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北 '정상 국가' 격상..."속내는 금융 제재·노동력 해결"
입력: 2024.06.19 00:00 / 수정: 2024.06.19 00:00

푸틴, 24년만 방북...'18~19일' 회담 개최
제재 맞서 '루블화 연대' 北 끌어들일 듯
전쟁에 인구 감소...노동자 파견 가능성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4년 만에 북한 땅을 밟는다. 양국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포괄적 전략동반자 관계를 맺고 다양한 분야에 대한 협력을 강화할 전망이다. 사진은 지난해 9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러시아 극동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악수하고 있는 모습. /AP.뉴시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4년 만에 북한 땅을 밟는다. 양국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포괄적 전략동반자 관계'를 맺고 다양한 분야에 대한 협력을 강화할 전망이다. 사진은 지난해 9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러시아 극동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악수하고 있는 모습. /AP.뉴시스

[더팩트ㅣ김정수 기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4년 만에 북한 땅을 밟으며 북러 정상회담이 본격 개최된다. 양국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포괄적 전략동반자 관계'를 맺을 전망이다. 러시아로서는 북한을 정상 국가로 인정하겠다는 의미인데,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서방의 금융 제재 돌파를 위한 하나의 포석으로 풀이된다.

양국은 노동자 파견 의제를 논의할 것으로도 보인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치르며 인구 감소로 인한 노동력 부족 문제를 겪고 있고, 북한은 외화 벌이에 대한 수요가 크다. 다만 북한 노동자 해외파견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 위반에 해당하는 만큼 양국이 이에 합의한다면 공개하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다.

◆푸틴, 24년만 방북...서방 금융 제재에 SPFS 체제 편입 등 연대?

푸틴 대통령의 북한 도착을 시작으로 북러 정상회담이 공식적으로 시작된다. 양국 정상은 공식 환영식을 시작으로 양측 대표단 소개, 정상회담, 공동 문서 서명, 언론 발표 등 숨가쁜 일정을 보낼 예정이다. 푸틴 대통령이 18일 자정을 넘겨 북한에 도착하고, 19~20일 베트남을 국빈 방문하는 점을 미뤄보면 양국 정상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양국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을 체결할 것으로 파악되면서 협의될 의제들을 두고 다양한 가능성이 관측된다. 특히 러시아에 있어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은 북한을 정상 국가로 인정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그 만큼 양국은 이전보다 강화된 협력 관계를 구축할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는 통상 △선린 우호 관계 △상호 신뢰 협력관계 △전략적 동반자 관계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전략적 동맹 순으로 대외 관계를 관리했는데, 기존 북한과는 '선린 우호'에 머물렀던 터라 전 분야에 걸친 두터운 협력을 꾸릴 것으로 보인다.

우선 러시아가 북한에 손을 내민 가장 큰 이유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미국 등 서방의 금융 제재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나온다. 푸틴 대통령은 방북에 앞서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 "서방의 통제를 받지 않는 무역 및 호상(상호) 결제체계를 발전시키고, 일방적인 비합법적 제한조치들을 공동으로 반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 주요 은행들은 지난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 등의 주도로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서 퇴출된 바 있다. 달러나 유로가 있어도 거래 자체를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러시아는 이를 대체하는 차원에서 러시아금융통신시스템(SPFS)를 개발했지만, 금융 제재의 심화로 경제적 타격은 오늘날까지 불가피한 상황이다.

일례로 중국은 미국 등 서방의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 않고 러시아와 무역을 유지했다. 중국은 '러시아 무기 제조의 핵심 부품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미국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민간용품이라는 명목으로 러시아에 반도체, 자동차, 모형 항공기 부품 등을 수출했다.

하지만 미국이 최근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을 중국 은행 등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히면서 그나마 중국과 무역 관계를 유지하던 러시아로서는 비상이 걸렸다. 이에 러시아는 SPFS를 통한 루블화 연대 구축으로 서방의 제재를 무력화하겠다는 전략을 구사하는 차원에서 북한에 손을 내밀었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러북 간의 경제 협력이라는 의미를 넘어 향후 러시아의 외교 전략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러시아 전문가인 현승수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러시아와 북한의 무역액은 1억 달러를 넘은 적이 없는 미미한 수준으로 당장 러시아가 북한으로부터 경제적 이익을 받기 위해 협력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러시아는 미국 등 서방의 제재 압박에도 불구하고 자국이 추구하는 세계 전략을 북한을 통해 구현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러시아는 브릭스(BRICS) 등을 활용해 '달러를 사용하지 말고 미국 경제력의 힘을 빼자'는 뜻을 갖고 있는 나라들과 규합하고 이를 확대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라며 "당장 북한의 경제력은 미미하지만 러시아 입장에서는 북한을 정상 국가로 만들어 그러한 연대 안에서 북한도 이익을 볼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고, 북한도 이를 승낙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러시아와 중국이 주도하는 신흥 경제국 연합체인 브릭스는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뜻하는 의미에서 현재는 여러 국가들이 가입을 원하는 단체가 됐다. 사우디아라비아가 브릭스에 가입했고 인도네시아, 태국, 리비아, 바레인 등은 가입을 추진 중이거나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우크라이나 평화회의 공동성명서에 서명을 하지 않은 국가들이기도 하다.

