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방문해 환자 위로 및 의료진 격려
김 여사 "소록도 사회적 편견 없애기 위해 찾았다"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7일 전남 고흥 국립소록도병원을 방문해 한센인들을 위한 연필화 그리기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김 여사는 한센인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실 제공 |
[더팩트ㅣ용산=박숙현 기자]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대표적 한센병 환자 정착촌인 전남 고흥의 '소록도'를 찾았다. 역대 영부인들이 방문 때마다 한센병 환자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약속했던 만큼, 김 여사의 이번 방문을 계기로 한센병 환자와 한센인에 대한 정부 지원 사업이 재조명 받을지 주목된다.
김 여사는 지난 7일 전남 고흥의 국립소록도병원을 방문했다. 이어 소록도병원 치료 병동에서 한센병 환자는 혈압, 기력저하 등 기저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을 위로하고 '연필화 그리기 프로그램' 등에 참여한 환자들과 소통했다고 대통령실은 전했다.
김 여사는 또 43년간 소록도에서 한센인들을 돌봤던 마리안느 스퇴거 간호사와 지난 9월 선종한 마가렛 피사렉 간호사가 사용했던 'M 치료실'도 방문했다. 이어 의료진에게 감사를 표하고, 소록도병원 방문에 앞서 고흥 유자 체험 농장에서 직접 유자를 따서 만든 유자청을 환자와 의료진에게 전달했다.
김 여사의 이번 방문은 지난 2000년 5월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 2018년 10월 문재인 전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에 이어 역대 영부인 중 세 번째다.
김 여사의 소록도 방문은 사회적 약자와의 '따뜻한 동행' 행보 중 하나로 보인다. 앞서 김 여사는 서울과 부산의 쪽방촌 어르신들을 찾아뵙고 미혼모자가족 복지시설을 방문하기도 했다.
왼쪽은 2000년 5월 이희호 여사가 영부인으로는 처음으로 소록도를 방문해 한센인을 위로하는 모습. 오른쪽은 1970년 6월 17일나환자촌을 방문한 육영수 여사와 소록도에 있는 故 육영수 여사 공덕비 /국정홍보처 발간 '대한민국 정부 기록사진집' 제8권, 국립소록도병원 홈페이지, 김대중평화센터 제공 |
김 여사는 소록도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지키면서 치유의 공간으로 탈바꿈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 여사는 '한센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여전하다'는 한센병 환자의 말에 "저 역시 소록도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없애기 위해 여기를 찾았다"고 화답했다. 이어 "소록도는 더이상 환자들만의 거주 공간이 아니며,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문화탐방의 가치를 지닌 곳"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 국민들이 소록도가 어떤 공간인지 더 잘 알아야 한다"면서 "소록도는 정신적 치유의 메시지를 주는 곳으로서의 사명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소록도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어떻게 활용하고 후손에 물려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소록도 병원장은 보건복지부와 전문가들이 함께 소록도병원의 중장기적인 운영 방안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고 이도운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김 여사는 또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 그림을 그리는 등의 활동으로 아픔과 외로움을 극복한다고 설명하자, "소록도의 생활과 풍경 그리고 여러분의 애환이 담긴 작품을 통해 소록도와 한센병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기 바란다"라고 했다.
소록도는 한국 한센인 정착촌의 축소판이라 불린다. 주민등록 기준 인구 500여명 중 재원환자가 390여 명이다. 1916년 일본 조선총독부가 한센병 전문 특수병원인 '자혜의원'을 설립한 이후부터 전국 각지 한센인들이 쫓기듯 이곳으로 들어오게 됐다. 이 시기 전염병 격리자이자 식민지 백성이라는 신분으로 혹독한 강제 노동은 물론 강제낙태·단종수술 같은 인권침해를 겪었다. 해방 이후 한센인들은 전국 각지로 흩어져 정착촌을 형성했다. 하지만 한센인에 대한 잔인한 인권침해와 부당한 처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 2006년 일본 한센인보상법 개정을 통해 일제 강점기 한국 한센인에 대한 보상 지원법이 만들어지면서 국내에서도 '한센인피해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자 지원법'이 제·개정될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한센인에 대한 기피·차별 등 부정적인 태도와 편견은 여전한 분위기다. 소록도는 현재 보건복지부 산하 국립소록도병원의 관할 아래 있다.
아픔과 차별의 역사를 지닌 소록도는 역대 영부인들과도 인연이 깊다. 특히 박정희 전 대통령 부인 육영수 여사는 한센병 환자 복지사업에 관심을 많이 쏟았다. 1971년 12월 전남 나주의 한센인촌, 1972년 9월 전북 익산의 한센인촌을 방문하고, 소록도병원에 병실과 진료실·목욕실 등을 갖춘 양지회 기념관 건립을 위해 2000만 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이후 1974년 준공식에 맞춰 소록도를 방문할 계획이었으나 3개월 전 피살되면서 무산됐다. 소록도에는 한센병 환자들이 육 여사를 기리는 공덕비도 세워져 있다.
이후 2000년 5월 이희호 여사가 대통령 부인으로는 처음으로 소록도를 찾았다. 이 여사는 수백명의 환자, 주민들과 만나 "사회적인 냉대와 몰이해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인간 승리의 모습을 보여 준 원생들에게 존경을 표하며, 이제 소록도는 외로움의 땅이 아닌 희망의 땅, 축복의 땅이 되었다"고 연설했다. 이어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소록도 자원봉사회관' 건립을 약속했고, 이듬해 3월 준공식 때 재방문했다.
김정숙 전 여사가 2018년 10월 23일 오후 전남 고흥 국립소록도병원을 방문해 환자들에게 격려와 위로의 말을 전하는 모습. /청와대 제공 |
그로부터 18년 뒤인 2018년 문 전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도 소록도를 방문해 "소록도가 이제 더 이상 고통의 섬이 아니라 치유와 희망을 상징하는 땅이 되기를 바란다"고 격려했다. 고령의 환자를 끌어안고 위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