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신철 "역사갈등 해결 측면에선 한일관계 더 나빠졌다"
입력: 2024.03.28 00:00 / 수정: 2024.03.28 00:00

이신철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상임공동운영위원장 인터뷰
"역사갈등, 원칙·장기전망 갖고 다뤄야"


이신철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상임공동운영위원장이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에서 <더팩트>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남용희 기자
이신철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상임공동운영위원장이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에서 <더팩트>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남용희 기자

[더팩트ㅣ조채원 기자] "역사갈등 해결 가능성 측면에서 보면 한일관계는 더 나빠졌다"

한일관계가 대결이 아닌 협력으로 국면을 전환했다는데 왜 일본의 부당한 독도 영유권 주장과 역사 교과서 왜곡은 점점 심해지는가. 이신철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상임공동운영위원장은 27일 <더팩트>와의 인터뷰에서 내놓은 답이다. 윤석열 정부가 최대 성과로 꼽는 한일관계 개선에 대해선 "한일 관계의 좋고 나쁨을 무엇으로 평가할 것이냐에 따라 다르다"며 "양국 간 관광 등 교류가 활발한 것으로 치면 한일관계는 계속 좋아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반면 역사갈등 해결 가능성의 측면에서 보면 한일관계는 더 악화한 것이라고 말한다. "2001년 김대중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합의로 2002년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가 출범했다. 양국의 역사인식 차이로 인한 갈등 완충 장치가 있었던 것이다. 반면 지금 정부는 한일 간 쟁점이 되는 역사문제를 테이블에 놓고 논의해보자는 게 아니라 아예 일본 편을 들고 있다."

이 위원장이 몸담은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는 침략전쟁과 식민지배를 미화하는 일본 교과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2001년 설립된 시민단체다. 일본 교과서 왜곡의 실상을 알리며 문제 해결을 위한 동참을 호소하고, 일본 내 시민단체와 연대해 잘못된 교과서의 채택을 저지하는 일 등을 해 왔다. 최근엔 일본 문부성이 22일 발표한 중학교 사회과 교과서 검정 결과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 관련 기술에 시정을 요구하는 의견서를 일본대사관에 보냈다.

이 위원장은 일본 정부의 그릇된 역사인식도 문제지만 강제동원 등 과거사 문제에서 일본 정부와 가해 기업에 면죄부를 준 한국 정부의 조치가 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번에 검정을 통과한 두 종 교과서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통해 과거사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처럼 기술했다. 개인에 대한 보상이 한국 정부에 맡겨졌다는 표현까지 나온다. 일본 정부나 가해 기업의 반성·참여 없는 강제동원 해법인 '제3자 변제안'이 확대 해석 명분을 준 것이다. 일본은 지금을 '과거사는 이미 해결됐다'는 역사관을 완전히 정설로 굳힐 기회로 여기고 있다."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는 일본의 교과서 역사왜곡을 동아시아 전체 문제로 접근한다. 침략전쟁을 긍정하는 교과서는 동아시아의 평화와 공존을 부정하는 미래세대를 양성하는 데 기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는 커녕 지금의 한일관계를 더욱 격렬한 대립으로 몰고 갈 위험이 크다. 이 위원장은 "정부는 경제협력, 문화교류는 적극 하되 역사 문제에 대해선 계속 책임을 묻는다는 원칙을 견지해야 한다"며 "양국 국민들도 역사정의 문제에 더 큰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이신철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상임공동운영위원장이 27일 서울 종로구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에서 <더팩트>와 인터뷰에 앞서 일본 교과서를 살펴보고 있다. /남용희 기자
이신철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상임공동운영위원장이 27일 서울 종로구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에서 <더팩트>와 인터뷰에 앞서 일본 교과서를 살펴보고 있다. /남용희 기자

다음은 이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역사 갈등을 대하는 태도에서 우리 정부의 문제점이 있다면?

크게 두 가지다. 원칙과 장기적인 전망이 없다는 것, 그리고 역사정의 실현에 너무 무관심하다는 것. 가해국이 역사를 직시하고 진정성 있게 반성하지 않으면 역사갈등의 불씨는 계속 남는게 되는데 그런 개념이 없는 것 같다. 일본 정부는 적어도 일관적이다. '독도는 일본땅'이라는 주장에서 근거가 한 두개 바뀐 것에 불과하고 표면적으론 '역대 내각의 입장을 계승한다'는 입장을 표명한다. 그러나 한국은 정권에 따라 과거사를 다루는 태도가 달라진다. 역사문제를 이런 식으로 다루는 건 대단히 위험하다.

