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리 상임이사국 러시아 거부권에 '무산'
2009년 北 2차 핵실험 이후 약 15년 활동
무기 수출부터 가상화폐 해킹까지...추적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산하 전문가 패널이 지난달 30일을 기점으로 모든 활동을 종료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가 결정적이었다. 앞서 전문가 패널은 지난 2009부터 북한의 제재 위반 의혹 등을 추적·감시하고 이를 보고서 형태로 공개했다. /전문가 패널 보고서 갈무리 |
[더팩트 | 김정수 기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를 도와 북한의 제재 위반 의혹을 조사했던 '전문가 패널'이 지난달 30일을 기점으로 모든 활동을 종료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임기가 더 이상 연장되지 못해서다. 2009년 북한의 풍계리 2차 핵실험을 계기로 출범한 전문가 패널은 지난 15년간 북한의 대북제재 결의 위반 정황 등을 추적·조사해 국제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정부는 효과적인 메커니즘 구축을 위해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겠다는 입장이다.
전문가 패널 임기 연장안은 지난 3월 28일 안보리에서 표결됐지만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해 부결됐다. 안보리는 그간 결의안 채택 방식으로 전문가 패널 임기를 늘려왔는데, 결의안이 통과되기 위해서는 15개 이사국 중 9개국 이상이 찬성해야 하고 5개 상임이사국(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중 누구도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아야 한다. 안보리 이사국 15개국 가운데 13개국은 찬성했지만 러시아의 거부권으로 임기 연장안이 통과되지 못한 것이다. 중국은 기권을 선택했다.
전문가 패널은 2009년 5월 25일 북한의 풍계리 2차 핵실험 발단으로 탄생, 2006년 10월 9일 북한의 1차 핵실험 이후 출범한 대북제재위원회 산하에 설치됐다. 구성은 7개국(5개 상임이사국+한국, 일본) 각 1인이 △핵 △미사일 △수출통제 △비확산 △재정 △지역 △통관 등 7개 분야를 맡는 방식으로, 임무는 유엔 안보리 결의 1874호(핵·무기 관련 북한 자산 동결 등) 이행 여부를 점검하는 것이었다. 전문가 패널은 이와 관련한 정보 수집·조사·분석·보고 등을 통해 활동 결과와 권고 등에 관한 보고서를 안보리에 제출하게 됐다.
전문가 패널의 첫 보고서는 2010년 5월 발간됐다. 보고서에는 북한이 안보리 결의 위반에 해당하는 4건의 무기 수출과 2건의 사치품 수입 등을 포함해 북한이 대북제재를 회피하기 위해 사용했던 방법 등이 소개됐다. 일례로 북한은 군용 탱크를 콩고 민주공화국에 밀수출하기 위해 탱크를 분해, 중국에서 프랑스 회사 소유의 영국 국적선에 실어 말레이시아 항구로 갔다. 이후 불도저 부품과 함께 라이베리아 국적선에 옮겨 콩고 민주공화국으로 운반하고자 했지만 도중에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적발됐다.
전문가 패널 보고서는 이후 사진 자료를 게재하는 등 구체적인 근거로 추가 정황 파악에 힘썼다. 2016년 2월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해군 함정 3척에서 일본 기업의 레이더 안테나가 장착된 것으로 드러났다. 보고서에는 해당 기업이 어떤 곳인지 언급되지 않았지만 '해당 기업에 따르면 2009년 6월 12일 이후 북한에 제품을 판매한 기록은 없다'고 밝혀뒀다. 제3국 등을 통한 반입이라는 추정이다. 이와 함께 북한 드론에도 일본제 카메라가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전문가 패널의 2016년 2월 보고서에 게재된 일본 기업 레이더 안테나를 장착한 북한 해군 함정의 모습. /전문가 패널 보고서 갈무리 |
북한의 대북제재 회피 방식이 점차 고도화하면서 전문가 패널의 조사 역시 고차원적으로 이뤄졌다. 2021년 3월 보고서를 살펴보면 전문가 패널은 북한의 가상화폐 해킹 사건을 언급하며 자금 세탁을 통한 핵·미사일 개발을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2020년 9월 한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2억8100만 달러를 훔친 사건을 조사 중이고, 이는 같은 해 10월 2300만 달러를 탈취한 해킹과 연계돼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보고서에는 또 북한이 2019년 7월과 9월 각각 27만2000달러와 250만달러의 가상화폐를 해킹한 뒤 체인 호핑(한 블록체인에서 다른 블록체인으로 자금을 옮겨 추적을 어렵게 하는 전략) 방식을 사용한 것으로 적시됐다.
전문가 패널의 마지막 보고서는 러시아의 침공으로 전쟁을 벌이고 있는 우크라이나 내에 미사일 잔해가 북한산 탄도미사일이라는 것이었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전문가 패널 소속 조사단이 지난 1월 우크라이나 히르키우시에 수거된 미사일 잔해를 살펴본 결과 북한의 화성-11형 계열의 미사일로 파악됐다. 보도에 따르면 미사일이 어디서 발사됐는지 확인은 어렵지만 우크라이나에서 제공한 궤적 정보에는 러시아 영토 내에서 발사된 것으로 추정됐다.
전문가 패널의 활동이 종료되면서 북한의 대북제재 위반 행위가 이전보다 활기를 띨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공교롭게도 북한은 전문가 패널의 임기 종료가 다가오자 고급 수입차와 고가의 일본산 악기를 넌지시 공개하며 대북 제재 무력화를 과시했다. 정부는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는 유효한 만큼 이를 보완할 새로운 형태의 감시망을 구축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한미일 3국 공조를 통한 '다자 전문 패널'이 언급되기도 한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달 29일 정례브리핑에서 "안보리 북한제재위 전문가 패널 임무는 비록 종료되지만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는 여전히 유효하다"며 "우리 정부는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가 계속해서 충실히 이행될 수 있도록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공조하에 관련 노력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유엔이 대북제재 이행 모니터링 메커니즘을 어떻게 보완할지에 관해 다양한 의견들이 제기되고 있다"며 "우리 정부는 유사 입장국들과 함께 보다 효과적인 메커니즘을 구축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강구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