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연이은 대통령 거부권 행사에 탄핵 운운
21대 국회 끝났는데…교체 늦어지는 의원실
사진은 윤석열 당시 대선후보가 2022년 3월 경기 부천역 앞에서 유권자들에게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는 모습. /임영무 기자 |
<더팩트> 정치부는 여의도 정가, 대통령실, 외교·통일부 등을 취재한 기자들의 '방담'을 통해 한 주간 이슈를 둘러싼 뒷이야기와 정치권 속마음을 다루는 [주간정담(政談)] 코너를 진행합니다. 주간정담은 현장에서 발품을 판 취재 기자들이 전하는 생생한 취재 후기입니다. 방담의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대화체로 정리했습니다.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정리=신진환 기자] -역대 최악의 국회라고 평가받는 21대 국회가 문을 닫았다. 22대 국회의원 300명이 지난달 30일부터 임기를 시작했다. 여야의 대치 정국은 새 국회에서도 지속되고 있다. 야권은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이후 재표결에서 부결돼 폐기된 '채 상병 특검법' 등을 재추진하고 있다. 특히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도 언급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야권의 횡포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원 구성 협상도 남아 있어 여야 간 대치는 더욱 첨예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채 상병 순직 사건 외압 의혹의 정황이 점점 짙어지자, 대통령실이 뒤늦게 해명에 나섰다. 윤 대통령에 대한 불만을 대놓고 드러내는 야당 의원들도 있다. 조국혁신당 등 일부 의원은 윤 대통령이 보낸 축하난(蘭)을 버린 것을 인증하고 있다. 마치 '챌린지'로 번지는 듯한 모습이다. 아직 의원실 교체 작업이 마무리되지 않은 곳도 있다. 여러모로 무언가 자꾸 틀어지는 정치권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9월 26일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건군 제75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당시 이종섭 국방부 장관과 대화하는 모습. 윤 대통령과 이 전 장관은 해병대 수사단이 경찰에 조사 결과를 이첩한 날 3차례 통화한 것으로 파악됐다. /대통령실 제공 |
◆대통령-국방부 장관 '전화 3통'...대통령실, 尹 '야단' 인정
-22대 국회에서도 '채상병 특검' 정국이 이어질 것 같은데, 최근 대통령실의 수사 개입 정황이 짙어진 모습이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따르면 지난해 8월 2일 윤 대통령이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에게 낮 12시께 각각 4분 5초, 13분 43초, 52초간 3차례에 걸쳐 직접 전화를 건 것으로 파악됐어. 윤 대통령이 전화하기에 앞서 같은 날 오전 해병대 수사단은 임성근 당시 해병대 1사단장 등 간부 8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경북경찰청에 이첩한 상태였어.
-그래서 야당은 두 사람이 이와 관련한 대화를 나눴을 것이라고 추측하며 공세를 펼치고 있어. 윤 대통령과 이 전 장관이 첫 통화를 마친 이후 공교롭게도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이 박정훈 대령(전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보직 해임을 통보한 걸로 알려졌어. 윤 대통령이 해병대 수사 내용을 보고 받고 화를 냈다는 이른바 'VIP 격노설'에도 힘이 실리고 있어.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세 차례 통화' 사실에 대해 어떤 입장이야?
-대통령실은 해당 보도가 나오고 초반에는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 언급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며 말을 아꼈어. 그런데 지난달 31일 대통령실 고위 공직자가 MBC와의 통화에서 별도로 입장을 밝혔어. 해당 보도에 따르면 채 상병 사망 사건 혐의자로 8명을 지목한 해병대 수사단 조사에 대해 참모들이 문제 있다고 보고했고, 대통령이 바로 잡으라고 지시했다는 거야. 또 윤 대통령이 '수사권 없는 해병대 수사단이 혐의자를 많이 만들었다', '군 부대 사망사고를 경찰이 수사하도록 개정된 군사법원법에도 맞지 않는다'는 취지로도 말했다고 해.
-사실상 'VIP 격노설'을 인정한 셈이네.
-이 관계자는 이 같은 지시는 "모두 법 테두리 안에서 이뤄졌다"며 위법은 아니라고 일축했어. 또 윤 대통령과 이 전 장관의 세 차례 통화에서 채상병 사건은 논의되지 않았다는 입장이야.
-공식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대통령실이 이렇게 입장을 내놓은 건 사태가 커지기 전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이 모였기 때문인 것으로 보여. 여권 내에서도 "국방부 국가안보실 또는 대통령 비서실에서 이 문제에 대해서 명쾌하게 명확하게 해명을 하고 끌고 왔다면 이렇게까지 논란이 되지 않을 사안(지난달 31일, 김재원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이라고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왔어.
윤 대통령이 지난달 24 서울 용산 대통령실 잔디마당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초청 만찬 간담회에서 정진석 비서실장과 함께 스테이크를 조리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참석한 기자들에게 "여러분 조언과 비판을 많이 듣고 국정운영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대통령실 제공 |
-이제부터는 'VIP 격노설' 여부가 아니라 '대통령 지시의 위법' 여부가 최대 쟁점으로 떠오게 됐어. 위법이 아니라면 대통령실은 왜 그동안 명확한 해명 요구에 침묵했는지 의문이야. 대통령실의 뒷북 인정으로 야당 공세는 더 거세질 것 같아.
-대통령실이 앞으로 더 적극적으로 리스크 관리 대응을 해야 할 것 같아. 대변인 대면 브리핑은 지난 13일 이후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어. 윤 대통령이 지난달 24일 대통령실 출입 기자단과 만찬을 겸한 기자간담회에서 "여러분 조언과 비판도 많이 듣고 국정을 운영해 나가겠다"고 한 약속을 잘 새겨주면 좋겠어.