-일본 대사관에 수정 의견서를 전달했다. 실질적 서술 변화를 이끌어내길 어려울텐데.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일본의 교과서 집필 관계자들에게 의견서를 보내거나 잘못된 내용을 전달하러 찾아가기도 한다. 명백히 역사적 사실과 맞지 않은 경우 수정이 이뤄지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3.1운동 때 사진이다. 예전에는 여기에 '한국의 기생들이 시위하는 장면'이라고 적혀있었는데 사실 이들은 경기여고 학생들이었다. 우리가 계속 일본 출판사에 틀린 점을 전달해왔고 이제는 어느 교과서도 그렇게 쓰지 않는다. 이렇게 핵심적인 논지가 바뀌거나 하진 않지만 작은 변화들은 있어 왔다.

이번에 검정 통과한 교과서에서 문제가 된 부분도 필자들에게 전달할 예정인데 다음 교과서에서 이러한 내용들이 반영될 수 있다. 여태까지 얼마나 많은 요청들이 수용됐는가에 대해서도 데이터로 만들고 있다.

이신철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상임공동운영위원장이 27일 <더팩트>와 인터뷰에서 3·1운동 사진 설명 변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남용희 기자
이신철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상임공동운영위원장이 27일 <더팩트>와 인터뷰에서 3·1운동 사진 설명 변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남용희 기자

-일본 각의는 2021년 '강제연행'에서 본인의 뜻에 반해 억지로 데려갔다는 '연행'은 부적절하며 '종군위안부'는 군과 위안부를 분리해 설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줄기를 벗어나긴 어려운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 예를 들면 이번 검정 결과에서 독도 문제만 하더라도 두 개 출판사는 내용을 최소화해 썼다. '1905년 메이지 정부가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이름 붙여 시마네현에 편입했다'는 정도였다. 위안부에 관한 서술도 마찬가지다. '전쟁지역에 설치된 위안시설에는 일본·조선·중국·필리핀 등에서 여성이 모여졌다'는 서술에는 일본이 식민지 여성 뿐 아니라 자국민인 일본 여성을 대상으로 같은 전쟁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내포돼있다. 결국 필진의 노력이 중요하다. 일본 우익 주장을 담지 않아도 통과된 교과서 사례가 있다는 걸 점점 많이 알려야 한다.

-일본은 왜 '독일의 길'을 가지 못하나.

일본은 스스로 '독일의 길'을 갔다고 생각한다. 과거 침략전쟁으로 일제가 점령했던 국가들에 경제적 보상과 지원이 충분히 이뤄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는 침략지가 아니라 합법적으로 이뤄진 식민지배였다는 입장이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강제동원, 위안부 등의 피해 역시 법적 문제는 없지만 인도적 차원에서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고 충분한 배·보상이 이뤄졌다는 게 일본 생각이다.

독일 역시 침략전쟁에서 과정에서 발생한 범죄나 피해에 대해선 반성적 태도를 보이지만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선 일본과 같다. 독일은 100여년 전 아프리카 식민지였던 나미비아에서 저지른 제노사이드(집단학살)에 사과하고 30년간 개발지원금 11억유로(약 1조4885억원)를 지원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이 지원금이 법적 책임을 인정하는 의미의 배상금은 아니라는 뜻을 분명히 했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때 일본이 한국에 3억 달러의 무상 자금과 2억 달러의 차관을 지원한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가해국이 식민지배 불법성을 인정하는 문제에선 '독일의 길'이란 애초에 없었다.

한국인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 청구를 인용한 2018년 한국 대법원 판결의 핵심은 대법원이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배가 불법이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일본은 왜 독일의 길을 가지 않느냐가 아니라 '식민지배 가해국들은 왜 한국의 길을 가지 않느냐'고 물어야 한다.

-일본 사회가 점점 더 우경화된다는 평가를 받지만 양심 세력도 분명히 존재한다. 이들이 더욱 힘을 받으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정부는 경제협력, 문화교류는 적극 하되 역사 문제에 대해선 계속 책임을 묻는다는 원칙을 견지해야 한다. 정치적 여건 때문에 당장 해결하진 못하지만 결국 일본 정부가 역사적 책임을 지는 것이 옳다는 입장에서 시민사회의 교류 등을 지원해야 한다. 위안부·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하는 건 당연하다. 양국 국민들도 역사정의 문제에 더 큰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사실 일본이 과거사 관련해 여론을 자극해 그렇지 일본은 한국 피해자들에 대해 생각보다 많은 지원을 했다. 지원 취지를 일본의 법 체계나 미래 비전에 포함시키면 더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텐데 그렇지 못하고 있는 건 전쟁범죄의 후예인 자민당의 장기집권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정치가 문제다.

chaelog@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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