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설송아 "자본주의 격동 북한, 남한과 점점 가까워진다"
입력: 2024.01.07 00:00 / 수정: 2024.01.07 00:00

"남북한, 거의 다른 인종 돼…'문화적 통일' 먼저"
"학자, 기자, 작가로서 남북 잇는 매개 되고파"


설송아 작가는 지난달 16일 문학 분야 북한이탈주민 문화예술 유공자로 선정돼 통일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작품 태양을 훔친 여자는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학나눔우수도서에 선정되기도 했다. 설 작가는 3일 <더팩트>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에서 전문 작가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었고, 여기서 습작으로 시작한 글이 장관 표창까지 받아 영광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 서예원 기자
설송아 작가는 지난달 16일 문학 분야 북한이탈주민 문화예술 유공자로 선정돼 통일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작품 '태양을 훔친 여자'는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학나눔우수도서에 선정되기도 했다. 설 작가는 3일 <더팩트>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에서 전문 작가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었고, 여기서 습작으로 시작한 글이 장관 표창까지 받아 영광"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 서예원 기자

[더팩트ㅣ종로=조채원 기자] "북한도 자본주의가 격동하고 있다. 남과 북이 계속 가까워지고 있다는 의미다."

설송아 작가는 3일 <더팩트>와의 인터뷰에서 소설 '태양을 훔친 여자'를 쓴 배경에 대해 "북한은 다 굶어죽는 주민만 있는 나라란 한국 사람들 인식을 바꾸고 싶었다"고 말했다. "북한 사회는 더 이상 우리가 바라보는 사회주의 사회가 아니고, 급변하고 있다"면서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에, 붉은 당원은 돈주(부자)에 밀려나는 격변의 시기. 설 작가는 1998년부터 2015년까지의 북한 사회 변화를 '봄순'이라는 여성의 삶으로 풀어냈다. 떡 장사로 장마당에 뛰어들었던 봄순은 돈주가 되는 데 그치지 않고, '핵심계층'이라는 높은 성분(신분)을 쟁취한 '권력형 기업가'로 발돋움한다. 폐쇄적 사회주의와 가부장제에 맞서 기존 사회질서의 강력한 도전자로 거듭나는 강인한 북한 여성 이봄순. 그의 일부는 1990년대 중반부터 15년 간 장마당 일선에 있었고, 탈북 이후엔 북한 뉴스를 다루는 매체에서 기자로 활동하는 설 작가 자신이기도 하다.

'장마당 세대'는 북한사회의 새로운 변화를 추동할 수 있을까. 설 작가는 장마당 세대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고 했다. 태어날 때부터 국가공급 체계가 없어 시장경제에 익숙한 90년대 중후반생과 장마당에 뛰어들어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나온 70·80년대생 두 종류다. 설 작가는 "모두 돈벌이에 관심이 많고 한국 드라마 등 외부 사조에 영향을 받지만 김정은 체제에 대한 의구심이나 변화 필요성까지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면서도 "북한의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존재는 후자"라고 강조했다. "변혁 속에서 나의 재산,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공간을 개척해 온 70·80년대생이 진짜 장마당 세대라 생각한다. 우린 '위에 정책이 있으면 아래엔 대책이 있다'는 말을 많이 한다. 아무리 비사그루빠(비사회주의와 그룹의 합성어로 사회주의 체제에 반하는 현상을 단속·검열하는 당 소속 단체를 이르는 말),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만들어도 끊임없이 '장사 아이템'을 만들어낸단 얘기다."​

설 작가에 따르면 이제 막 장마당 주변부로 들어서기 시작한 북한의 Z세대는 누구보다 통일을 원한다. 마찬가지로 '돈을 더 많이 벌고 싶어서'다. 남북이 직접 경제교류를 할 수 없어 중개 역할을 하는 중국 회사에 이익 상당부분을 손해볼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불만이 '통일 열망'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설 작가는 "반대로 한국 젊은이들은 통일을 거부하지 않느냐. 거의 한 세기동안 갈라져 산 남북한 사람들은 거의 다른 인종이 됐다는 생각까지도 든다"며 "서로 눈 마주치고 자주 같이 생활 하는 '문화적 통일'이 먼저"라고 힘줘 말했다. 이어 "북한 사회는 우리 인식과 달리 계속 자본주의화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남과 북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의미"라며 "학자, 기자, 작가로서 북한사람들의 삶에 대해 더 많이 연구하고 기록해 남북을 잇는 매개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설송아 작가는 3일 <더팩트>와의 인터뷰에서 기자로서 현재까지 북한을 계속 취재하고 있다며 최근 소식을 가장 빠르게 입수해 소설 속 생활상에 그대로 녹여내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 서예원 기자
설송아 작가는 3일 <더팩트>와의 인터뷰에서 "기자로서 현재까지 북한을 계속 취재하고 있다"며 "최근 소식을 가장 빠르게 입수해 소설 속 생활상에 그대로 녹여내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 서예원 기자

다음은 설 작가와의 일문일답

-​차기작을 준비한다고 하셨는데. 어떤 내용인지 간단히 소개한다면.

