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임명 철회 요구 일축
韓도 "임명 철회 얘기 나올 문젠가"
여론 추이 따라 입장 달라질 가능성
대통령실은 이종섭 신임 주호주대사에 대한 야당의 임명 철회 주장을 일축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같은 뜻을 밝혔다. 1월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오찬에 앞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환담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
[더팩트ㅣ용산=박숙현 기자] 대통령실이 이종섭 주호주대사 임명 철회 요구에 대해 "조사 받겠다는 사람을 왜 문제 삼나"라며 일축했다. 여권 내에서도 임명 철회 의견이 수면 위로 올라왔지만 '도피성 부임'이 아니니 철회할 이유도 없다는 태도다. 국민의힘 지도부도 대통령실과 뜻을 같이 했다. 하지만 여론 추이에 따라 '김건희 여사 디올백 논란' 때처럼 사태 수습 방식을 두고 당정 갈등이 재점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정호진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은 14일 SBS 방송에 출연해 이 대사 임명 철회 요구에 대해 "7개월간 공수처가 조사도 안 했다"며 "조사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공수처가 수사에) 무슨 차질이 있다는 건지 이해하기 어렵다. 야당에서 정말 수사에 진심이라면 6~7개월간 조사하지 않은 공수처부터 문제 삼아야 한다"고 했다. 이 전 장관은 '채 상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 핵심 피의자로, 최근까지 출국금지 조치 상태였으나 윤석열 대통령이 주호주대사에 임명하면서 출국금지 조치가 해제, 호주로 출국했다. 야당은 대통령실과 정부가 이 대사의 '계획성 도피'를 도왔다며 수사 방해 혐의로 윤 대통령과 관계 부처 장관을 고발하고, 출국 과정 전반을 밝히는 목적의 '이종섭 특검 법안'을 당론 발의한 상태다. 대통령실은 공수처가 출국금지 조치를 계속 연장해온 것이 오히려 기본권 침해, 수사권 남용이라는 입장이다.
장 안보실장은 또 이 대사가 공수처 수사에 언제든 응하겠다고 밝힌 것을 강조하면서 "조사 받겠단 사람을 왜 문제 삼나"라며 임명 철회 계획은 없다고 분명히 밝혔다.
장 실장은 또 야당 주장대로 '해외 도피'를 계획했다면 상대국 동의가 필요해 1~2개월씩 소요되는 대사 임명보다 신속하게 파견할 수 있는 국제기구 대표를 선택해도 됐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 다른 대통령실 관계자도 "문제가 없는 사람을 보낸 건데 임명 철회할 이유가 뭐가 있겠나"라며 "공수처가 수사를 안 하다가 지금 갑자기 문제 제기하는 게 더 이상하다"고 했다.
2023년 9월 1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국방부 장관 신분으로 참석한 이 대사 모습. /남용희 기자 |
용산과 달리 여당은 총선을 20여 일 앞두고 불거진 '이종섭 리스크'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수도권 출마 후보들 중심으로 이 대사 임명이 부적절했다는 평가와 함께 임명 철회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조정훈 의원(서울 마포갑 후보)은 이날 KBS 라디오에서 "대통령의 임명권을 존중하지만 꼭 총선 전에 이렇게 출국하는 게 맞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다"고 밝혔다. 이상민 국민의힘 의원(대전 유성을 후보)도 한 라디오에서 "호주대사 (임명을) 철회하는 것이 마땅하고, 당으로서는 그런 것(철회 요청)도 검토를 해볼 만하다"며 "과오라는 걸 미처 보지 못한 부분도 있기 때문에 사후라도 빨리 바로잡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국민의힘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나경원 전 의원(서울 동작을 후보)과 안철수 의원(성남분당갑 후보)도 최근 공개적으로 이 대사를 임명한 대통령실의 정략적 판단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대통령실 내부에선 임명 철회 의견을 밝힌 일부 여권 인사에 대해 "야권의 의도에 말려들어선 안 된다"며 불편해 하는 기류도 감지된다.
여당 지도부도 대통령실과 같은 입장을 보였다.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부산 현장 일정 중 기자들과 만나 "그분이 지금 내일이라도, 정말 필요하다면 공수처에서 부르면 안 들어올 것 같지 않다"라며 "이게 외교적 문제도 있는데 그럴(임명 철회) 얘기가 나올 문제인가"라고 반박했다.
다만 총선을 앞두고 여론 추이에 따라 지난 '디올백 논란' 때처럼 대응을 두고 당정 갈등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김 여사의 '디올백 수수 의혹'이 제기됐던 초반, 여당 임시 사령탑에 오른 한 위원장은 '몰카 공작'이라며 대통령실과 뜻을 같이했지만, 여론이 악화하자 "국민이 걱정할 부분이 있는 건 분명하다"며 입장을 달리했다. 이후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 간 '김 여사 사과' 등 대응 방안 견해차로 당무 개입 논란까지 번졌고, 윤 대통령이 신년 대담을 통해 김 여사 논란에 대해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일단락된 바 있다. 이번에도 대통령실의 부적절한 정무적 판단과 대응이 사태를 키운 게 아니냐는 불만이 나오면서 파열음이 터져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의원은 "총선을 앞두고 야당이 정략적으로 활용할 것이 뻔한 것을, 불난 곳에 기름 붓는 걸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고 계산적이면 그걸 했을 리가 있겠나 싶다"고 쓴소리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이 대사를) 사퇴시켜서 얻는 것과 잃는 것이 있을 텐데 관련해서 판단을 내려야 할 것"이라며 "현재로선 (이종섭 리스크가 총선에서) 결정적 변수라는 판단이 들기 전까지 최대한 버틸 것으로 보인다. 지지율이 20%대로 내려가고 하면 대사 사퇴를 고려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