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정치자금법, 원외 정치인 규정 안 해
지방의원 등은 헌법소원으로 후원회 설립
원외는 아직...지구당, 또 다른 장벽 지적
국회의원과 지방의회의원은 평소에도 후원회를 설치해 원활한 정치 활동을 위한 후원금 모집이 가능하다. 배지가 없는 원외 정치인들은 정치자금법에 따라 후원회를 만들 수 없다. 최근 지구당 부활이 대안으로 언급되고 있지만 옥상옥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배정한 기자 |
[더팩트ㅣ조채원·김정수 기자] 국회의원은 평소 후원회를 두고 정치활동을 위한 후원금을 모집할 수 있다. 지난달 1일부터는 지방의원도 후원회 설치가 가능해졌다. 그런데 원외 정치인은 아무리 자질이 출중해도, 지역구에선 사실상 국회의원 역할을 하는 지역(당협)위원장을 맡고 있어도 후원금을 받을 수 없다. 현행 정치자금법이 그렇다.
후원금 제도에서 원외 정치인 배제는 결국 금수저가 아닌 이상, 현역 의원과 공정한 경쟁이 어렵다는 구조적 문제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원외 정치인에게도 상시 후원금 모금의 기회를 열어야 할까. 최근 '지구당 부활' 등이 대안으로 언급되고 있지만 정치 신인에게 또 다른 진입 장벽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현역 의원만 상시 후원회 설립 가능…돈 없으면 정치 못 해
정치자금법 제6조는 후원회를 만들 수 있는 '후원회 지정권자'를 규정하고 있다. 대상은 중앙당, 국회의원, 지방의원부터 대통령 선거·국회의원 선거·지방선거에 출마하는 후보자 및 예비후보자 등이다. 후원회 지정권자가 아닌 원외 정치인은 후원회를 만들 수 없다. 이를 위반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후원금 모금이 가능한 선거 때도 격차가 생기는 건 마찬가지다. 현역 국회의원의 경우 선거가 있는 해에는 3억 원, 선거가 없는 해에는 1억5000만 원까지 모금이 가능하다. 그러나 원외 정치인은 총선의 경우 선거 120일 전 예비후보로 등록한 후부터 최대 1억5000만 원까지만 모금할 수 있다. 모금 기간은 더 짧고 모금 한도도 2배의 차이를 안고 시작하는 것이다. '있는 집' 아니면 선거 때 쓸 돈을 충당하기 어렵고 '없는 집'은 정치활동에 엄두도 내지 못한다. 원외 정치인도 정치 후원금을 모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후원회 지정권자 확대됐지만…여전히 '원외 정치인'은 소외
원외 정치인에게 불리한 정치자금법 문제는 2018년 고(故) 노회찬 전 의원 사망을 계기로 불거졌다. 노 전 의원이 원외 정치인 시절 정치자금을 받은 사실이 알려져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정치자금법을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당시 정치자금법은 광역·기초 단체장이나 기초·광역의회 의원 등 지방선거 '예비후보' 단계에서는 후원회를 허용하지 않았다.
2018년 10월 더불어민주당 지역위원장 20명은 정치자금법 제6조 등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당시 청구인들은 재력가가 아닌 이상 원외 정치인들의 원활한 정치활동은 후원금 없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불법 정치자금을 막는 법이 오히려 불법을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들은 헌법재판소가 후원회 제도를 '비공식 정치자금의 양성화 계기'라고 판단한 점을 내세웠다. 2022년 10월 27일 헌재는 정치자금법 제6조의 위헌확인 청구를 기각했다.
헌재는 2022년 11월 지방의원들의 후원회 설치 금지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지난 2월 정치자금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지난달 1일부터 지방의원 후원회가 설립되고 있다. /이새롬 기자 |
선출직 공직자에 대한 후원회 설치 대상은 점점 확대됐다. 노 전 의원 사망(7월 23일)에 앞서 2018년 3월 당시 경기도지사 예비후보였던 이재명 민주당 당대표 후보는 '지방선거에 출마하려는 광역단체장 예비후보의 후원회 설립 금지는 위헌'이란 헌법소원을 냈다. 2019년 12월 27일 헌재는 헌법불합치를 결정했다. 헌법이 보장한 평등권 등을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을 헌재가 받아들인 것이다. 헌재는 광역단체장 예비후보자 후원회 설치를 국회의원 선거 예비후보자와 달리 취급하는 것은 '불합리한 차별'이라고 판시했다.
2018년 지방선거에 당선된 지방의원들은 2019년 5월 21일 '국회의원만 가능한 후원회 조성은 지방의원 차별'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헌재는 2022년 11월 24일 지방의원들의 후원회 설치 금지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지방의원이 지역 의사를 형성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이들의 원활한 의정활동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후원회를 허용하는 방안을 마련해줄 필요가 있다고 봤다. 후원회 지정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정치자금의 음성화가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이후 법령 개정으로 지방의원에 대한 연간 기부한도액은 시·도의원 200만 원, 군·구의원은 100만 원으로 연간 총모금액은 각각 5000만 원, 3000만 원으로 규정됐다.
◆'지구당 부활론' 언급되지만…'또 다른 진입장벽' 지적도
원외 정치인이 후원금 창구를 열 수 있도록 하는 방안 중 하나로 폐지된 '지구당 부활'이 거론된다. 지구당은 법적인 지위를 갖는 중앙당 산하 정당 조직을 말한다. 평시에는 당원 교육, 민원 해결, 여론 수렴 등의 기능을 수행했다. 소속 유급 사무직원을 둘 수 있고 중앙당의 지원을 받을수도, 후원금도 모집할 수 있었다. 정치 신인의 기회의 장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구당은 2002년 '불법 대선자금 수사'를 계기로 불법자금 수수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어 2004년 당시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이었던 오세훈 서울시장의 '오세훈법'(정치자금법·정당법·공직선거법 개정안) 통과로 폐지됐다.
지구당이 부활하면 원외 정치인의 정계 진출 문이 넓어질까. 새로운 장벽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1일 발간한 '지구당 부활의 쟁점과 시사점'에서 "현재 지구당의 필요성은 주로 원외 정치인의 후원금 모금과 정치 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다"며 "지역(당협)위원장이 아닌 다른 정치신인에게는 또 다른 진입장벽으로 작용한다"고 짚었다. 지구당의 원외 지역위원장에게만 후원금 모금이 허용된다면 그렇지 않은 원외 정치인에게는 현행 정치자금법과 더불어 또 다른 진입장벽이 될 수 있단 얘기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더팩트>와 통화에서 "지구당이 부활하면 원래 돈이 많거나, 많은 돈을 모을 수 있는 사람이 지구당위원장이 될 가능성이 커진다"며 '공정 경쟁 보장'에 회의적인 의견을 냈다. 조 교수는 "정당에 기부하되 원외 정치인을 지명해 후원하는 방식을 도입한다든지, 정당이 자체적으로 경상보조금 일부를 원외 정치인의 정치활동을 지원하는 데 사용하도록 하는 등 현행 제도에서도 여러 방안들을 고려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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