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안팎으로 비판 "미국이었으면 정치생명 끝날 일"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인요한 혁신위원장을 향해 영어로 만남을 거절한 것을 두고 '인종차별'이란 비판이 나온다. /박성원 기자 |
[더팩트ㅣ국회=조성은 기자]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인요한 혁신위원장을 향해 영어로 "당신은 우리의 일원이 됐지만 우리의 일원처럼 보이지 않는다"면서 만남에 선을 그은 것을 두고 6일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당 안팎으로 "예의가 아니다", "아쉽다"는 지적과 함께 "인종차별"이라며 공개적인 사과 요구도 나온다.
이 전 대표는 지난 4일 부산에서 열린 토크콘서트에서 자신을 찾아온 인 위원장을 '미스터 린턴 씨(Mr. Linton)'로 지칭하며 영어로 말하며 만남을 거부했다.
비판이 이어지자 이 전 대표는 5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 '여의도 재건축 조합'에서 "모욕을 주기 위해 영어로 하겠다는 의도가 있었다면 모든 말을 영어로 했을 것"이라며 "언어 능숙치를 생각해서 얘기했는데 그게 인종차별적 편견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고 해명했다.
당내에서는 '무례했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한 중진 의원은 통화에서 "예의가 아니었다.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인종차별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라면서도 "인 위원장은 한국어가 더 익숙한 사람인데 이 전 대표가 좀 착각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한 초선 의원은 통화에서 "인 위원장이 어른인데 이 전 대표가 해도 너무했다"며 "기분이 나빴을 수 있겠지만 공개적으로 모욕을 줄 것까진 아니지 않냐"라고 짚었다.
인 위원장이 전남 순천 태생의 특별귀화 1호 한국인이라는 점에서 '인종차별' 논란으로 이어진다. 장예찬 청년최고위원은 채널A '뉴스A라이브'에서 "이 전 대표가 한국에서 산 시간보다 인 위원장이 한국에서 산 시간이 훨씬 더 길다. 한국에서 더 오래 산 분에게 뉘앙스 운운하며 영어로 전달하겠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상황을 바꿔 미국에서 유력 정치인이 한국계 정치인에게 '당신은 우리와 같지 않다. 당신의 언어로 말하겠다'라면서 한국어로 말하면 대번에 인종차별 스캔들로 퍼지고 정치생명이 끝날 것"이라고 비판했다.
금태섭 전 의원 주도의 신당 '새로운선택' 창당준비위원회의 곽대중 대변인은 5일 페이스북에 "우리나라는 다민족 국가"라며 "어쨌든 국민의 일원이 된 사람에게 공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유독 그 사람에게만 '당신 민족의 언어'를 사용했다. 기어이 그렇게 했다면 일종의 인종차별"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상대가 공용어에 미숙한 사람이라면 예의 차원에서 그랬다고 보겠으되, 공용어에 능숙한 사람에게 그랬다면 저열한 '혐오표현'"이라며 "'너는 우리 국가의 일원으로 인정할 수 없다'라는 '헤이트 스피치(혐오발언)'로 유엔 인권위원회에 제소할 사안"이라고 꼬집었다.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가운데)은 전남 순천 태생의 특별귀화 1호 한국인이다. /이새롬 기자 |
시민사회에서도 비판이 나온다. 장예정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활동가는 6일 <더팩트>에 "무려 19세기부터 가족이 한반도 땅에 살고있는 인 위원장"이라며 "이런 명백한 한국 사람에게 굳이 영어로 대화를 하는 것은 결국 '너는 백인이야'라는 것 말고는 이유를 찾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전 대표 본인보다 한국어를 오랜 시간 자신의 언어로 사용해 온 인 위원장에게 영어로 면박을 주는 행위는 달리 다른 말로 표현할 것이 없다"며 "한국에서도 이미 여럿이 인종차별적 혐오표현임을 지적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정치인이 정치인에게 이런 식의 발언을 했다면 그의 정치 인생은 거기서 끝이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나종호 미국 예일대 정신과 조교수는 5일 페이스북에 "명백한 인종차별"이라고 봤다. 그는 "'당신은 우리와 다르다', 미국에서 나고 자란 아시아계 미국인에게 가장 쉽게 상처를 주는 말은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이라며 "실제로 아시아계 미국인에게 인종차별로 가장 쉽게 쓰이는 표현"이라고 짚었다.
그는 "이 전 대표가 인 위원장에게 'Mr. Linton'이라고 하며 영어로 응대한 것은 이와 같은 맥락의 명백한 인종차별"이라며 "만약 한국계 미국인 2세에게 한국계라는 이유로 미국의 유력 정치인이 공개석상에서 한국어로 이야기를, 그것도 비아냥대면서 했다면 그 사람은 인종차별로 그날로 퇴출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치인으로서 자격 미달이고 공개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
'말이 칼이 됐을 때'의 저자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 5일 페이스북에 "부모님이 한국인이지만 3대째 미국에서 살고 있고,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 국적을 취득했고, 미국에서 현지 유치원부터 대학원까지 다녔으며 미국에서 평생 직장을 다니면서 환갑이 된 미국 정치인이 있다고 치자"며 "그런 이력의 재미교포 3세 정치인에게 어떤 미국 정치인이 정확한 뉘앙스 전달을 위해서라며, 영어 이름이 있는데 굳이 한국 이름을 부르면서 굳이 한국어로 말을 걸었다면? 그것도 공식 석상에서? 아마 인종차별이라고 난리 났을 일"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인 위원장은 "섭섭하다"면서도 반응을 자제하고 있다. 인 위원장은 6일 채널A '라디오쇼'에서 "이 전 대표가 저에게 영어를 했다. 엄청 섭섭했다"면서 "그리고 자꾸 다르게, '너는 외국인이야' 이런 식으로 취급하니까 힘들고 섭섭했다. 나를 너무 모른다"고 밝혔다.
오신환 혁신위원도 이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이 전 대표 입장에서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니까 다소 불쾌했을 수 있을 것 같다"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그는 "그 오후에 이 전 대표께서 뉘앙스를 포함해 자신의 정확한 의도를 전달하기 위한 표현이었다고 했고 인 위원장께서는 섭섭한 부분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계속 더 (만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말씀이 있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