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美 맹비난' 뒤, 北과 '준동맹 수준' 군사 협력
대북제재 위반에도 리무진...北 노동자 파견 가능성
북한과 러시아가 준동맹에 수준의 군사 협력을 맺고, 미국 등 서방의 금융 제재를 우회할 수 있는 결제 체계에 동참할 전망이다. 북러 양국은 대북제재를 사실상 무시하며 다양한 협력을 이어갈 것으로도 관측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의 24년 만의 방북에 한반도 안보 정세가 크게 요동치는 분위기다. 오른쪽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AP. 뉴시스 |
[더팩트ㅣ김정수 기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4년 만에 북한을 찾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포괄적 전략동반자 협정을 체결했다. 러시아로서는 북한을 '정상 국가'로 격상한 셈이다. 양국은 또 자동 군사 개입에 가까운 수준의 군사 협력을 맺었고, 서방의 금융 제재를 우회할 수 있는 결제 체계에도 동참할 것으로 보인다.
북러의 '위험한' 밀착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미국 주도의 제재를 회피하고자 하는 러시아와, 국제사회 왕따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북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북러 양국은 서로를 활용하는 동시에 '반미 연대'라는 공감을 바탕으로 물밑에서 각종 제재를 회피하며 교류 협력을 이어갈 전망이다.
러시아 국영 리아노보스티 통신 등에 따르면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은 19일 북한 평양 금수산 영빈관에서 확대 정상회담을 마친 뒤 약 두 시간에 걸쳐 단독 회담을 가졌다. 회담 이후 양국 정상은 '포괄적 전략동반자 협정'에 서명하며 다양한 분야에서의 협력을 공식화했다. 특히 푸틴 대통령은 "오늘 체결한 포괄적 전략동반자 협정은 무엇보다 조약 당사자 중 한쪽이 침략을 받을 경우 상호 지원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이 언급한 '한쪽 침략 시 상호 지원 제공'은 과거 북한과 소련이 맺은 '유사시 자동 군사 개입' 조항의 부활과 가까운 의미로 해석된다. 앞서 북한은 소련과 지난 1961년 7월 유사 상황이 발생할 때 자동으로 군사를 개입한다는 내용의 '조소 우호 협조 및 상호 원조 조약'을 맺었다. 하지만 소련 붕괴 이후 2002년 2월 북한과 러시아가 '친선, 선린, 협조 조약'을 맺으면서 해당 조항이 빠지게 됐다.
북러가 협의한 이같은 군사 협력은 미국 등 서방이 우려했던 사안이다. 그럼에도 푸틴 대통령은 이를 공개하며 "러시아는 북한과의 군사 기술 협력을 배제하지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앞서 러시아는 이번 포괄적 전략동반자 협정 체결이 과거 조약들을 대체할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지만, 군사 개입 조항이 포함될 가능성은 비교적 낮게 점쳐졌다. 러시아가 주변국인 한국과 중국, 일본 등과의 외교 관계를 고려한다면 섣불리 북한과 손잡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북한과의 군사 협력 수준을 높이겠다는 푸틴 대통령의 의지는 확고했났다.
푸틴 대통령이 방북에 앞서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 게재한 기고문을 살펴보면 그 의중이 '반미'(反美)'에 기반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의 기고문은 모두 세 단락으로 '북한과 소련의 과거 혈맹 관계'→'미국에 대한 비난'→'서방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결제 시스템 구축' 순으로 돼 있다. 종합해 보면 푸틴 대통령의 방북과 북러 관계 격상은 미국과 대척점에 서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해석이다.
북한과 러시아가 이번 협정 체결을 통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대북제재 위반과 관련된 협의를 이어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AP. 뉴시스 |
북러 양국은 푸틴 대통령이 언급한 '서방의 통제를 받지 않는 무역 및 호상(상호) 결제체계'에도 협력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지난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 등의 주도로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서 퇴출당했다. 러시아는 이에 대처하는 차원에서 러시아금융통신시스템(SPFS)을 개발했고, 여기에 북한을 편입시키려는 의지가 강하다. 실제로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북한 주재 러시아 대사는 북러 정상회담 전 언론 인터뷰를 통해 '양국이 루블화 결제 시스템 구축을 위해 노력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북한 역시 미국 등 국제사회의 철저한 제재로 인해 대안이 필요한 상황이다.
포괄적 전략동반자 협정에서 양국은 군사·경제뿐 아니라 에너지, 교통, 철도, 농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협력하기로 했다. 푸틴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단독 회담에 앞서 열린 확대 정상회담에서는 해당 분야 책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의제를 논의했다. 이후 협력 사안으로 '두만강 국경도로 다리 건설'이 공개됐다.
두만강은 북한과 러시아 국경에 있고, 그 위로 건설된 다리에는 철도 운송만 이뤄지고 있다. 여기에 추가로 다리가 건설돼 차량이 오갈 수 있다면 양국 간 인적, 물적 교류가 활성화할 것으로 예측된다. 문제는 이같은 일련의 협의 사안이 '북한 노동자 파견'으로 이어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대북제재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과정에서 인구 감소로 인한 노동력 부족 문제를 겪고 있고, 북한은 외화벌이에 대한 수요가 커 이해관계가 일치한다. 양국이 회담 이후 보건, 교육 등에 관련한 협정을 체결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그간 러시아는 자국 내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에게 유학생 비자 등을 활용해 비자를 발급, 대북제재를 우회한 바 있다.
러시아와 북한이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를 크게 고려하지 않겠다는 점은 양국 정상의 행보에서도 드러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푸틴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에게 러시아제 최고급 리무진 '아우루스' 차량을 선물했다. 지난 2월에 이어 공식적으로 두 번째다. 김 위원장에게 운송수단을 공급하는 건 안보리 대북제재 위반이지만 푸틴 대통령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은 셈이다. 김 위원장 역시 푸틴 대통령이 평양에 도착하자 선물로 받았던 아우루스 차량을 준비해 동승하며 정상회담 일정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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