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이후 첫 대면 대화 성사될 듯
사전환담 의미 묻자 "국회 지도자 목소리 경청"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1일 국회에서 만나 대화를 나눌 전망이다. 지난 8월 1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열린 제78주년 광복절 경축식을 마친 뒤 이 대표와 악수하고 있는 윤 대통령. /뉴시스 |
[더팩트ㅣ용산=박숙현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31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70여 일 만에 만난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이후 대통령실과 여야 모두 앞다퉈 '변화'를 외치는 기류 속에, 대립을 잠시 멈추고 민생을 위한 대화의 장이 마련된 것이다. 다만 다음 달 예산정국을 앞두고 정치권이 힘겨루기에 돌입하면서 국정 논의를 위한 대통령과 여야 대표 간 '3자 회동'은 여전히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높다.
두 사람의 만남은 윤 대통령이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를 찾으면서 이뤄질 예정이다. 시정연설에 앞서 진행되는 5부 요인(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국무총리·중앙선거관리위원장·감사원장) 및 여야 지도부 환담 자리에 이 대표가 참석하기로 결정하면서다. 권칠승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30일 최고위원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내일 시정연설 때 모임에 참석하기로 했다"며 "여러 의견이 있었지만, 대표의 결단으로 참석하기로 결론 났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참석하는 사전환담이 성사되면 지난 8월 광복절 기념식 행사와 윤 대통령 부친 빈소 방문 이후 77일 만의 만남이 된다. 특히 이번 만남은 현 정부 출범 후 두 사람이 사실상 처음 대면으로 소통하는 자리가 될 전망이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해 8월 이 대표의 당대표 취임을 계기로 통화한 이후 공식 석상에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다. 지난해 10월 1일 충남 계룡대에서 열린 제74주년 국군의날 기념식에서 대선 이후 처음 대면했고, 올해 들어서도 제104주년 3·1절 기념식, 5월 27일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 6월 6일 제68회 현충일 추념식, 8월 15일 제78주년 광복절 기념식 등 공식석상에서 여러 차례 만났지만 악수를 나누는 데 그쳤다. 1년 전 윤 대통령 시정연설 전 사전환담도 이 대표가 불참하면서 만남이 불발된 바 있다.
대통령실은 사전환담을 통해 자연스러운 만남을 기대하는 분위기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최근 윤 대통령과 이 대표와의 만남 가능성에 대해 즉답을 피하며 "대통령께서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를 찾아가셨을 때 야당과 함께 터놓고 이야기하고, 국정을 함께 논의하고자 하는 뜻이 담겨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사전 환담은 짧은 티타임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이 요청하고 있는 대통령과 여야 대표 간 '3자 회동'도 불투명하다. 지난해 10월 25일 윤 대통령이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기 위해 국회 본청에 들어서는 가운데, 이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의원들이 피켓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 /이새롬 기자 |
사전 환담은 주요 인물들이 한데 모여 인사를 나누는 티타임 성격이라, 국정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30일 기자들과 만나 사전 환담에 대해 "국회는 국민의 대표 기관이기 때문에 국회 지도자들과 만나게 되면 목소리를 잘 경청하겠다"면서 윤 대통령이 '경청 모드'로 임할 것임을 시사했다.
1년 전과 분위기가 사뭇 달라져 이번 만남을 기점으로 소통의 물꼬를 트면서 이 대표가 거듭 요청한 '3자 회동' 추진 동력을 얻을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지난해에는 민주당이 이 대표에 대한 검·경 수사에 반발하면서 헌정사상 최초로 대통령 시정연설에 전원 불참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로텐더홀에서 '야당탄압 중단하라! 국회무시 사과하라!'는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시위했었다. 올해는 여야 원내대표가 국회 회의장에서 피켓 부착과 상대 당을 향한 고성·야유 등을 하지 않기로 신사협정을 맺으면서 이번 시정연설에선 야유나 고성은 나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도 강서 보궐선거 완패 이후 연일 '소통' '민생' 메시지를 내고 있어 야당에 먼저 다가가는 모습을 연출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대통령실은 현재 이 대표의 '3자 회동' 제안에 대해 "여야 대표 회동이 먼저"라며 공을 넘긴 상황이다.
윤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시작으로 국회가 예산정국에 돌입하면 여야 훈풍 기류는 이내 바뀔 전망이다. 정부·여당은 긴축재정 기조로 656조9000억 원 규모 예산안의 원안 통과를 주장하고 있고, 야당은 정부가 삭감한 연구개발(R&D), 지역사랑상품권, 새만금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예산을 국회 심의 과정에서 돌려놓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 대표는 이날 최고위 회의에서 "윤석열 정부는 1년 반 동안 정말 아무 대책 없이 경제와 민생을 방치했다"면서 "이번 시정연설에서는 이런 국민의 고통에 제대로 응답하기를 바라고, 민생과 경제를 살리기 위한 실질적 대책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쟁점 법안을 두고도 정국 주도권 힘겨루기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다음 달 쟁점법안인 이른바 '노란봉투법'과 '방송3법'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고,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로 저지하겠다며 맞서고 있다. 국회 본회의에서 해당 법안이 통과하고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여야 대립은 한층 심화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