먼저 테이블에 올릴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현 민주당 정권에서 해결하지 못한 중동 분쟁을 매듭짓고 이를 치적으로 내세우기 위해서다. 국지전 수준이었던 이스라엘과 하마스·헤즈볼라 간 충돌이 전면전에 가까워진 점은 트럼프에게 정치적 기회로 작동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해리스도 중동 문제에 있어서는 트럼프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트럼프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친분을 강조하고 있고 이스라엘 편을 들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전쟁을 전혀 원하지 않는다"며 "전쟁이 미국 경기의 인플레이션을 가지고 온다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직접 개입해 중동 전쟁을 마무리하고 업적을 쌓으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며 "오히려 미국 대외 정책이 북한보다 중동 정책 마무리에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는 바이든 레임덕으로 진전이 없는 상태이지만 해리스 역시 재정비 후 어떻게든 전쟁을 마무리하려고 할 것"이라며 "이번 대선이 끝나면 어떤 형태로든지 이스라엘과 하마스 충돌 등은 정리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북한의 러시아 파병도 미국의 새 행정부가 비핵화를 우선순위에 두게 어렵게 한다는 관측이다. 위협의 현실성을 놓고 보자면 미국으로서는 북한의 파병이 비핵화 문제보다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는 이유에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단순한 양자 대결이 아닌 미국 등 서방 연대와 러시아 중심의 반(反)서방 연대의 대결 구도로 치닫고 있다. 북한의 파병은 지난 6월 북러 조약의 일환으로 평가되는데, 당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해당 조약 체결에 앞서 미국 등 서방과의 대척점을 분명히 한 바 있다. 즉 북한의 파병을 기점으로 확산할지 모르는 서방 대 반서방의 물리적 충돌은 미국 중심의 국제 질서를 흔들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