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이슈' 훼손하며 보수층 이탈 가속
양자회담서 특검법 합의 주목
윤석열 대통령이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을 진상조사하는 특검법을 수용할지 주목된다. 윤 대통령이 2024년 2월 10일 해병대 2사단을 방문해 장병들을 격려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
[더팩트ㅣ용산=박숙현 기자]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 외압 의혹' 관련 야당의 특검법 압박이 거센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이 진퇴양난에 빠진 모양새다. 특검법을 거부할 경우 '안보 이슈'에 민감한 보수층 민심 이반은 심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5일 정치권에 따르면 다음 주 개최가 예상되는 윤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간 양자 회담에서 '채 상병 특검법'이 논의될 전망이다. 민주당은 채 상병 특검법 처리 문제를 회담 의제로 공식화했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은 "사전 의제 조율이나 합의 없이 자유로운 형식에서 회담하자"는 입장이지만 국민적 관심사가 높은 만큼 회담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범야권은 연일 윤 대통령을 향해 '채 상병 특검 수용'을 압박하고 있다. 민주당과 민주연합 소속 운영위원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 운영위를 열어 이 건을 논의하자고 여론전을 펼쳤다. 시민단체와 해병대 예비역 단체는 윤 대통령과 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및 군사법원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했다. 특히 최근 '해병대 수사단이 경찰에 넘긴 사건 수사 기록을 국방부 검찰단이 회수한 날 이 비서관이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과 통화한 기록을 공수처가 확보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용산 외압 의혹은 짙어지는 상황이다. 해병대 단체는 이같은 보도를 언급하며 "이 사건에 대통령실이 전방위적으로 관여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채 상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은 지난 4·10 총선의 패인 중 하나로 꼽힌다. 대체로 보수 성향의 예비역과 2030 남성층이 채 상병 사망 사건 이후 윤석열 정부의 미흡한 대응을 보고 여당에 등을 돌렸다는 평가가 나왔다.
'채 상병 사건'은 지난해 7월 폭우 사태 당시 실종자 수색에 동원됐던 해병대 채 모 상병이 급류에 휩쓸려 희생된 일이다. 윤 대통령은 당시 "사고 원인을 철저히 조사하라"고 지시했지만 정작 책임자를 특정한 해병대 수사단 수사 결과가 뒤집혔다. 이종섭 당시 국방장관이 수사단 결과를 뒤집은 배경을 두고 대통령실 외압 의혹이 제기됐다. 윤 대통령은 그간 "나라를 지킨 영웅들을 제대로 예우하는 게 정상적인 국가의 당연한 책무"라고 여러 차례 강조해왔기에 '안보'를 중시하는 보수 지지층을 흔드는 사건이었다.
의혹 제기 후 대통령실의 소극적인 대응도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8월 9일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대통령실 외압이 있었다는 주장이 나왔는데 대통령실 입장은 뭔가'라는 질의에 대통령실 관계자는 "여러 주장은 있는 것 같은데, 그 주장들이 정확하지 않은 면도 굉장히 많은 것 같다"며 "이 문제는 일단 국방부에서 대응하는 것으로 알고 있고, 국방부에서 충분히 설명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며 국방부에 떠넘겼다. 이후 채 상병 수사 외압 의혹 핵심 피의자인 이 전 장관은 주호주대사로 임명돼 출국했다가 임명 25일 만에 여론 악화로 물러난 바 있다.
이후 거대 보수 정당에서 대거 이탈한 '젊은 보수 표심'을 개혁신당이 파고들었다. 22대 국회에서 3석을 확보한 개혁신당은 진보성향 정당들과 함께 채 상병 특검 수용을 압박하고 있다.
보수 성향이 강한 예비역과 현역 군인 등이 '채 상병 사건'을 둘러싼 정권의 대응에 실망을 느껴 여당에 등을 돌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해병대 단체는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이시원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했다. /국회사진취재단 |
윤 대통령이 '채 상병 특검법' 수용 여부를 놓고 총선 이후 첫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검법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여당 내 이탈표로 재의결 정족수(200석)를 충족해 거부권을 무력화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여당 지도부는 "지금 이 시점에서 (채 상병 특검법이) 그 정도로 심각한 문제인지 국민적 평가를 받아봐야 한다(윤재옥 원내대표)"며 합의 추진에 거리를 두고 있지만, 국민의힘 내에서도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찬성하는 이들이 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특검을 안 받을 수가 없다"며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재의결이 된다면 오히려 이재명 대표를 만났을 때 윤 대통령이 독소 조항을 조정하는 선에서 큰 틀에서 합의를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이어 '채 상병 사건'에 대해선 "국방의 의무, 병역 관련해서는 국민이 굉장히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굉장히 휘발성이 높은 이슈"라고 분석했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장도 "채 상병 특검은 다른 특검들보다 국민적 대의명분이 강하다. 진보와 보수, 중도가 두루두루 걸치는 이슈"라며 "민주당은 매우 세게 압박을 할 것이고 국민들도 많이 공감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특검법에는) 대통령실에 대한 압수수색 문제도 포함돼 있다"며 "대통령은 수용하기도 어렵고 거부하기도 어려운 진퇴양난에 봉착할 가능성이 높다. 거부할 수 있겠지만 지지율과 맞바꾸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준석 대표는 이날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서울외신기자클럽(SFCC) 초청 기자간담회에서 "작년 여름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에서 대통령은 은폐를 기획했고 그 과정에서 검사 윤석열 시절 국민이 가장 사랑했던 '성역 없는 수사'의 가치를 상실했다"며 "여러 개의 특검이 가동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