지난 2019년 11월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에 따른 해외 근로 북한 노동자의 송한 시한이 다가오자 북한 노동자들이 귀국을 위해 러시아 모스크바 공항에 모여 있는 모습. /뉴시스
지난 2019년 11월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에 따른 해외 근로 북한 노동자의 송한 시한이 다가오자 북한 노동자들이 귀국을 위해 러시아 모스크바 공항에 모여 있는 모습. /뉴시스

◆러시아는 '노동력', 북한은 '외화'...안보리 결의 위반 감수할까

푸틴 대통령은 방북에 앞서 북한과 교육 기관, 관광 여행·문화, 청년·체육 교류 활성화를 위한 협력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인도주의적 협력 차원의 교류로 대북 제재와는 무관하다. 러시아로서는 '대북 제재를 대놓고 위반하며 북한과 경제협력을 할 용의는 없다'는 메시지를 내놓은 셈이다.

하지만 러시아가 대북 제재 위반에 해당할 수 있는 '노동자 해외 파견'을 북한에 요청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인구 감소 문제에 따라 노동력 부족 문제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애초 러시아는 노동력 수급 문제를 중앙아시아 지역을 통해 해결했다. 타지키스탄, 키르기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국민 대다수가 이슬람교를 종교로 삼고 있는 곳이다. 문제는 지난 3월 이슬람국가(IS)의 테러 공격이 발생하면서 러시아 내에 '이슬람 포비아(이슬람 공포증)'가 자리잡았다. 이같은 상황에서 노동력이 필요한 러시아와 외화벌이가 필요한 북한 간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다. 다만 북러 회담 이후 진행되는 언론 발표에서는 관련 사안이 공개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해외 노동자 파견은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 위반 사항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과 러시아가 제재를 인정하는 가운데 할 수 있는 교류 협력은 인도적 사안 말고는 거의 없다"며 "(정상회담 결과 발표 때) 외교적 수사 형식의 표현들이 있을 것이고, 민감한 분야에서의 협력이나 구체적인 내용들은 비공식 영역으로 다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이번 푸틴 대통령의 방북 수행단에는 안드레이 벨로우소프 국방부 장관, 유리 보리소프 로스코스모스(연방우주공사) 사장 등이 동행했다. 북러 회담에서 양국이 군사 협력 관계에 대해서도 논의할 것이란 예측이 제기되는 이유다. 특히 '유사시 자동 군사개입'이라는 조항이 부활할지 주목된다.

과거 북한은 소련과 지난 1961년 7월 유사 상황이 발생할 때 자동적으로 군사를 개입한다는 내용의 '조소 우호 협조 및 상호 원조 조약'을 맺은 바 있다. 하지만 소련 붕괴 이후 지난 2002년 2월 북한과 러시아가 '친선, 선린, 협조 조약'을 맺으면서 해당 조항이 빠지게 됐다.

다만 북러 간 군사협력이 '자동 개입'이라는 수준으로 강화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은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는 군사 동맹 바로 아래의 수위이기 때문에 러시아는 한국과 북한 모두에게 수위 조절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라며 "소위 북한에는 '자동 개입 조항 같은 군사동맹까지는 아닐테니 기대하지 말라'라는 의미이고, 한국에는 '너무 우려하지 말아라'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북러 사이에 이뤄질 군사 협력 수준에 대해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우선 대통령실은 '자동 군사 개입' 수준의 조약이 이뤄질 가능성을 고려해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북러 간 협력이 국제사회 규범 아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18일 정례브리핑에서 북러 간 '포괄적 전략동반자 관계' 체결에 대해 "러시아와 북한 간의 협력이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거나 역내 평화와 안정을 저해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확고한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어 "또한 러시아 측에도 이러한 입장을 분명히 전달해 왔다"면서도 "러시아와 북한 간의 관계 설정 여부에 대해서 저희가 직접 언급하지는 않겠다"고 덧붙였다.

js8814@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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