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 마약 관련 대책 입법화 미미한 수준
與 "국민 지키기 위한 대책 마련에 여야 힘을 모아야"
21대 국회에서 마약 관련 대책 법안들이 다수 쌓여 있다. 국제적으로 인정받던 '마약 청정국'은 옛말이 된 상황에서 국회의 입법 노력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8일 마약 투약 혐의로 입건된 배우 이선균이 인천 남동구 인천논현경찰서에서 시약 검사를 마친 뒤 귀가하는 모습. /임영무 기자 |
[더팩트ㅣ신진환 기자] 국제적으로 인정받던 '마약 청정국'은 옛말이 된 상황에서 국회의 입법 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명 연예인들의 마약 스캔들이 잇따라 터지는 가운데, 21대 국회에서 마약 관련 대책 법안들이 수두룩하게 먼지만 쌓이면서다. 여야는 유명 연예인이 마약 투약 혐의로 형사 입건되는 사건이 발생하기 전후로 이번 국감에서 마약 근절에 관한 대책이 시급하다며 목소리만 높였다.
지난 1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장. 필로폰 투약 혐의로 기소된 아이돌그룹 '위너' 출신 가수 남태현 씨가 참고인으로 국감장을 찾았다. 그는 민간이 운영하는 마약중독 재활시설인 '다르크'에서 지내며 재활에 힘쓰고 있고, 약물 전문 병원인 인천참사랑병원에서 치료를 겸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곳(다르크)에서 마주하는 것이 너무나도 처참하다. 매일 센터장에게 '도와달라, 살려달라'는 연락이 많이 오는데, 수용할 공간이 없고 너무나 힘든 상태다. 정부의 지원을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국감 기간 중 마약과 관련한 자료도 쏟아지고 있다. 마약 밀수 건수와 범죄가 증가했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몇몇 자료를 꼽자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맹성규 의원은 지난 24일 관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해 최근 5년(2018년~2023년 7월) 인천공항에서 적발된 마약 밀수는 1,706,061g(8106억 원)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또, 코로나19 엔데믹으로 해외여행이 활성화된 올해는 여행자를 통한 밀반입이 단 7개월 만에 지난해 밀반입량보다 66.4%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서영석 의원은 소위 '클럽마약'으로 불리는 의료용 마약류 '케타민'의 처방 현황을 살펴보면 지난 2020년부터 올해 6월까지 서울 강남구 소재 의원에서 약 78만 명의 환자가 케타민을 처방받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고, 같은 위원회 백종헌 국민의힘 의원은 의료용 마약류를 관리·감독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처에 과다처방을 방지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시스템이 부재하고, 의료용 마약류를 관리·감독하는 식약처가 수사를 의뢰하고도 결과도 모르는 등 수사기관과 공조가 안 되고 있다는 점 등을 문제 제기했다.
최근 마약과 관련한 뉴스가 끊이지 않고 있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 있는 대학에서 마약을 판매한다는 광고물이 뿌려져 경찰이 수사에 나서는가 하면, 인천공항 세관 직원 4명은 다국적 마약 조직원들이 공항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지 않고 입국할 수 있도록 하여, 필로폰 24kg 국내 밀반입을 도운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이뿐 아니다. 최근 19세 이하 청소년 마약사범 수는 4배 이상, 20대 청년 마약사범 수는 약 3배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경이 검거한 마약범죄 건수는 2018년 90건에서 2022년 962건으로 4년 만에 10배 이상 폭증했다.
21대 국회 마지막 국정감사에서 마약 근절에 관한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사진은 그룹 위너의 남태현이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부 등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마약 재활 정책 및 재활치료 관련 발언하는 모습. /남용희 기자 |
마약 관련 범죄가 기승을 부리다 보니, 여러 상임위 국감장에서 마약류의 철저한 관리와 처방, 특히 청소년들의 마약 근절책을 주문하는 경우가 잦다. 국감장뿐 아니라 정당에서도 국회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양수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국정감사대책회의에서 "우리나라가 마약 청정국의 지위를 잃은 것을 넘어 세계 곳곳의 마약이 한국으로 흘러들어오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더 늦기 전에 마약으로부터 우리 국민, 특히 청소년들을 지키기 위한 대책 마련에 여야 없이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21대 국회는 마약류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고 마약 관련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해왔다. 지난 7월 마약류 중독자를 적시에 치료할 수 있도록 치료보호기관의 판별검사 및 치료보호에 드는 비용을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도록 하는 등을 내용으로 하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청소년 마약류 중독예방 교육의 국가 책임을 규정한 법안도 국회 문턱을 넘었다. 지난 5월에는 마약류취급의료업자가 마약류를 처방할 때 환자의 투약 내역을 확인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 법안도 처리됐다.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4일까지 마약류 관리에 관한 개정안 발의 52건 중 대안반영 폐기를 제외한 원안·수정 가결 기준 통과된 법안은 7건(13.4%)이다. /이새롬 기자 |
국회는 또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마약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도 통과시켰다. 3월 통과했던 마약류관리법 개정안은 미성년자에게 대마를 수수·제공 등을 한 자에 대한 현행 1년 이상의 징역이 2년 이상의 징역으로, 상습범에 대해서는 3년 이상의 징역으로 처벌 규정을 강화하는 내용이다. 더는 마약 관련 범죄를 심신미약 등으로 관대하게 처벌하는 것을 바꿔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가 어느 정도 반영된 것이다.
사회 전체를 파괴하는 마약 확산을 막기 위해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게 여야의 공통된 인식이지만 국회의 입법화 성적은 다소 저조하다.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4일까지 마약류 관리에 관한 개정안 발의 52건 중 대안반영 폐기를 제외한 원안·수정 가결 기준 통과된 법안은 7건(13.4%)이다. 마약류 재발방지를 위한 평생교육지원법과 중독증 제거 및 재발 방지를 위한 평생교육지원에 관한 법률안과 마약류 불법거래 방지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은 계류 중이다. 마약류 관련 범죄행위를 위한 장소를 제공하는 경우 영업장 폐쇄 등과 같은 마약 관련 계류 법안도 90여 건이다.
여야는 다음달 8일까지 진행되는 국감 이후 내년도 예산안 정국에 돌입한다. 때문에 이번 정기국회에서 뒷전에 밀린 마약 근절 관련 법안들이 입법화될지는 미지수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각 정당의 선거 체제 전환이 불가피한 데다 21대 국회 임기가 내년 5월 말에 끝난다는 점에서 기대감은 작다. 최진묵 인천다르크 마약류중독재활센터장 <더팩트>와 통화에서 "마약을 정말 끊고 싶어 도움을 청하는데도 받아줄 수 없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면서 "이제라도 정부와 입법기관이 마약 중독의 치료와 재발 부분에 대한 지원 등 정책을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