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1993년 3월 8일 준전시상태 선포
외교부, 전 재외공관에 정보 수집 지시
주중 대사관, 北 대사관 직원 접촉해 보고
외교부는 매년 '30년 경과 비밀해제 외교문서'를 공개한다. <더팩트>는 1993년 3월 8일 북한의 준전시상태 선포와 관련한 정보 수집 차원에서 주중국 북한 대사관 직원과 접촉한 주중 대사관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임영무 기자 |
외교부는 매년 30년이 지난 기밀문서를 일반에게 공개합니다. 공개된 전문에는 치열하고 긴박한 외교의 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전문을 한 장씩 넘겨 읽다 보면 당시의 상황이 생생히 펼쳐집니다. 여러 장의 사진을 이어 붙이면 영화가 되듯이 말이죠. <더팩트>는 외교부가 공개한 '그날의 이야기'를 매주 재구성해 봅니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외교비사(外交秘史)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감춰져 있었을까요? <편집자 주>
[더팩트ㅣ김정수 기자] 1993년은 외교부가 발칵 뒤집힌 해다. 북한은 그해 3월 8일 준전시상태를 10년 만에 선포했고, 나흘 뒤에는 핵확산방지조약(NPT) 탈퇴를 기습 선언했다. 당시 북한 주재 외교관 철수설까지 나돌면서 2차 한국전쟁이 발발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외교부는 정보분석실을 가동하고 전(全) 재외공관에 북한 동향을 입수하라는 전문을 긴급 타전했다. 가장 순도 높은 정보를 제공한 곳은 성명불상의 주중국 북한 대사관 직원과 접촉한 주중 대사관이었다.
1993년 3월 8일 김정일 당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은 준전시상태를 발동했다. 김정일 사령관 명의로 작성된 선포문은 한미 팀스피릿 훈련이 남북기본합의서(남북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를 정면으로 위반했다며 자위권 차원에서 준전시상태를 실시한다고 적시됐다. 외교부는 북한의 저의를 파악하기 위해 서둘러 정보분석실을 가동, 북한의 준전시상태 선포는 한미 팀스피릿 훈련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북핵 특별사찰 압박, 체제 위기의식에 따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내 파트를 통해 이같은 사실을 인지한 외교부 장관은 이튿날인 3월 9일 전 재외공관에 북한 관련 사안을 '수시로' 보고하라는 전문을 보냈다. 특히 외교부 장관은 북한의 준전시상태가 1983년 2월 1일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정보분석실 분석을 토대로 IAEA 사찰에 대한 북한 동향과 주재국 정세 평가를 당부했다.
재외공관에서는 외교부 장관의 전문을 받은 당일 곧바로 동향 보고에 나섰다. 그만큼 당시 한반도 정세가 일촉즉발의 위기였다는 점을 보여준다. 재외공관에서는 현지 보도와 관계자 면담 결과를 바탕으로 전문을 작성했다. 현지 반응은 외교부 정보분석실의 판단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주스위스 대사관과 주중 대사관의 보고가 비교적 소상했다.
주스위스 대사관은 현지 보도를 인용해 김정일 사령관의 중국 베이징 방문 취소가 의전 때문이라고 알려졌지만, 실은 북한의 핵사찰 거부로 인해 중국과 관계가 악화한 것이라고 보고했다. 또한 북한 사회의 불안전성을 비롯해 김정일 사령관 승계 과정에서 청년 장교 그룹의 '김정일 제거' 가능성 내용을 첨부했다. 이어 북한이 준전시상태 선포 이후 이례적으로 10만 군중을 동원했다고 덧붙였다.
주중 대사관은 중국 주재 북한 대사의 기자회견 내용을 입수했다. 주중 대사관은 "한미 팀스피릿 훈련으로 인해 김정일 사령관이 준전시상태 명령을 내렸다" "한국 팀스피릿 훈련에 고성능 무기들이 다수 동원됐기 때문에 준전시상태를 10년 만에 선포했다" 등 북한 대사 발언을 확인했다. 이같은 정보는 다른 재외공관에서는 확인하지 못한 것들이었다.