북한에서 지금 가장 부각되고 있는 '사회주의 붉은 자본가(5인 이상 고용하는 사기업가)'에 대한 내용이다. 이들의 무대는 국내를 넘어 동남아시아 등으로 확장될 거다. 붉은 자본가들의 해외 진출은 북한의 개혁 개방을 빠르게 유인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본다. 북한은 언제든지 개혁개방을 할 수 있고, 어쩌면 이미 개혁개방은 이미 시작됐다는 점을 시사하고자 한다.

-장마당 출현으로 가부장제에 균열이 생겼다는 분석이 많다. 그렇다면 김정은의 딸 주애도 후계자가 될 수 있나.

안 된단 법이야 있겠나. 그러나 김주애가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라 '4대 세습'은 부당하다. 권력 세습은 북한이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다. 사실 남과 북의 팽팽한 긴장관계는 과거에는 미국과 소련의 냉전을 한반도로, 현재는 미국과 중국의 전략 경쟁을 한반도로 옮겨온 탓이 크다. 특히 북한은 체제 안정을 위해 중국의 영향을 크게 받는 상황이다. 중국이 자기 이익을 위해 북한을 이용하는 한 세습은 이뤄질 것 같다.

설송아 작가는 3일 <더팩트>와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기자, 작가, 교수가 되고 싶은 꿈을 다 이뤘다며혹자는 넌 능력 있으니까 성공했겠지 하는데 저도 식당 설거지 일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올라왔다고 전했다. / 서예원 기자
설송아 작가는 3일 <더팩트>와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기자, 작가, 교수가 되고 싶은 꿈을 다 이뤘다"며"혹자는 '넌 능력 있으니까 성공했겠지' 하는데 저도 식당 설거지 일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올라왔다"고 전했다. / 서예원 기자

-북한인권문제 해결을 중시하는 현 정부 대북정책에 대한 생각은.

국제사회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이슈화한 지는 20년 정도 됐다. 주로 민간 차원에서 이뤄졌던 북한 인권 개선 노력을 정부가 주도해 한다는 점에서는 높게 평가하고 싶다. 내년도 추진되는 국립북한인권센터 건립도 필요한 일이다. 다만 북한인권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를 더 깊이 봐야 한다. 체제 때문도 맞지만 앞서 말했듯 김정은 정권을 지탱하는 건 중국과 러시아의 지원이라는, 외부적 요인이 크다.

-탈북민 지원정책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나.

자립성이 길러지지 않을까봐 우려될 만큼 충분히 지원하고 있다. 한국은 하루만 식당에서 일해도 일주일은 족히 먹을, 쌀 20kg을 살 수 있는 나라다. 남 탓하고 의존만 해서는 어딜 가든 살기 힘들다. 물론 한국사회에 탈북민을 향한 차별과 편견의 시선은 분명히 존재하고 저도 겪은 적 있다. 언젠가 산부인과에 갔는데 '의료급여 1종'으로 분류돼 거의 무료로 진료를 받았을 때다. 의사가 내게 "한국에 오니까 모든게 다 공짜라 좋지"라 말하더라. 날 무시하는 것 같아 큰 상처가 됐다. 그러다 돌이켜보니 의사는 60대였다. 적대적 남북관계를 겪었고, 가난하게 살아 와 피해의식도 많은 세대라 생각하니 좀 이해가 되더라. 차별적 언행이 옳다는 게 아니다. 사람마다 경험이 다를 수 있다는 걸 알고 분별하는 능력도 키울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 설송아 작가는 누구? 평안남도 출생. 본명은 최설. 설송아는 작가 활동명이며 기자로선 또 다른 필명을 쓴다. 2011년에 남한에 입국했다. 북한전문매체 데일리NK를 거쳐 현재는 자유아시아방송(RFA)기자로 일하고 있다. 북한학 박사로 대학과 기관 등에서 '북한 여성과 시장경제'를 강의한다. 주요 저서로는 문화어 수업(공저), 사회주의 시장풍경 등이 있다.

chaelog@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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