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전기·사람 필수 반도체 산업…현 정부 '디테일' 부족"
"범정부적 국가 반도체 위원회, 유연한 기업문화 필요"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18일 <더팩트>와 인터뷰에서 "반도체는 '팀 스포츠'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외교부, 교육부까지 다 아우르고 삼성, SK 뿐 아니라 소재, 장비, 부품을 설계 하는 중소 스타트업들 대표과도 소통이 가능한 리더십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대문=이새롬 기자 |
[더팩트ㅣ서대문=조채원 기자] "정치권이 미래 어젠다에 올인(All-in)해야지, 말싸움만 할 때가 아니다."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부 장관은 지난 18일 <더팩트>와의 인터뷰에서 "반도체 문제와 관련해선 정치권이 여야를 떠나야 한다"며 "반도체는 이념이 아니라 우리 먹거리고 대한민국의 미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거대양당과 차별화하겠다는 제3세력조차도 정치공학에 매몰돼 "미래 먹거리로 치고나가지 못하고 있다"면서다. 그는 4일 미중 기술 패권전쟁과 그 중심에 있는 반도체 산업에서 한국의 생존 전략을 모색한 책 '반도체 주권국가'를 냈다.
'반도체 주권국가' 출간은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반도체 정책 구상과도 맞물린다. 윤 대통령은 지난 15일 총 622조 원이 넘는 투자로 경기 남부에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를 조성해 20년에 걸쳐 최소 300만 개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가치외교에 주력해 온 윤 대통령이 '반도체 외교를 잘 했느냐'는 물음에 박 전 장관은 "미국과 연대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하지만 반도체 외교가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답했다. "미국이 새롭게 그리는 반도체 공급망 지도엔 한국과 대만이 빠지는 대신 일본과 싱가포르가 포함된다는 전망이 있다. '한국은 남북관계 대만은 양안관계에 따른 위험이 있으니 이를 분산해야 한다, 우리가 준비하겠다'는 일본의 대미 외교가 먹힌 셈이다. 일본은 구마모토·히로시마·홋카이도 세 군데 반도체 공장을 거점으로 첨단 반도체 제조 능력을 확보해 일본 반도체의 전성기 부활을 꿈꾸고 있다."
한국은 어떻게 미래를 준비해나가야 할까. 박 전 장관은 지금은 정치인으로서 어떤 역할을 하기보다 "어젠다를 던져주기 위해 책을 썼다"고 했다. 그는 메모리 반도체에 편중된 한국 상황과 '반도체 리더십 부재'에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대량 생산 체제인 메모리 반도체는 지금도 중국의 거센 추격을 받고 있고 결국 따라잡히게 돼 있기 때문에 한국은 고부가가치, 다품종 주문 생산 시대를 대비해야 하는데 조금 늦었다"는 우려다.
박 전 장관은 "일본은 과학기술부·외교부 장관을 지낸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반도체 부활 프로젝트를 전방위로 추진하고 있다"며 "우리 반도체 생태계 강화를 위해선 경제안보 흐름을 한 눈에 보는 반도체 전략과 세부 청사진을 만들 수 있는, 국가 반도체 위원회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18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의 한 카페에서 <더팩트>와 인터뷰하기 전 최근 출간한 책 '반도체 주권국가'를 들어보이고 있다. / 이새롬 기자 |
다음은 박 전 장관과의 일문일답
-'반도체 외교'는 왜 중요한가.
바이든 행정부에선 미중 경쟁은 무역전쟁보다는 안보분야까지 포함된, 경제안보적 시각으로 다뤄지고 있다. 미국도 한국도 유럽 어느 나라도 중국이라는 시장을 포기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디커플링(분리)에서 디리스킹(탈위험)으로의 변화다. 미국의 디리스킹 전략의 핵심은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작은 마당과 높은 울타리'란 표현이다. 작은 마당은 차세대 핵심기술은 반도체·인공지능·양자컴퓨터 등을 뜻한다. 이것들을 보호하기 위해 중국에 '높은 울타리'를 치겠다는 거다. 한국도 이 흐름에 합류해 기회를 찾아야 '아메리칸 파이'를 나눠먹을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622조 반도체 클러스터 투자' 방안을 평가한다면.
