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퇴' 논란 이틀 만 조우 윤석열-한동훈…일단은 화해 선택?
입력: 2024.01.24 00:00 / 수정: 2024.01.24 00:00

서천 시장 화재현장서 만나
확전보다는 봉합 모양새
전문가들 "당정관계 재정립 계기될 수도"


윤석열 대통령(왼쪽)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3일 오후 충청남도 서천군 서천수산물특화시장을 찾아 화재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서천=배정한 기자
윤석열 대통령(왼쪽)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3일 오후 충청남도 서천군 서천수산물특화시장을 찾아 화재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서천=배정한 기자

[더팩트ㅣ국회=김세정 기자]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윤석열 대통령이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 대응 문제로 정면충돌한 지 이틀 만에 조우했다. 대통령실의 사퇴 요구에 이어 한 위원장의 거부까지 둘 사이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 모양새였지만 일단은 봉합 수순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총선을 불과 78일 앞둔 상황에서 여론을 의식해 확전보다는 화해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한 위원장은 대형 화재가 발생한 충남 서천군 서천특화시장을 23일 찾았다. 당초 한 위원장은 이날 국회와 중앙당사를 돌며 당직자들을 차례로 만날 예정이었지만, 일정을 긴급 취소하고 서천으로 향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이날 함께 현장을 방문했다. 두 사람의 만남은 사전에 긴급 조율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잠시 대기하던 한 위원장은 오후 1시 40분께 윤 대통령이 시장에 도착하자 허리를 90도로 숙여 인사했다. 윤 대통령은 한 위원장의 어깨를 툭 치며 인사를 건넸고, 한 위원장도 미소로 화답하는 등 화기애애한 모습이었다.

앞서 지난 21일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한 위원장에게 사퇴를 건의했다. 표면상 명분은 김경율 비상대책위원의 서울 마포을 공천 논란이었지만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대응이 본질적인 문제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김경율 비대위원이 김 여사의 사과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김 여사를 마리 앙투아네트에 빗댄 것이 갈등의 도화선이 된 것으로 보인다.

한 위원장은 22일 국회 출근길에서 기자들과 만나 "제 임기는 총선 이후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안다. 선민후사를 하겠다"며 대통령실의 사퇴 요구에 거부 의사를 명확히 밝혔다. 이후 비대위 회의와 인재영입 환영식 일정을 소화하면서 별다른 메시지를 내놓지 않았다. 같은 날 예정됐던 민생토론회 일정 참석을 취소한 윤 대통령은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침묵 모드를 유지하던 두 사람은 하루 만에 화재 현장에서 다시 만났다.

두 사람의 만남이 이뤄진 배경에는 당 안팎에서 나온 우려 때문으로 보인다. 당내에선 양측이 확전을 자제하고, 신속히 갈등을 봉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새 비대위를 꾸리기엔 시기적으로 부담인 데다가 당 내홍이 오래가는 모습 역시 여론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였다.

김종혁 국민의힘 조직부총장은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서로에 대한 서운한 감정은 결국 두 분이 푸셔야 한다. 만나시는 게 맞을 것 같다. 총선을 불과 70여 일 앞두고 있다는 현실이 있지 않나. 당정이 분열하고, 대통령과 위원장이 껄끄러운 사이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당사자들께서 잘 아실 것"이라며 "지금 큰 싸움을 앞에 두고 있는데 내부에서 분란을 일으킨다는 거, 서로가 갈등한다는 거, 그런 걸 당원들이 용납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동훈 위원장은 이날 서천 현장 점검 후 서울역에서 기자들을 만나 "윤 대통령과 여러 민생 지원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라고 밝혔다. '갈등이 봉합됐냐'는 질의에 한 위원장은 "저는 대통령님에 대해 깊은 존중과 신뢰의 마음을 가지고 있고, 그게 변함이 전혀 없다"라고 강조했다.

김경률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오른쪽)이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해 생각에 잠긴 한동훈 위원장(왼쪽)을 바라보고 있다. /배정한 기자
김경률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오른쪽)이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해 생각에 잠긴 한동훈 위원장(왼쪽)을 바라보고 있다. /배정한 기자

정치권에선 '신권력'인 한동훈 위원장에게 힘이 모인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또 이번 사태가 당정관계 재확립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도 관측한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더팩트>에 "파괴적인 갈등이 아니라 양측이 치고받는 과정에서 좋게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며 "총선을 위해선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합리적 차원에서 해결이 되는 생산적 갈등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반면 대통령실의 1차 경고에 한 위원장이 한발 물러섰다는 해석도 있다. 대통령실이 '김경율 사천' 문제를 먼저 언급하면서 공천 파워게임을 주도했고, 앞으로 갈등이 심화될 여지도 있다고 전망한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임기 후반이라도 대통령은 힘이 있는데 윤석열 대통령은 임기 초반이다. 대통령이 사퇴까지 말하면서 압박을 하고, 경고를 한 것"이라며 "이번 갈등은 공천을 위한 일종의 신호탄에 불과하고, 이제 시작이다. 대통령 입장에선 선거가 3개월밖에 남지 않아서 총선 영향을 고려할 수밖에 없어 한동안은 힘을 실어주긴 할 것"이라고 말했다.

sejungkim@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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