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700여 일 만에 이재명 대표와 첫 양자 회동 성사 관측
의제 조율 관건…추경 등 민생 현안 중심 논의할 듯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양자 회동(영수회담)을 제안했다. 회동은 다음 주께 성사될 것으로 보인다. 2022년 2월 25일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관 두 번째 TV 토론회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
[더팩트ㅣ용산=박숙현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양자 회동을 먼저 제안했다. 22대 총선 참패 이후 '국정 쇄신'을 약속한 윤 대통령이 야당과의 협치에 전향적으로 나선 것으로 평가된다. 두 사람의 회동이 다음 주 성사된다면 취임 이후 700여 일 만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국정 난맥상의 핵심 원인이었던 야당과의 소통 부족 문제가 해소될지 주목된다.
이도운 홍보수석은 이날 오후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이 이 대표와 이날 오후 3시 30분부터 5분가량 통화했다고 전했다. 이날 통화는 대통령실이 이 대표 측에 먼저 전화해 이뤄졌다.
특히 윤 대통령은 통화에서 이 대표에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에서 만나자"고 제안했다.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 회동을 먼저 제안한 것은 취임 후 이번이 처음이다. 이 대표는 2022년 8월 당대표 취임 직후부터 수차례 양자 회담을 제안해왔지만 윤 대통령은 그때마다 거절했다.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 간 공식 회동이 가장 늦게 성사된 김영삼 전 대통령(110일)때를 훨씬 넘기면서 '불통'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양자 회동은 다음 주께 성사될 전망이다. 이 대표는 윤 대통령 제안에 대해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강선우 민주당 대변인이 전했다. 이 대표는 총선 이후 지난 12일에도 "(윤 대통령을)당연히 만나고 당연히 대화해야지 지금까지 못 한 것이 아쉬울 뿐"이라고 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이 대표의 회동 제안을 사실상 거절해왔다. 2023년 10월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2024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 계획안에 대한 시정연설에 앞서 열린 사전환담에서 이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
윤 대통령의 이번 회동 제안은 전격적이다. 두 사람은 그동안 이 대표의 당대표 취임을 계기로 통화했을 뿐, 다수의 국가 행사에서 만나더라도 악수하는 데 그쳤다. 지난해 10월에는 정부 예산안 시정연설 전 사전환담장에서 만났지만 윤 대통령은 민생에 대한 국회 협조를 당부하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는 데 그쳤다.
윤 대통령은 그간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 간 만남인 '영수회담' 보다 대통령과 여야 대표가 만나는 '3자 회동'을 선호한다고 밝혀왔다. 지난 2월 KBS와의 신년 대담에서 '이 대표와 단독회담을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윤 대통령은 "저 역시도 정당 지도부와 충분히 만날 용의가 있다"면서도 "영수회담이라고 한다면 여당의 지도부를 대통령이 무시하는 게 될 수 있다"고 했었다. 대통령이 여당 총재를 겸했던 때와 여건이 달라진 만큼 야당 대표와의 단독 회담은 부담스럽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러나 이 같은 기존 입장을 선회해 양자 회동을 전격 제안한 것이다.
회동 시점도 예상보다 앞당겼다. 22대 총선 이후 윤 대통령은 야당과의 협치에 적극적으로 응하겠다는 뜻을 시사해왔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국무회의에서 "민생을 위한 것이라면, 어떠한 일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번 주 초까지만 해도 회동 시점에 대해 22대 국회가 개원하고 여당 새 지도체제가 출범하는 등 다소 시일이 소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양측 간 의제 조율 등을 위해서다. 이때만 해도 여당 대표를 포함하는 3자 회동 방식을 고수했던 것으로 보인다. '시점이 앞당겨진 것 같다'는 질의에 대통령실 관계자는 "인사가 좀 빨리 이뤄졌으면 통화도 빨리 이뤄지고 만남 제안도 빨리 이뤄졌을 텐데 인사 때문에 늦어진 감이 있다"며 "그렇다고 인사 때문에 (만남을) 한없이 늦출 수는 없어 오늘 통화를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전격적인 입장 변화는 영수회담에서 가시적인 성과가 도출되지 않더라도 회동 자체만으로 국정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윤 대통령이 결단한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의 총선 이후 지지율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20%대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난 가운데, 국면 전환을 꾀하려는 차원으로 풀이된다.
회동을 계기로 야당과의 소통 부족 문제를 해소하고 국정 운영 동력을 되살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 2023년 8월 15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부친 고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 빈소에서 윤 대통령이 이 대표의 조문을 받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
회동에 앞서 의제 조율이 관건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양쪽 비서진에서 서로 협의해서 편한 시간과 대화 의제에 대해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 측도 "추후에 여러 가지 실무적인 조율을 하면서 안건을 포함해서 논의가 있을 것"이라며 "국정 현안이 산적해있는 상황이고 현장 민생 정말로 어렵다. 관련해서 여야 할 것 없이 허심탄회한 이야기가 오갈 걸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민생 의제에 집중할 경우 추가경정예산 논의가 대화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관측된다. 민주당은 최근 경제 위기 대응을 위해 최소 15조 원 규모의 추경 예산 편성을 제안했다. 이에 대해 현재까지 정부와 여당은 부정적인 입장이다. 차기 국무총리 인선 협조 등도 의제로 거론된다. 이 외에 민주당이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채 상병 특검법'과 '이종섭 특검법' 처리 등 정치 현안이 논의될 수도 있다.
양자 회동을 계기로 얼어붙은 여야 관계에 훈풍이 불지 주목된다. 역대 영수회담은 대통령이 여당 총재를 겸임했던 시절만 해도 꽉 막힌 정국을 타개할 최후의 카드였다. 그러나 당정이 분리됐던 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부터는 영수회담에서 별다른 성과 없이 마무리되는 경우가 다수였다. 다만 향후에도 양자 회동이 수시로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협치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통화에서 이 대표에 "일단 만나 소통 시작하고 앞으로는 자주 만나 차도 마시고 식사도 하고 또 통화도 하면서 국정 논의하자"고 했다고 대통령실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