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띄운 한국형 횡재세…유럽과 다른 '反시장적 정책' 우려도
입력: 2023.11.20 00:00 / 수정: 2023.11.20 10:48

野 총선 4개월 앞두고 횡재세 발의
유럽과 산업 구조, 배경 모두 달라
전문가들 "신중해야", 野 일각에서도 "반시장적"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4일 횡재세 법안을 발의했다. 이재명 대표는 유럽의 많은 나라가 횡재세를 도입했고, 미국도 초과 이익에 대해서는 소비세 형태의 과세 법안을 발의했다며 횡재세 도입으로 만들어진 세원으로 고금리에 고통 받는 국민들의 삶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이새롬 기자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4일 '횡재세' 법안을 발의했다. 이재명 대표는 "유럽의 많은 나라가 횡재세를 도입했고, 미국도 초과 이익에 대해서는 소비세 형태의 과세 법안을 발의했다"며 "횡재세 도입으로 만들어진 세원으로 고금리에 고통 받는 국민들의 삶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이새롬 기자

[더팩트ㅣ국회=설상미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총선을 4개월 앞두고 금융회사가 이자수익으로 거둔 초과이익을 부담금 형태로 걷는 이른바 횡재세 법안을 발의하면서 연말 정국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고금리 기조 속 막대한 이익을 낸 은행권이 초과이윤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민심이 커진 데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당장 여당에서는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반발했다. 전문가들도 횡재세 도입을 위해서는 좀더 신중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해당 기업의 초과이익으로 과세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이 제시되지 않은 데다, 유럽발 횡재세 정책을 한국에 도입하는 건 횡재세 취지에도 어긋난다는 이유에서다.

총선 4개월을 앞두고 띄운 갑작스런 야당발 횡재세 정책에 정재계가 술렁이고 있다. 만약 법안이 통과되면 은행권에서는 약 1조 9000억 원의 횡재세를 토해내야 한다. 한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금리 인상으로 은행 이자 장사에 민심의 반발이 크다"며 "횡재세 도입에 여론 지지가 높은 만큼 총선 전에 해결할 것"이라고 했다.

반면 여당에서는 '총선용 포퓰리즘'으로 규정했다. 윤재옥 원내대표는 17일 "대중적인 정서를 이용해 사실상 내년 총선을 겨냥한 포퓰리즘 법안"이라며 "조세 형평성 문제도 제기되는 상황에서 민주당도 법적 논란을 고려해 세금이 아닌 부담금 형식으로 걷는다는 계획인데, 횡재세는 시장경제 원리에 어긋나며, 은행권도 혁신을 시도할 이유가 사라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野 55人 법안 발의…사실상 '당론', 이재명 "유럽-미국도 횡재세 도입" 주장

민주당은 지난 14일 금융회사가 최근 5년간 평균 순이자수익 대비 120%를 초과하는 순이자수익을 얻을 경우, 해당 초과 이익의 40%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상생금융 기여금'을 내도록 한 이른바 '횡재세 법안'(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을 발의했다. 징수된 기여금은 금융 취약계층 및 소상공인을 포함한 금융소비자의 금융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직접적인 지원사업에 쓰이도록 하며, 사업의 효율적인 수행을 위해 해당 지원사업을 하는 기관에는 기여금 일부를 출연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다. 유럽·미국 등에서는 횡재성 초과수익을 얻은 에너지 기업과 은행에 대해 횡재세를 도입했거나, 도입 예정 중에 있다는 점을 법안 발의 배경으로 설명했다.

발의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지난 10일 횡재세 추진 발언 이후 4일 만에 전격 이뤄졌다. 이 대표는 당시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미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횡재세를 도입했고, 미국도 초과 이익에 대해서는 소비세 형태의 과세 법안을 발의했다"며 "횡재세 도입으로 만들어진 세원으로 고금리에 고통 받는 국민들의 삶을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이 대표는 지난 17일 "고(高)에너지 가격에 많은 이익을 거둔 정유사 등에 대해서 횡재세를 부과하는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고도 밝혔다. 유가 상승, 고금리 등의 외부적인 이유로 정유사와 은행들이 얻은 이익을 거둬 민생 고통을 부담할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 대표가 주장한 한국형 횡재세와 유럽의 횡재세는 다소 차이가 있다. 영국은 2022년 5월 26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물가가 급등하자, 석유·가스 채굴 및 생산 기업에 에너지 이익 부과금(Energy Profits Levy)제도를 발표했다. 석유 가격이 안정되는 경우에는 횡재세를 폐지하는 한시적 세제로 고안됐다. 기업의 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초과이익세에 80%에 달하는 공제제도와 함께 도입했다. 징벌적 성격의 조세가 아닌, 에너지 문제에 대한 해결책의 일환으로 봐야한다는 게 전문가들 입장이다.

미국의 경우에는 석유회사들의 초과이익에 대해 소비세 형태로 과세하는 법안이 발의됐을 뿐, 횡재세는 아직 도입되지 않은 상태다. 미국 조세재단은 횡제세 도입을 두고 "정상이윤과 초과이윤을 구분할 수 있는 일관된 방법이 없는 관계로, 횡재세는 조세 왜곡을 발생시키며 조세 시스템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 것"이라는 부정적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민주당의 횡재세법과 관련해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뉴시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민주당의 횡재세법과 관련해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뉴시스

◆한국형 횡재세, 유럽형 횡재세와 배경 달라…산업 구조 차이도

전문가들은 횡재세 도입을 위해서는 국가 산업 구조와 초과 이익 기준 등 여러 가지를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먼저 국내 정유사와 해외 석유 회사의 사업 구조가 전혀 다르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내 정유사들은 원유를 수입해 정제해서 판매해 가격이 원가에 그대로 반영되는 반면, 해외 석유회사들과 원유 시추를 통해 유가상승의 이득을 직접적으로 누린다. 석유를 시추하는 회사의 횡재이익과 높은 가격에 구입한 원유를 가공하여 판매하는 정유회사의 수익을 횡재세 부과를 위한 같은 과세기준으로 보기 어렵다.

이와 관련 김신언 한국세무사회 연구이사는 2022년 8월 '우리나라 횡재세(windfall tax) 도입의 법리적 타당성과 입법안에 대한 비판적 검토'에서 "유럽이나 미국 등 주요 국가들이 에너지 기업에 과세하는 것을 참고해서 국내에서 발의된 법안들이 정유회사를 납세의무자에 포함한 것은 다소 성급한 느낌이 없지 않다"고 주장했다.

과세대상이 되는 초과이익에 대한 구체적 개념이 아직 정립되지 않은 점도 큰 리스크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지난 3월 발간한 '횡재세 도입 논의의 현황과 과제'에서는 "과세요건과 관련해 과연 어떠한 상태에서 어느 정도가 해당 기업의 초과이익으로 과세할 수 있는지 명확한 기준이 제시될 필요가 있다"며 "새로운 세제를 개발하는 단계에서는 과잉금지 원칙에 위반되지 않는지 면밀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같은 우려 속 야당 내부에서도 제도 본래의 취지가 왜곡된 반시장적 정책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여선웅 전 대통령비서실 청년소통정책관은 "우리 정치권엔 영국 횡재세의 원래 취지와 고민들이 생략된 채 단순히 돈을 많이 번 기업에 세금을 더 많이 걷자는 로직만 남았다"라며 "시장경제 기본원리에 반하는 흐름과 분위기가 정치권과 사회 전반에 팽배해지면 우리 경제의 역동성과 혁신성이 떨어져 결국 경제 성장이 멈추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밝혔다.


snow@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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