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북러 밀착에도 외교부 상대 질의 '0건'
혁신당, 대정부 질문 '불발'…여야 공방 탓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가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정무직 인선 발표 브리핑에서 지명 소감을 밝히며 머리를 만지고 있다. 이 후보자는 약 5분 30초 정도 이례적으로 지명 소감을 밝혔다. /뉴시스 |
<더팩트> 정치부는 여의도 정가, 대통령실, 외교·통일부 등을 취재한 기자들의 '방담'을 통해 한 주간 이슈를 둘러싼 뒷이야기와 정치권 속마음을 다루는 [주간정담(政談)] 코너를 진행합니다. 주간정담은 현장에서 발품을 판 취재 기자들이 전하는 생생한 취재 후기입니다. 방담의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대화체로 정리했습니다.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정리=신진환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4일 환경부와 금융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에 대한 장관급 인사를 단행했다. 이번 인사를 평가절하한 더불어민주당은 특히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에 대해 대한민국 방송을 극우 유튜브 채널로 전락시킬 부적격 인사라며 고강도 인사청문회를 예고했다. 국회 탄핵안 처리를 앞두고 사퇴한 김홍일 전 방통위원장만큼 벼르는 모습이다. 정작 이 후보자는 지명 소감에서 민주당을 비판하거나 민감한 정치적 현안에 관해 거침없이 견해를 밝히며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
-국회는 이번 주 내내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윤 대통령이 지난 21대 국회 때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던 '채 상병 특검법' 표결을 두고 여야가 첨예하게 맞붙었다. 국민의힘은 표결을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에 나섰지만 결국 무력하게 끝났다. 이 과정에서 잠든 일부 여당 의원의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다. 거듭된 거대 여야의 대치 탓에 지난 2일부터 사흘간의 22대 첫 대정부 질문도 파행됐다. 아울러 북한과 러시아가 밀착하는 등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 정세가 급변하는 가운데서도 외교부를 상대로 한 질의조차 없었다. 비교섭단체인 조국혁신당의 대정부 질문도 불발됐다.
이 후보자의 지명 소감 길이는 물론 발언 수위도 셌다. 사진은 정무직 인선 브리핑을 위해 브리핑실로 입장하는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 바로 뒤에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 김완섭 환경부 장관 후보자, 김병환 금융위원장 후보자. /뉴시스 |
◆10분간 거침없이 쏟아낸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일 장차관급 인사를 단행했는데, 단연 방송통신위원장 후보 지명에 가장 눈길이 갔어.
-김홍일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사퇴한 지 이틀 만에 후임으로 이진숙 전 대전MBC 사장을 내정한 거야. 당초 대통령실이 김 전 위원장 면직안 재가 당일 후임자를 바로 발표하려고 했는데 '시청역 급발진 사고'로 지명을 하루 미뤘다는 얘기도 나왔어. 이미 김 전 위원장이 사퇴하자마자 이 전 사장이 후임이 될 거라는 풍문이 들렸어. 그래서 취재진은 이날 인사 브리핑할 때 이 후보자 지명을 예상했어.
-이 후보자 인사 브리핑은 이전과 분위기가 달랐어. 발표하기 위해 정진석 비서실장이 내려왔는데 그 뒤로 바로 이 후보자가 따라 들어왔어. 이어서 김병환 금융위원장 후보자, 김완섭 환경부 장관 후보자는 약간 어색해하면서 입장하는데, 이 후보자는 당당한 표정이었어.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일 장관급인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에 이진숙 전 대전MBC 사장을 지명했다. /이새롬 기자 |
-정 비서실장의 소개 이후 이 후보자가 소감을 밝혔는데, '취임식 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어. 이 후보자는 약 5분 30초 소감을 말하면서 전임 방통위원장들의 자진 사퇴, 야당의 탄핵 시도 등 민감한 정치적 현안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말하더라고. 이른바 '바이든 날리면'을 보도했던 MBC를 향해선 대놓고 "최소한의 보도 준칙도 무시한 보도"라고도 주장했어. MBC 출입 기자의 '정치적 편향성 등이 부적격 인사라는 지적이 있다'라는 질문에는 "기사와 취재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던 사람"이라고 반박했어. 이 후보자가 질의응답까지 약 10분간 발언을 이어가는 내내 "와"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어. 인사청문회를 앞둔 후보자인데도 제1야당을 향한 작심 발언도 서슴지 않았어. 아주 이례적이었지. 브리핑 이후 기자들 사이에선 "인사청문회를 낙마할 생각인가"라는 뒷말도 나왔어.
-또 이 후보자는 인사 발표 이후 대통령실 기자실을 돌면서 일일이 기자들과 악수하고 인사를 나눴어. 후보자가 직접 기자실을 찾아온 경우는 이전에는 없었어. 아주 이례적인 일이야. 정치권에서는 이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보고서가 채택되지 않더라도 윤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할 것으로 예상하더라고. 앞으로 또 야당이 이 후보자 탄핵을 시도하면 자진 사퇴하는 일이 반복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어. 대통령실은 "국정의 공백이 생기는 상황을 계속해서 만들어가는 민주당의 탄핵 남발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며 민주당에 모든 책임을 돌렸는데, '협치 복원'에 대해 대통령실도 엄중하게 인식하고 변화를 보여주면 좋겠어.
지난 2일 국회에서 열린 정치·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외교부에 질의한 국회의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대정부질문은 여야 갈등으로 시작 2시간 만에 중단됐고 이후 열리지 않았다. /배정한 기자 |
◆질문 한번 못 받은 외교부...'북러 밀착' 무관심한 국회?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외교부에 질의한 국회의원이 한 명도 없었다고?
