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환 전환기정의워킹그룹 대표 인터뷰
"소극적 대처, 韓 가치외교 의문 제기할 것"
'전환기정의워킹그룹' 이영환 대표는 지난달 27일 <더팩트>와의 인터뷰에서 "강제북송 사태 이후 정부 대처는 기대 이하"라며 "이전 정부에선 남북 관계에 갇혀 있었던 외교 지평을 인류 보편적 가치로 넓혔다는 말을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고 혹평했다. /임영무 기자 |
[더팩트ㅣ종로=조채원 기자] "왜 공개적으로 '중국이 탈북민 강제북송했다'고 말을 안하나. 외교부는 주한중국대사를 왜 초치하지 않나."
'전환기정의워킹그룹' 이영환 대표는 지난달 27일 <더팩트>와의 인터뷰에서 "강제북송 사태 이후 정부 대처는 기대 이하"라며 "이전 정부에선 남북 관계에 갇혀 있었던 외교 지평을 인류 보편적 '가치'로 넓혔다는 말을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고 혹평했다. 황준국 유엔주재 한국대사가 지난달 18일(현지시간) 유엔총회에서 최근 탈북민 대규모 강제북송 문제에 항의의 뜻을 표하면서도 중국을 '제3국'(third country)이라고 지칭한 데 따른 비판이다. 이 대표는 "한국이 소극적으로 대처하면 북송문제를 두고 중국과 더 나아간 협상을 할 수 없을 것이고, 국제사회도 한국이 말하는 '가치 외교'에 의문을 품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대표가 몸담은 전환기정의워킹그룹(전환기정의)은 2014년 설립된 비영리 인권조사 기록단체다. 무력분쟁이나 독제 체제로부터 전환 중이거나 아직 전환이 이뤄지지 않은 사회에서 대규모 인권침해를 다루는 모범사례를 개발하고 피해자 중심 접근과 정의를 구현하는 게 목표다. 전환기정의는 북한 등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반인도 범죄를 지도화(Mapping·매핑)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매핑이란 북한 내 처형장소와 암매장 등 시체 처리장소, 인권 침해 관련문서나 증거가 있을만한 장소들을 지도에 표시하는 작업을 의미한다. 정보수집과 분석 등 전 과정은 탈북민 인터뷰와 공간지리정보(GIS) 기술 적용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지금까지 800명 넘는 탈북민들을 면담하며 2017년부터 2년마다, 총 세 차례 보고서를 냈다.
이 대표는 최근 한 컨퍼런스에서 "항저우 아시안 게임 전후 강제북송된 탈북민은 3회 합산 총 620여명"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가 인용한 소식통에 따르면 중국 당국은 8월 29일 이후 약 80여명, 9월 18일 약 40명, 10월 9일 약 500여명을 북한으로 돌려보냈다. 북송된 탈북민들은 구금돼 가혹한 고문과 강제노역에 시달리고, 처형 위험에까지 놓인다. 전환기정의는 강제북송 역시 강제실종(개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국가기관 혹은 국가의 역할을 자임하는 조직이나 개인에 의해 체포, 감금, 납치돼 실종되는 범죄 행위)에 포함되는 만큼 탈북민들의 생사와 향방을 계속 추적하고 있다. 이 대표는 "북송 과정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누구에게 어떤 책임이 있는지에 대해 깊이 파고들고 있다"며 "특히 중국 당국의 책임성과 관여 정도에 대한 조사를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이 대표와의 일문일답. 10월 31일 보도 관련 질문은 전화 인터뷰로 진행됐다.
이영환 전환기정의워킹그룹 대표는 지난달 27일 <더팩트>와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전후로 북한 인권 상황은 이전보다 더욱 악화했고, 앞으로도 악화할 것"이라며 "북한 내 인권침해 상황에 관한 정보를 확보하고 기록하는 일은 전보다 훨씬 더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임영무 기자 |
-코로나19 전후로 북한인권 상황은 어떻게 달라졌나.