이전 정부 때 투자, 지난해 발표한 삼성의 용인 남사 300조 투자까지 다 포함한 내용이긴 하지만 맞는 방향이고 반도체 사업에 대한 전국가적 투자는 이뤄져야 할 수 밖에 없다. '반도체 싸움'은 이미 국가대항전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디테일'이 부족하다. 2019년 2월 발표한 SK하이닉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도 물, 전기 등 인허가 문제로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특히 정부에 반도체 최대 수요처인 애플 등이 동참하는 RE100(2050년까지 기업 사용 전력의 100%를 태양광, 풍력, 수력 등 재생에너지로 충당하자는 기업 간 국제협약)을 이행할 수 있는,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전략이 있나. 정부의 전력확보 대안은 화석연료인 액화천연가스(LNG)인 데다 원자력발전도 전 세계적으로 공인된 재생에너지는 아니다. '선거용 발표'가 아니려면 세부적인 청사진이 있어야 하고, 그런 걸 만들어 내려면 국가 반도체 위원회가 반드시 필요하다.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현재 미국 하버드대학교 케네디스쿨 선임연구원으로 연구 활동 중이다. 그는 "한국의 경우 문재인 정부에서 수도권에 반도체 계약학과 신설을 허용하는 등 우수인재 확보에 노력을 기울였지만 '의대 쏠림' 현상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이새롬 기자 |
-국가 반도체 위원회는 어떤 형태여야 하나.
반도체는 '팀 스포츠'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외교부, 교육부까지 다 아우르고 삼성, SK 뿐 아니라 소재, 장비, 부품을 설계 하는 중소 스타트업들 대표과도 소통이 가능한 리더십을 갖춰야 한다. 각 분야 학계 전문가들도 두루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이 '한 배'를 이끌어갈 수 있는 통찰력을 가진 리더도 있어야 한다.
-'사람'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반도체 인력 부족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TSMC 미국 애리조나 공장 가동이 '인재 부족'으로 1년 연기됐다. 숙련된 인재들이 거의 실리콘밸리로 가는데, 실리콘밸리 인재를 애리조나로 데려오려면 연봉을 2배는 더 줘야한다. 자연스럽게 반도체 가격이 올라가 경쟁력이 떨어진다. TSMC는 차라리 대만, 인도에서 사람을 데려오겠다고 하는데 그러면 또 비자 문제가 복잡해진다. 한국의 경우 문재인 정부에서 수도권에 반도체 계약학과 신설을 허용하는 등 우수인재 확보에 노력을 기울였지만 '의대 쏠림' 현상이 심각하다.
지난 18일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서울 서대문구의 한 카페에서 <더팩트>와 인터뷰 중 웃는 모습. 그는 곧 출국 예정이 그는 <더팩트>에 총선이 끝나는 4월 말쯤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이새롬 기자 |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은 고부가가치, 다품종 주문 생산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 결국 '소프트웨어를 잘 설계할 수 있는 인재' 싸움이다. 똑같은 가전제품이라도 설계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편리성에서 차별화하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 설계 분야는 미국이 최고인데, 뛰어난 소프트웨어 설계 능력을 갖추려면 회사 문화 자체가 유연해야 한다. 미국의 이름난 소프트웨어 회사들을 보면 모두 수평적 거버넌스를 갖고 있다. 한국은 아직까지 조직이 유연하지 않고, 사회적으로 다양성이 수용되고 있지 않아 설계 능력이 떨어지는 거다. 한국도 기업 문화 전반을 다양성과 유연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쪽으로 만들어야 한다. '군대식 문화' 대명사였던 현대자동차의 탈바꿈이 좋은 예다. 자율주행차 등 미래자동차 시대를 맞아 회사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유연한 기업문화 확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 박영선 전 장관은 누구? 1960년 경상남도 창녕 출생. 4선(17~20대) 국회의원(서울 구로을)으로 대표적인 언론인 출신 정치인이다. 1982년 MBC에 입사해 앵커, 기자였다가 2004년 국회 열린우리당(현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로 여의도에 입성했다. 헌정사상 첫 여성 법사위원장과 첫 여성 원내대표, MBC 첫 여성 메인 앵커와 경제부장 등 '첫 여성' 타이틀이 여럿이다. 2019년 4월부터 2021년 1월까지 중소기업벤처부 장관을 역임했다. 2021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후 미국 CSIS 수석고문을 거쳐 현재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선임연구원, 웨더헤드센터 스콜라, 서강대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