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해당표현 삭제…한일간 필요한 소통 하고있어"
"정부 역사퇴행에 미온적…허용 가능범위 따져 물어야"
일본 육상자위대 오미야(大宮)주둔지 제32보통과연대가 지난 5일 소셜미디어 엑스(X·구 트위터) 공식 계정을 통해 올린 글 '대동아전쟁(大東亜戦争)' 표현을 사용했다. 빨간 네모 안 표현이 대동아전쟁 표현.사진은 제32보통과연대 엑스 갈무리./뉴시스 |
[더팩트ㅣ조채원 기자] 일본 육상자위대 부대가 일본의 태평양 전쟁을 미화하는 용어인 '대동아전쟁(大東亞戰爭)'을 공식 SNS에 썼다가 삭제했다. 외교부는 9일 "일본 측 스스로 관련 표현을 삭제한 것으로 알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삭제'로 끝날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월 일본 문부과학성 검정을 통과한 일본 교과서에도 '대동아전쟁' 표현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 '대동아전쟁' 표현 뭐가 문제길래?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9일 정례브리핑에서 일본 육상자위대 부대 SNS 용어에 대해 일본 정부에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느냐는 질문에 "한일 간 필요한 소통이 수시 이뤄지고 있다"고 답했다. 임 대변인은 "이미 해당 표현이 삭제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일본 정부는 이 용어가 일반적으로 정부의 공문서에 사용되지 않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일본 육상자위대 제32보통과 연대는 지난 5일 엑스(X·옛 트위터)에 이오지마에서 개최된 미일 합동 추도식을 소개하며 '대동아전쟁 최대 격전지'라는 표현을 썼다. 태평양전쟁은 1941년 12월 8일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발생했던 일본 대 미국, 영국, 중국 등의 연합국과의 전쟁을 말한다. 일본은 개전 직후 각의(국무회의)에서 태평양전쟁을 대동아전쟁으로 부르기로 했다. 대동아전쟁에는 '서구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 지배로부터 아시아를 해방해 대동아공영권을 건설하는 것이 전쟁의 목적'이라는 일본의 주장이 담겨있다. 제국주의 식민 지배와 침략전쟁을 정당화하는 의도를 담은 용어인 것이다. 일본 패전 후 일본을 점령한 연합군최고사령부(GHQ)는 공문서 등에서 이 용어 사용을 금지했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9일 정례브리핑에서 일본 육상자위대 부대 SNS 용어에 대해 일본 정부에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느냐는 질문에 ""라고 답했다. /임영무 기자 |
국내외 비판이 거세지자 일본 육상자위대는 글을 올린 지 나흘 만인 전날 해당 표현을 삭제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기하라 미노루 일본 방위상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대동아전쟁' 용어 사용과 삭제 경위에 대해 "(해당 부대가) 격전지였던 상황을 표현하기 위해 당시 호칭을 사용한 것이지 그 외 의도는 없었다고 부대에서 보고를 받았다"며 "현재 일반적으로 정부 공문서에서 사용하지 않는 용어"라고 설명했다.
◆ 日문부과학성 통과 교과서에도 '대동아전쟁' 표현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지난 3월 문부과학성 검정을 통과한 자유사(自由社)와 육붕사(育鵬社) 발행 교과서에도 '대동아전쟁' 표현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이 독도를 불법점거하고 있고,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통해 한일 간 과거사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처럼 서술해 논란을 빚은 자유사 교과서는 대동아전쟁을 주된 용어로 쓰고 있다. 태평양전쟁을 '대동아전쟁'으로 배우는 것을 일본 정부가 용인하고 있는 셈이다. '이미 삭제됐다'는 외교부 입장이 일본 정부의 퇴행적 역사 인식에 미온적이라고 느낄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응해 온 시민단체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등은 지난 3월 일본 문부과학성의 교과서 검정 결과에 항의하며 의견서를 전달했다. 해당 내용엔 자유사 교과서가 태평양전쟁을 대동아전쟁이라고 표현한 점도 포함돼있다.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제공 |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응해 온 시민단체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이신철 상임공동운영위원장은 이날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대동아전쟁이라는 인식 속에 일부 다른 쪽에서 태평양전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는 게 우익들의 기본적인 생각"이라며 "대동아전쟁 용어 사용은 이러한 인식이 일반화하고 일상적으로 많이 퍼져있다는 방증 아니겠느냐"고 진단했다. 이 위원장은 "단순 실수라기보단 여론 떠보기식,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의구심도 가질 수 있다"며 "교과서는 되고 공식 SNS는 안 된다면 어디까지가 일본 정부가 허용하는 범위인지에 대해 우리 정부는 분명히 따져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