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비례대표 의원들, 총선 겨냥 지역구 다지기
입법 성과 '글쎄'…김경만, 대표발의 법안 가결률 1위
각 당 일부 비례대표 의원들이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 재선을 노리는 행보를 보인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를 국회에 입성시켜 법적·제도적 실익을 제고하자는 비례대표의 취지가 퇴색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김의겸 민주당 의원. /더팩트 DB |
[더팩트ㅣ신진환 기자] "현행 비례대표 제도는 전문가나 정치적 소외계층의 목소리를 국회에서 반영하겠다는 본래 취지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양대 진영의 전사를 양성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입후보할 때는 당선권 안에 들기 위해, 당선된 이후에는 다음 선거에서 지역구 출마를 보장받기 위해 맨 앞줄에서 진영의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다. 현행 비례대표제는 국민이 아닌 정당이나 진영을 대표할 뿐이다."
지난 4월 1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국회의원 선거제 개선에 관한 전원위원회에서 재선의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 말이다. 조 의원은 당시 현행 소선구제를 한 선거구에서 5명 이상 뽑는 중대선거구로 바꾸자고 주장하는 과정에서 현행 비례대표제를 강하게 비판해 눈길을 끌었다. 국회 안에서도 비례성과 대표성을 높이기 위해 비례 의석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과 시대적 한계에 봉착한 비례대표제를 대폭 축소 또는 폐지하자는 견해로 양립한다.
내년 4월 총선에 적용할 선거구제와 선거제 개편 논의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국민의힘은 위성정당 방지를 위해 병립형 비례대표제를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2월 지역구 득표율과 정당 득표율을 반영해 비례 의석을 나누는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당론으로 채택했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지난 8월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선거제도 전문가인 정치학자와 법학자 489명 중 57%가 비례대표 확대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각 당 비례대표 의원들은 내년 총선에서 지역구 출마를 노리고 있다. 민주당 신영대 의원의 전북 군산에는 김의겸 의원이, 양기대 의원 지역구인 경기 광명을에선 양이원영 의원이 지역 사무실을 냈다. 권인숙 의원은 경기 용인갑, 이수진 의원은 서울 서대문갑, 최혜영 의원은 경기 안성 등에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국민의힘에선 전주혜(서울 강동갑), 조수진(서울 양천갑), 정운천(전북 전주을) 등이 지역에서 몸을 풀고 있다.
민주당 한 의원실 관계자는 <더팩트>와 만나 "국회의원은 전·후반기가 있다고들 한다. 임기 초반에는 입법 성과를 내는 데 집중해 실적을 쌓고 후반기에는 재선을 노리는 풍토가 있는데, 국회에선 관습처럼 여겨진다. 비례 의원의 경우는 비교적 당선 가능성이 큰 지역이나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지역을 물색하고 공을 들인다. 상황에 따라 선거를 위해 주소도 옮긴다. 해당 지역구 의원인지 헷갈릴 정도로 지역 행사를 챙기는 일이 흔하다"고 말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아들에게 허위 인턴 확인서를 발급해 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던 최강욱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18일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확정되면서 의원직을 잃었다. 이에 따라 민주당 비례대표 의원직은 여군 장교 출신의 허숙정 의원이 승계했다. /남용희 기자 |
그렇다면 의정 활동 중 국회의원의 가장 기본 업무인 입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21대 국회 비례 의원들이 전문 영역에서 뚜렷한 입법 성과를 냈을까.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7일 기준 여야 비례대표 47명의 대표발의 법안 건수는 모두 3415건이다. 이 가운데 23%에 해당하는 786건이 통과됐다. 이는 원안가결·수정가결·대안반영폐기·철회를 모두 포함한 것이다. 같은 기준으로 이번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2만5363건)의 가결률(원안가결·대안반영)은 31.8%다.
세부적으로 정당별 대표발의 가결률(피승계인 불포함)을 따져 보면, 22석의 비례 의석을 가진 국민의힘은 26%, 16석의 민주당은 22.9%, 5석의 정의당은 20.7%였다. 개인별로 보면 중소기업정책 전문가인 김경만 의원(96건 중 38건)은 민주당뿐 아니라 여야를 통틀어 1위였다. 가결률은 39.5%. 국민의힘 비례 의원 중에선 봅슬레이 국가대표 감독 출신 이용 의원(60건 중 23건)과 이미지 전략가 허은아 의원(39건 중 15건)은 38%의 가결률을 기록해 가장 높았다.
반대로 언론인 출신 김의겸 의원(22건 중 1건)은 4.5%로 꼴등이었다. 물론 임기가 내년 5월까지 남은 점과 2021년 3월 김진애 전 의원의 의원직 사퇴로 승계받은 점은 고려할 부분이다. 다만, 김 의원은 지난해 6월 당시 주미대사로 임명된 조태용 전 의원에 이어 비례대표 의원직을 승계한 미용 전문가 최영희 국민의힘 의원(23건 중 1건)보다 1년 이상 먼저 국회에 입성했지만, 수치상으론 비슷했다.
전문성을 갖춘 인재를 입법부에 배치해 의정활동의 질을 높이자는 비례대표제의 취지를 고려하면, 비례 의원들의 입법 수행실적이 국민의 기대만큼일지는 의문이다. 또한 비례 의원들의 부적절한 언행과 논란들도 비례대표제의 부정적 인식을 쌓는 요인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아들에게 허위 인턴 확인서를 발급해 준 혐의로 기소됐던 최강욱 전 의원은 지난달 대법원으로부터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확정받아 의원직을 잃었다.
문재인 청와대 대변인 출신 김의겸 의원은 여러 차례 구설에 올랐다. 지난해 11월 당시 당 대변인 김 의원은 이재명 대표와 주한 EU(유럽연합) 대사와 비공개 면담 내용을 사실과 다르게 취재진에게 전달해 물의를 빚었다. 지난 7월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14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궁평지하차도 참사를 거론해 뭇매를 맞았다.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의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제기했으나 가짜뉴스로 판명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