-응. 조태열 외교부 장관과 김홍균 제1차관은 지난 2일 정치·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 질문 참석을 위해 국회를 찾았어. 최근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 밀착으로 한반도 안보 정세가 크게 우려되는 상황이라 관련된 질의가 있을 것으로 예상됐지. 외교부에서도 대정부 질문 요지서 등을 통해 충실한 답변을 준비했을 것 같아. 하지만 조 장관이나 김 차관에게 질의한 여야 국회의원은 단 한 명도 없었어.
-당시 질의를 받았던 국무위원은 한덕수 국무총리,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박성재 법무부 장관, 신원식 국방부 장관, 김영호 통일부 장관 등이었는데, 대부분 채 상병 외압 의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사법리스크 사건이 중점적으로 제기됐지.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 협력에 대한 평가가 한 총리에게 주어진 적은 있었지만, 외교부에 이를 묻는 의원은 없었어.
여야는 북러 정상회담 전후로 한반도 안보 정세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지만, 대정부 질문에선 그 누구도 외교부에 묻지 않았다. /임영무 기자 |
-여야 모두 북러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한목소리로 우려하지 않았나?
-맞아. 국민의힘은 지난달 19일 북러 정상회담 개최 전 대변인 명의 논평으로 "북한과 러시아가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를 맺기로 합의해 군사기술 분야에 더욱 밀착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고, 이후 수석대변인 명의로는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동맹 복원은 한반도를 넘어 전 세계 평화의 위협"이라는 논평을 냈어. 민주당도 북러 밀착을 통한 '신냉전 구도 가속화'라는 입장을 밝히면서 정부의 조속한 대처를 촉구했지.
-여야 모두 한반도를 둘러싼 위기감을 감지했다는 건데, 막상 대정부 질문에선 그 누구도 외교부에 묻지 않았던 거야. 북러 정상회담 결과와 후폭풍을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했지만 실상은 '무관심'에 가깝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지. 게다가 당시 대정부 질문은 여야 갈등으로 중도 파행됐고, 이튿날부터는 대정부 질문 자체가 무산됐어. 북러 밀착에 따른 군사 협력 강화를 국회가 너무 안일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해.
한덕수 국무총리를 비롯한 정부부처 관계자들이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5회 국회(임시회) 제5차 본회의에 참석한 뒤 대정부질문이 무산되자 회의실을 나서고 있다./ 배정한 기자 |
◆앞에서 끊겨버려서…조국혁신당, 대정부 질의 '무산'
-22대 국회 첫 대정부 질문이 첫날인 지난 2일 두 시간 만에 파행했다며?
-대정부 질문은 국회가 정부의 특정 정책이나 사안을 집중적으로 검증하는 자리야. 정부의 주요 부처나 기관장들이 본회의장에서 국회의원들의 질문을 받지. 대정부 질문은 지난 2일 정치·외교·통일·안보 분야를 시작으로 3일은 경제 분야, 4일은 교육·사회·문화 분야 순으로 계획됐어. 의석 배분에 따라 더불어민주당 7명, 국민의힘 4명, 비교섭단체 1명으로 진행될 예정이었지. 혁신당은 2일, 개혁신당은 3일, 진보당은 4일 비교섭단체 몫으로 들어가기로 했어.
-민주당 등 야당은 2일 대정부 질문 후 본회의에 채해병 특검법 등을 상정하겠다고 했어. 국민의힘은 대정부 질문을 위해 열린 본회의에서 여야가 합의하지 않은 법안을 처리하는 것은 관례에 맞지 않다고 했지. 그러다 김병주 민주당 의원이 대정부 질문에서 "정신 나간 국민의힘 의원들은 당 논평에서 '한·미·일 동맹'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말한 것이 불씨가 됐어. 국민의힘 의원들은 '정신나간' 표현에 사과를 요구하며 항의했고, 여야 의원 간 고성이 오갔지. 결국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정회를 선언했고 회의는 속개되지 못했어. 그대로 끝나버린 거지.
지난 2일 김병주 민주당 의원의 막말 논란으로 본회의가 파행되면서 외교 전문가인 김준형 조국혁신당 의원(사진)의 첫 대정부 질문 데뷔전이 미뤄졌다. /남윤호 기자 |
-김병주 의원 뒤 순서는 대정부질문을 못 했겠네?
-혁신당에서 대정부 질문에 나선 인물은 김준형 의원이었어. 사실 의석수 10인 이하 비교섭단체는 국회 운영에서 소외되는 만큼 주목받을 기회가 많지 않잖아. 김 의원은 국립외교원장을 지낸 외교 전문가라 관심이 쏠렸지. '처음이라 떨린다'는 김 의원을 동료 의원들과 출입 기자들이 "잘하시라"며 응원하는 등 훈훈한 분위기도 연출됐는데 말이야. 김 의원실 관계자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많이 아쉬운 건 사실"이라며 "준비한 내용들은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를 노려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어.
-사실 대정부 질문이 제대로 진행될지 의구심을 품는 의원들도 많았대. 채해병 특검법, 방송4법 등이 블랙홀이 되다 보니 준비하면서도 '우린 어차피 들러리'라고 자조하기도 했다더라고. 정쟁에 휩싸인 국회에 써야 하는 사회적 비용이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드네.
◆방담 참석 기자 = 이철영 부장, 신진환 기자, 박숙현 기자, 조채원 기자, 김세정 기자, 김정수 기자, 조성은 기자, 설상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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