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부양의무 불이행한 자 상속 배제 논의 막바지
상속결격제·상속권상실제 이견 있지만 여야 합의 가능성
21대 국회에서도 부양의무를 불이행한 자를 상속에서 배제할 수 있도록 하는 입법이 늦어지고 있다. 사진은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구하라법' 통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뉴시스 |
[더팩트ㅣ신진환 기자] 부모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자녀의 출생과 동시에 양육 의무를 진다. 그러나 이혼율 증가로 부양·양육 의무를 저버린 부모가 자녀의 사후 뒤늦게 나타나 재산상 이득을 취득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2014년 세월호 참사로 사망한 딸에게 지급된 사망보험금을 12년 전 이혼한 친부가 받은 사건과 가수 구하라 씨 사건 등의 일이 대표적이다.
지난달 31일에는 어린 3남매를 두고 재혼해 54년간 연락을 끊고 살았던 80대 친모가 불의의 사고로 숨진 아들의 사망보험금에 대한 상속권을 인정받았다. 부산고등법원은 행방불명으로 인한 사망 판정에 따라 수협이 공탁한 2억3000여만 원 규모의 출급청구권 확인 소송에서 고인의 누나가 제기한 항소를 기각했다.
민법상 상속인은 피상속인과 혈연관계가 있으면 원칙적으로 상속받을 수 있다. 혈연관계에서 상속받을 권리 1순위는 망인의 직계비속(자녀·손자)과 법률상 배우자이다. 배우자와 자녀가 있다면 공동상속인이 된다. 망인의 직계비속이 없다면 직계존속(부모·조부모)과 배우자가 2순위다. 형제자매는 그다음이다.
민법 1004조는 고의로 상속의 선순위나 동순위에 있는 자 등을 살해하거나 살해미수, 사기 또는 강박으로 피상속인의 상속에 관한 유언 또는 유언의 철회를 방해하거나, 유언을 하게 하는 행위, 유언서 위조·변조·파기 등 사유가 발생한 경우 등을 한정적으로 상속권을 박탈하는 상속결격사유로 인정하고 있다. 피상속인에 대한 친부모의 부양의무 이행 내용은 없다.
부양의무를 불이행한 자를 상 속에서 배제시키는 제도 도입의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가운데 일명 '구하라법'이 3년째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새롬 기자 |
사실상 자식을 버린 부모가 피상속인의 재산을 상속받는 것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크다.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높은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18~20대 국회에서 양육에 기여하지 않은 친부모가 상속분을 주장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이 폐기됐고, 21대 국회에서도 비슷한 취지의 민법 개정안인 이른바 '구하라법'이 3년째 국회에 계류 중이다.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0년 6월 대표발의한 법안은 '자녀에 대한 양육 의무를 현저히 게을리 한' 부모의 상속권을 박탈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소관 상임위원회인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일부 의원들은 법조인들은 피상속인에 대한 부양의무 범위와 '현저히 게을리 한'의 판단 기준이 모호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2018년 2월 "개별 가족의 생활 형태나 경제적 여건 등에 따라 부양의무 이행의 방법과 정도는 다양하게 나타나기에 '부양의무 이행'의 개념은 상대적"이라며 "직계존속이 피상속인에 대한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를 상속결격사유로 본다면, 과연 어느 경우에 상속결격인지 여부를 명확하게 판단하기 어렵다"고 했다.
서 의원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현저히'라고 하는 말이 모호하다며 다시 법무부가 낸 법에는 '중대하게'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어떤 게 구체적인 표현이고 뭐가 모호한 표현인가"라고 되물었다. 이어 "'현저히'라는 말은 모든 법에 들어 있고, 민법에만 14개 조항에 있다"며 "이것을 법원이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 의원은 "제가 발의한 민법 개정안은 재산을 상속받을 사람이 재산을 물려주는 사람에 대한 양육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했거나 범죄행위를 한 경우, 학대 또는 심각히 부당한 대우를 한 경우 지녀 재산을 상속받을 수 없게 부모의 상속 자격을 박탈하는 것이 핵심"이라며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 아이를 버린 부모가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여야는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상속인을 상속에서 제외시키는 내용의 법 개정을 지속적으로 논의해왔지만, 아직 입법화하지 못했다. 사진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 모습. /남용희 기자 |
법원의 판단에 따라 상속자격을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법안도 있다. 2021년 제출된 정부(법무부)안은 자녀가 생전에 양육 의무를 다하지 않은 친부모의 상속권 상실의 취지는 같지만, 친부모에게 자신의 유산이 가지 않도록 소송을 제기하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친부모를 법률상 당연히 상속에서 배제하도록 하는 서 의원의 법안과 차이가 있다.
정부의 상속결격사유인 '부양의무의 현저한 해태'라는 개념이 불명확해 상속결격인지 여부를 명확하게 판단하기 어려우므로 상속을 둘러싼 법적 분쟁이 빈번하게 발생할 가능성이 크고, 상속관계에 관한 법적 안정성이 저해될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렸다. 이후 법무부는 법사위 여당 간사인 정점식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6월 대표발의한 민법 개정안에 동의하고 있다.
정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기존 정부안을 보완한 것인데, 모든 부양의무 위반을 상속권 상실 청구사유로 문제 삼지 않고 현실에서 문제가 되는 미성년자에 대한 직계존속의 부양의무 위반만을 상속권 상실 청구사유로 한정하는 게 골자다. 상속권 상실 청구권자의 범위를 모든 법정상속인에서 직계존속으로 좁혀 불필요한 분쟁을 최소화하자는 취지다.
다소 쟁점이 있지만, 기본 취지가 같은 만큼 여야 간 원만한 합의가 도출될 것으로 보인다. 정 의원은 통화에서 "2주 이내 법률전문가인 법원행정처와 법무부가 합의안을 마련하면, 그때 이를 중심으로 논의하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양육 의무를 다하지 않은 부모의 재산상속으로 인해 더 이상의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결격 사유냐, 상실 사유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