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 과정서 예산 낭비 사례 줄줄이 쏟아져…심각한 수준
예산 집행 감시 위해 '국민소송제' 도입 논의 필요성 제기
22대 국회 첫 국정감사가 7일 막을 열었다. 이번 국감은 다음 달 1일까지 26일간 17개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피감기관 802곳을 대상으로 이뤄진다. 사진은 신정훈 행안위원장이 이날 국회에서 행정안전부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 참석해 국정감사 중지를 선언하는 모습. 기사 내용과는 무관함. /배정한 기자 |
[더팩트ㅣ국회=신진환 기자] 22대 국회 첫 국정감사가 7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대장정에 돌입한 가운데 국민의 혈세가 낭비되는 사례가 쏟아지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30조 원 규모의 세수 결손이 예상되면서 정부가 고강도 긴축 재정을 이어가고 있지만 곳곳에서 국민의 세금이 줄줄 새고 있다. 방만한 예산 집행을 막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국정감사 과정에서 재정 운용에 어려움을 겪으며 '허리띠'를 졸라매는 정부 부처와 공기관의 예산 낭비 사례가 쏟아지고 있다. 막대한 '세수 펑크'에 따른 국민의 납세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올해에도 목덜미를 잡게 하는 혈세 누수 실태가 어김없이 나오는 것이다. 불경기 속 국민의 주머니에서 나온 소중한 세금이 허투루 쓰인 사례를 모아 봤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을 겨냥하는 모습이다. 김윤덕 민주당 의원은 이날 열린 문회체육관광위원회 국감에서 윤 대통령이 지난 2월 독일과 덴마크 순방을 닷새 앞두고 돌연 연 방문을 연기해 국외 프레스센터 지원 예산 5억8000만 원을 허공에 날렸다고 지적했다. 당시 대통령실은 순방 순연 배경에 대해 명확히 밝히지는 않았다.
김윤덕 의원은 아마 실제 순방비 관련 전체 위약금을 조사해 보면 수십억 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고 주장했다. 순방 연기에 따른 위약금을 문 정부는 지난달 30일 해외 순방 프레스센터 예비비로 19억4000만 원을 신청해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그는 "명확한 사유 없이 일방 취소로 국격 하락은 물론 혈세와 인력 낭비"라고 비판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3월 납세자의 날 기념식에서 "정부는 조세제도에 있어서 헌법적 가치를 확실히 지켜나갈 것"이라며 "조세제도를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투명하고 공정하게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국민 여러분의 세금은 단 1원도 낭비하지 않고 꼭 필요한 분야에 집중적으로 쓰겠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6일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필리핀, 싱가포르 국빈 방문 및 라오스 아세안 정상회의를 위해 출국하며 인사하는 모습. /장윤석 기자 |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감에서는 윤석열 정부 정상외교에 사용된 현금성 특수활동비의 부실한 집행에 관한 지적이 나왔다. 이재강 민주당 의원은 외교부의 제출 자료를 근거로 지난해 정상 및 총리 외교에서 기밀 유지를 위해 현금 집행된 특활비 9억7300만 원에 대한 영수증과 집행내용확인서가 생략됐다고 밝혔다. 집행내용확인서를 생략할 때 감사원에 제출해야 할 내부통제방안도 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사용처를 알 수 없는 '깜깜이' 예산 집행인 셈이다.
감사원의 '특수활동비에 대한 계산증명지침'에 의하면 현금성 특활비를 집행할 때 현금수령자의 영수증과 집행내용확인서를 구비해야 한다. 예외적으로 경비집행의 목적 달성에 지장을 받을 우려가 있을 때만 집행내용확인서를 생략할 수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요건과 절차 등을 정한 자체 지침 등 내부통제방안을 마련해 감사원에 제출해야 하지만 이를 어겼다는 것이다.
실업급여 예산도 줄줄 새고 있다. 부정 수급하는 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김위상 의원이 고용노동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7월 동안 동일 사업장에서 반복적으로 실업급여를 받은 근로자는 1만5000명에 달했다. 이는 전체 반복수급의 19.1%를 차지한다. 어업에 종사하는 한 60대 남성은 2005년부터 매년 같은 회사에서 퇴사와 입사를 반복하며 20년간 실업급여 약 9700만 원을 받았다.
실업급여 반복 수급자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지난 7월 기준 전체 반복 수급자는 8만1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 증가했다. 반복 수급자 중 동일 사업장에서 수급하는 비율도 2019년 10.9%에서 지난해 18.8%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김위상 의원은 실업급여 하한액이 최저임금의 80%로 연동돼 있다 보니 올해 기준 월 최소 189만 원(하루 8시간 근무)을 받을 수 있는 점도 반복 수급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았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가운데)과 이기일(오른쪽)·박민수 1,2 차관이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열린 보건복지부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 출석해 자료를 살피는 모습. /이새롬 기자 |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남희 민주당은 지난 5년간 불법행위로 인한 국민건강보험의 재정 누수가 1조4403억 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 중 건보공단이 환수한 금액은 모두 1089억 원으로 환수율은 7.56%에 불과했다. 90%가 넘는 1조3314억 원은 환수되지 않았다. 건보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재정을 고갈시키는 불법행위의 예방과 적발에 필요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매년 국감에서 예산 낭비 사례가 빈번하게 드러나는 만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시민단체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하승수 변호사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행정기관 등 직무를 감찰하는 감사원과 부패를 방지하는 책임 의무가 있는 국민권익위원회가 제 역할을 못 하고 있고, 국회도 제대로 행정부를 감사하지 못하고 있다"며 "국가 중요 기관의 견제나 감시를 통해 예산 낭비를 막거나 예산과 관련한 부조리와 부패를 막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다 보니 문제가 더 심각해지고 해마다 국감에서도 이런 지적들이 나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하 변호사는 "지난 정부의 가덕도 신공항 추진, 현 정부의 대통령실 이전과 같이 정치적 판단에 따라 예산이 낭비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어 총체적인 문제"라면서 "아직 활성화가 잘 안 돼 있지만 주민들이 지자체에서 예산과 관련해 바로 시정하지 않으면 '주민감사청구'로 소송할 수 있는 것처럼, 참여정부 시절 관료들이 반대해 무위로 끝난 국가 차원에서의 '국민소송제' 도입을 다시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