야권이 최근 거부권 행사를 규탄하면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언급하고 있다. 사진은 윤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오후 충남 천안 동남구 재능교육연수원에서 열린 '제22대 국민의힘 국회의원 워크숍' 만찬 행사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
◆尹, 4개 연이은 거부권에 야권 '황당'…탄핵 언급도 솔솔?
-윤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야당 주도로 본회의를 통과한 지 하루 만에 전세사기특별법, 민주유공자법, 한우산업지원법, 농어업회의소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어. 윤 대통령의 14번째 거부권이야. 21대 임기가 종료되면서 법안은 자동 폐기됐지. 야당의 반발이 거세. 거친 말도 나왔다면서.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달 30일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21대 국회 임기 마지막 날에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재의결 투표도 할 수 없었다"라며 "정말 비겁하고 쪼잔한 정권이다.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 아닌가"라며 날 선 반응을 보였지. 그는 "100번째, 200번째 거부권도 행사할 것인가. 본회의 표결에 불참하고 무조건 거부권을 건의하는 여당, 법안 통과하자마자 거부권을 건의하는 장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거부권을 행사하는 대통령. 이게 제 정신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어. 조국혁신당도 "윤석열 정부의 독선, 오만, 아집에 국민 분노는 식을 새가 없다"라고 말했지.
-이번 거부권을 기점으로 야당에선 '탄핵'이라는 말도 나와.
-맞아. 진성준 정책위의장은 "대통령실은 여야가 합의하지 않은 법안에 거부권 행사를 원칙으로 한다는 입장인데 명백한 헌법 위반"이라며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고 본다"라고 말했지. 다만 지도부 차원에서 논의된 것은 아니고 진 정책위의장의 개인 발언이라고 해. 황운하 조국혁신당 원내대표도 채상병 특검법 부결 직후 열린 규탄대회에서 "윤석열 정권은 마침내 탄핵 열차의 연료를 가득 채우고 시동을 걸고 말았다"라고 말하기도 했지. 탄핵에 대한 생각은 늘 있는 거 같았지만, 일반 국민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다는 우려에서 민주당이나 야권은 그간 직접적 언급을 자제해왔거든. 22대 국회는 앞으로 대치가 더욱 거세질 것 같은데 야당과 정부여당 사이에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하네.
제22대 국회 개원 둘째 날인 지난달 31일 국회의원회관에는 미처 정리되지 못한 짐들이 쌓여있었다. /김세정 기자 |
◆교체된 국회, 아직도 방 안 뺀 세입자가 있다?
-지난달 30일 제22대 국회의원들의 임기가 시작됐는데, 아직 의원실을 못 꾸린 의원들이 있다면서?
-응. 21대 국회가 끝나면서 함께 임기가 끝난 의원들이 방을 빼면, 그 자리에 새로 입성한 의원들이 들어가는데, 임기가 끝났는데도 아직 정리가 안된 의원실이 꽤 있다고 해.
-개원 첫날인 지난달 30일에 회관을 돌아보니 여전히 짐 정리 중인 의원실이 있더라고. 곳곳에 쓰레기가 쌓여있었고 말이야. 아직 의원실을 마련하지 못한 한 22대 초선의원은 통화에서 "아직 국회에 자리가 없다. 3일 이후에나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면서 "일을 시작해야 하는데 답답하다"고 토로했어.
-5일이나 늦는 거네. 방이 비워진 후에도 집기를 마련하고 물품도 정리하는 데 시간이 필요할 텐데 말이야. 그만큼 의정활동을 늦게 시작하는 셈이네. 원래 새 국회 개원 때마다 이랬어?
21대 국회가 폐원하고 22대 국회의원이 지난달 30일부터 임기를 시작한 가운데 일부 의원실의 교대가 늦어지고 있다. 초선의원들 사이에서는 아쉬운 목소리가 나온다. /김세정 기자 |
-국회에 오래 있었던 보좌직원들 얘기를 들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았던 것 같아. 몇몇 그런 곳이 있긴 했지만 이번에는 좀 심하다고 하더라. 20여 년 가까이 국회에 있었던 한 보좌관은 통화에서 "16년, 20년을 쓴 사무실도 임기 종료에 맞춰 짐을 다 뺐다"고 말했어.
-이번에는 왜 그런 거야?
-글쎄. 그 보좌직원 말로는 '갈 곳을 잃은 몇몇 보좌직원 때문인 것 같다'는 거야. 모시던 의원이 낙선해서 일자리를 잃었으니, 새 의원실에 재취업해야 하는데 아직 못해서라고. 즉 자기 짐을 옮길 곳을 못 찾아서 그런 것 같다는 거야. 과거엔 여당 의원실에 있던 보좌직원이 야당 의원실에 재취업 하기도 했었다는데. 이젠 정쟁이 심해져서 그런 일도 없어졌으니.
-여당 의석수는 더 줄었고 원내 제3당이었던 녹색정의당이 원외 정당으로, 그리고 조국혁신당과 개혁신당 등 새로운 제3당의 등장까지. 혼란스러운 국회와 더 극단으로 치달은 국회의 모습이 이번 '세입자 사태'에 드러난 것 같네.
◆방담 참석 기자 = 이철영 부장, 신진환 기자, 박숙현 기자, 조채원 기자, 김세정 기자, 김정수 기자, 조성은 기자, 설상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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