1993년 3월 12일 북한이 준전시상태를 유지한 가운데 NPT를 탈퇴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외교부는 더욱 긴박하게 움직였다. 무엇보다 '전쟁이 발발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외교부를 더욱 바삐 움직이게 했다. 당시 북한이 평양 주재 외교관들에게 떠나라고 통보했다는 중국 현지 보도가 결정적이었다. 외교부 장관은 주중 대사관에 사실 관계 확인을 지시했다. 주중 대사관은 '외교관 철수설'에 대해 사실일 가능성이 희박하다면서도 북한이 입국 비자 발급을 전면 중단했다는 새로운 정황을 입수했다.
주중 대사관은 외교부 장관에게 '긴급 전문'으로 북한 대사관 직원을 통해 입수한 정보를 보고했다. /외교부 제공 |
외교부 장관은 이를 토대로 33개 재외공관에 "북한 내부의 이상 정세가 감지되고 있다"며 북한 특이 동향을 수시로 보고하라고 주문했다. 북한이 외국인 입국을 막은 것은 전쟁을 염두에 둔 행위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여러 재외공관에서 다양한 동향을 보고한 가운데 주중 대사관이 다양한 휴민트(HUMINT·인간정보)를 활용, 가장 구체적인 정보를 확보해 냈다.
주중 대사관은 1993년 3월 13일 중국 주재 북한 대사관 직원의 진술을 정리한 '긴급 전문'을 외교부 장관에게 보냈다. 해당 직원의 신상이 적시되지 않은 점을 미뤄보면 보안을 요하는 한국의 비공식 요원이거나, 포섭에 성공한 우리의 정보원일 가능성이 점쳐진다. 직원의 진술은 '내부자'가 아니라면 말할 수 없는 내용들이었다.
해당 직원의 진술에 따르면 북한은 1993년 3월 9일 비자 접수를 중단했다. 이어 3월 10일 입국을 신청한 유엔 대표단의 비자발급을 거부했다. 북한 대사관 직원은 "비자 발급 거부는 상황이 위험해 여행객 안전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라며 "준전시상태가 지속되는 한 비자발급 중지 조치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중 대사관은 이에 그치지 않고 최대한 많은 정보원과 접촉해 진실에 접근하고자 노력했다. 주중 대사관은 북한 소식통으로부터 취득한 내용을 정리해 외교부 장관에게 긴급 전문으로 전달했다. 북한 소식통은 북한에 있는 외국인의 경우, 평양 이외 지역 방문과 평양 주민 접촉이 금지됐다고 했다. 특히 평양 부근 3개 지역(남포, 태성 수원지, 소감 유원지)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3일 전에 신청해야 한다는 예외 사항까지 전했다.
주중 대사관은 또 다른 북한 소식통을 통해 평양 시내에 오전 11시부터 1시간 동안 공습경보가 내려졌고 평양 시민이 대피훈련을 가진 정황을 포착해 냈다. 북한이 전쟁을 준비하는 분위기였던 탓에 정보의 편향성이 발생할 우려가 있었지만 주중 대사관은 '반대 정보'로 분류되는 북·중 항공 및 열차 운행 정상화, 북·중 국제전화 정상화 등도 함께 보고했다.
외교부의 치열했던 첩보전은 1993년 3월 24일 정오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북한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보도'를 통해 준전시상태를 해제한다고 발표했다. 외교부 외교정책기획실 특수정책과는 북한의 준전시상태가 16일 만에 종료된 이유로 경제적 어려움을 꼽았다. 준전시상태에서는 군인과 주민들이 대거 동원되는 탓에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북한 경제가 상당한 타격을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외교부 장관은 전 재외공관에 '북한, 준전시상태 해제'라는 제목의 전문을 보내 "북한은 군 최고사령관의 명령을 하달하고 전군과 전민이 경제건설에 힘쓸 것을 강조했다"며 "북한이 준전시상태 해제 명령을 대외적으로 공표한 것은 예년에 볼 수 없었던 이례적인 조치"라고 밝혔다. 사태가 수습되면서 관련 외교부 문건은 1993년 3월 25일 주라스팔마스 총영사의 현지 보도 기사 보고를 끝으로 생산되지 않았다.
js8814@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