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 위의 여론<하>] 권력이 된 여론조사, 휘둘리지 않으려면
입력: 2024.10.29 10:30 / 수정: 2024.10.29 10:30

조사방식·문항구성·응답률 등에 따라 결과값 달라져
'여론조사' 영향 큰 한국...'정당정치' 실현해야 할 때


명태균 씨 의혹으로 여론조사의 신뢰성에 대한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명태균 씨 페이스북 캡처.
명태균 씨 의혹으로 여론조사의 신뢰성에 대한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명태균 씨 페이스북 캡처.

[더팩트ㅣ국회=조성은 기자] '명태균' 세글자가 여의도 정가를 뒤흔들고 있다. 명태균 씨가 여론조사 결과를 조작해 정치권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게 의혹의 핵심이다. 동시에 '제2의 명태균 사태'를 막기 위한 여러 대책도 거론된다. 미공표 여론조사에 대한 개선책이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공표용 여론조사는 문제가 없을까. 공표용 여론조사는 세부기준이 적용돼 전문가들은 조작 가능성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한 여론조사 업체 관계자는 "공표용 여론조사 기준이 높고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여심위)가 까다롭고 엄격하게 보고 있다"고 일축했다.

그러나 눈여겨 봐야 할 부분 존재한다. 책 <한국의 여론조사, 실태와 한계 그리고 미래>에서는 몇 가지 지표의 문제점을 짚는다. 대표적으로 '응답률'이다. 낮은 응답률은 특정 성향으로의 과도한 쏠림 가능성을 내포한다. 여론조사에 응하는 사람들은 평균적인 시민에 비해 정치에 관심이 많은 정치 고관여층이거나 특정 정치이념에 투철한 사람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여기에 가중값을 적용하면 과대대표의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응답률은 조사 방식에 따라서도 차이가 난다. 전화여론조사는 크게 자동응답방식(ARS)와 전화면접방식이 있다. 일반적으로 ARS 응답률이 낮다. 쏠림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단 의미다. 또 무선전화를 이용하는지, 유선전화를 이용하는지도 다른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유선일수록 강성 보수 여론이 크게 반영된다. 설문 문항도 답변에 영향을 미친다. 특정 문항이 어느 위치에 있었는지, 혹은 어떤 표현을 썼는지에도 답변은 차이가 난다.

'명태균 여론조사' 몇 가지를 살펴보자.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더팩트>에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이 국민의힘 당대표가 됐던 2021년 6월 11일 전당대회 당시의 여론조사를 꼽았다. 이 의원이 '당대표 후보 적합도' 1위에 처음으로 오른 건 5월 16일 발표된 <머니투데이>와 미래한국연구소가 PNR에 의뢰한 100% 무선 ARS 여론조사였다. 엄 소장은 "후보가 11명이나 됐기 때문에 인지도 높고 2030 세대의 지지를 받는 이 의원에게 유리했을 것"이라며 "또 응답률이 낮은 ARS였기 때문에 적극 지지층이 많은 이 의원에게 유리했고, 무선 100%라는 점도 젊은 층의 지지가 높은 이 의원에게 유리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엄 소장은 김영선 전 의원의, 지난 2022년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진 경남 창원 의창 보궐선거 후보 공천 과정의 여론조사도 언급했다. 명 씨의 미래한국연구소가 당시 지역언론과 공동으로 PNR에 의뢰한 첫 조사에서 김 전 의원은 '전 한나라당 대표'로 표기됐다.

엄 소장은 "국민의힘이나 미래통합당 경력이 아닌 14년 전 한나라당 대표 경력을 썼다. 보수층을 많이 끌어올 수 있는 요소"라며 "유선 비중이 30% 가까이 됐는데 이 또한 강성 보수층의 영향을 높였을 것"이라고 봤다. 특히 "보수 지지세가 높은 곳에서 국민의힘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이 7~8명이나 있었는데 김 전 의원과 민주당 도의원과의 맞대결 구도로 여론조사를 진행한 건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라고 짚었다.

다만 엄 소장은 "조사설계와 통계 처리 과정에서 법률을 위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특정한 결과를 유도하기 위해 조사방식을 설계했지만, 조사 결과 자체를 조작하거나 왜곡한 건 아니라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정치 구조에서 여론조사 비중이 높다는 점을 지적한다. 사진은 지난 10·16 재보궐선거 투표 개표작업. /배정한 기자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정치 구조에서 여론조사 비중이 높다는 점을 지적한다. 사진은 지난 10·16 재보궐선거 투표 개표작업. /배정한 기자

근본적으로 여론조사의 영향력을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성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공천 과정에서 여론조사를 반영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여론조사를 반영하는 명분은 일반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민주적인 방식이라는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민주적이지 않다. 정략적으로, 자기들이 원하는 방법으로 여론조사를 이용할 수 있다"고 짚었다.

정 교수는 언론 보도의 문제도 짚었다. 그는 "후보들의 공약이나 정책 등을 맞춰 보도해야 유권자들도 그걸 기준으로 판단할 텐데 매번 여론조사 결과를 가지고 '누가 앞선다, 뒤처졌다'는 보도만 이뤄진다. 선거 문화를 나쁘게 하는 요인"이라고 했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당이 여론조사를 비중 있게 다루게 됐던 이유는 정당의 기반이 취약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과거 정당이 당원도 부족하고 소수에 의해 운영되면서 당심과 민심의 괴리가 심했기 때문에 '국민 다수의 의견을 들어봐야 한다'는 차원에서 시작됐다"며 "다시 말하자면 정당정치가 잘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당원이 부족하지도 않고 지구당 부활이 얘기될 정도"라며 "정당의 책임정치를 실현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p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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