코로나19를 이유로 국경봉쇄 조치를 단행한 이후 북한 정권이 가장 신경썼던 건 '바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정보 차단이다. 봉쇄 시기에 제정된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청소년교양보호법, 평양언어보호법 등을 살펴보면 알 권리 통제에 주력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실제로 효과를 톡톡히 봤다. 전염병 확산을 막는 데 총력을 기울이는 다른 나라와 다르게 군비 개발에만 국가 역량을 집중하는 정권에 대한 비판의식이 싹트는 걸 막을 수 있었다. 효과가 컸던 이상 이전으로 돌아갈 일은 없을 거다. 코로나19 전후로 북한 인권 상황은 이전보다 더욱 악화했고, 앞으로도 악화할 것이란 의미다. 그만큼 북한 내 인권침해 상황에 관한 정보를 확보하고 기록하는 일은 전보다 훨씬 더 어려워졌다. 북한 내 모든 분야에 대한 통제가 강화하면서 북한 내부 사정을 알 수 있는 방법도 대폭 줄었다.
-최근 대규모 강제북송 이후 우리 정부 대처를 어떻게 평가하나.
기대 이하이자 기본 이하다. 통일부가 13일 대변인 입으로 강제북송 사실을 공식 확인한 후부터는 중국이 '행위자'란 점을 적극 명시했어야 했다. 그런데 황 대사는 유엔총회에서 "여러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 국경이 부분적으로 개방됨에 따라 제3국에 있는 다수의 탈북민들이 송환된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제3국이라니. 가장 개탄하는 부분이다. 이해당사국인 한국이 이렇게 톤 다운을 해버리면 다른 유관국의 공조를 이끌어내기 힘들다. 지금부터라도 정부는 공개 석상에서 '중국'이 탈북민 강제북송에서 유엔 난민협약 등 다수의 국제법 가운데 무엇을 위반했는지 하나하나 짚어가며 국제사회에 선명하게 밝혀야 한다.
중국을 향해서도 가시적 유감표명이 있어야 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방중 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탈북민 강제북송에 대한 우려를 전달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중국 정부가 요청을 받았다면 한국에 최소한 사전통보나 설명을 해줬어야 했다. '조용한 외교' 판을 깨뜨린 건 중국이다. 그런데 외교부는 왜 주한중국대사를 초치하는, '보여주기식 항의'조차 하지 않았나.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대응한다면 중국은 탈북민 북송 문제에서 한국 입장을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거다.
이영환 전환기정의워킹그룹 대표와 강제실종조사기록팀이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율곡로 사무실에서 <더팩트>와 인터뷰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송아 연구원, 강정현 선임연구원, 이 대표. /임영무 기자 |
-'국정원이 대규모 북송을 이틀 전 인지하고 있었다'는 31일 보도에 정보를 제공하기도 했는데.
이미 벌어진 일이지만 지금이라도 알리는 건 재발을 방지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국정원, 외교부 등 유관기관 누가 잘못했냐를 따지자는 게 아니다. 관계 부처 간 정보 공유가 원활한지, 중국에서 벌어지는 강제북송 징후를 관찰·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는지, 휴민트(HUMINT·인적 네트워크)가 제대로 가동되고 있는지에 대한 문제제기다. 어떤 정보를 입수했을 때 정부가 빠르게 확인하고 공식입장을 내놔야 해외 언론이 반응한다. 중국의 강제북송을 저지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은 국제사회 여론에 있는데, 그 타이밍을 다 놓쳤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뭐가 문제였건 사실확인 과정이 지체되면 앞으로도 알고도 당하거나 '사후약방문'에 머물 수 밖에 없다.
-일반 국민 시선에선 '북한인권'은 다소 먼 이야기일 수 있다. 탈북민 북송 문제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는 방안은.
탈북민을 효용성 차원에서 접근해 국민적 공감대를 높여야 한다. 일반 국민들은 탈북민들이 우리 사회에 녹아들어 세금 잘 내는지, 경제적 기여를 할 수 있는지 등 실리적 차원에서 바라본다. 그간 탈북민들을 '미리 온 복지 부담'이냐 아니냐로 보는 프레임에 갇혀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탈북민들이 한국 사회의 안전을 지키고 북한의 동태를 확인 하고 파악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 정보 자원으로서 기여하는지를 정부가 강조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해외 체류 탈북민들이 줄어들면 우리 정부가 북한 정세나 대북정책을 판단할 수 있는 휴민트들이 끊어진다. 북송으로 '무고한 탈북민들을 사지로 내몰면 안 된다'는 인권친화적 인식이 높으면 좋겠지만, 결국 탈북민이 줄어드는 만큼 북한을 촘촘하게 파악할 수 있는 정보량도 줄어드는 거다. 이를 만회하는 데 더 많은 우리 세금을 투입해야 한다고 설명하면 더 와닿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