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아닌 색깔론? 내년 총선 앞두고 지지층 결집 노렸나
‘수도권 위기론’ 이념 공세? 중도층 떠난다
육군사관학교 내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을 놓고 여야 정치권이 뜨거운 논쟁을 벌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여권 내부에서도 홍 장군 흉상 이전에 부담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28일 국민의힘 의원 연찬회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 /뉴시스 |
[더팩트ㅣ설상미 기자] 국방부의 육군사관학교 내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에 정부·여당이 힘을 실어주면서, 여권 내에서도 부담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이념 강조’ 행보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지층 결집을 노린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인 가운데, 중도층 확장에는 '악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야당에서는 때아닌 색깔론을 통한 ‘국민 갈라치기’라며 윤석열 정부를 비판했다.
국방부의 육군사관학교 교내 홍 장군 흉상 이전 검토 발표로 정치권 내 이념 논쟁이 뜨겁다. 국방부는 지난 28일 "공산주의 이력이 있는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육사에 설치해 기념하는 것은 육사의 정체성을 고려 시 적절하지 않다"라며 "홍 장군은 1921년 6월 러시아공산당 극동공화국 군대가 자유시에 있던 독립군을 몰살시켰던 자유시 참변과 연관돼 있다는 의혹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방부가 홍 장군 이력 등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계속되면서, 추진 배경에 의문이 따른다. 국방부 전하규 대변인은 지난 29일 "지금 역사적인 사실관계에 대한 입증 또는 학문적인 어떤 논의, 검토 이런 것에서 (관련 자료를) 드린 것은 아니다"고 했다. 사실상 흉상 이전에 따른 근거가 부족하다는 점을 국방부 스스로 자인한 셈이다.
학계에서도 홍 장군의 자유시 참변 가담 의혹에 역사적 근거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자유시 참변 학문 권위자로 꼽히는 윤상원 전북대 사학과 교수는 홍 장군의 자유시 참변 재판위원 활동에 "독립군의 어른인 홍 장군이 재판에 회부된 독립군 부대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판관으로 참석한 것이라고 본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국회 국방위 관계자는 "국방부가 윤석열 정부 기조에 따른 반공 이념을 과하게 관철시키려다, 논리가 빈약해 말을 번복하는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여당에서는 윤 대통령의 연이은 ‘이념 강조’에 뒤따라가는 기류가 감지된다. 한기호 국회 국방위원장은 "육사에 세울 때도 육사 교수들이 굉장히 안 된다고 이야기를 했지만 문재인 정부 때 반영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그런 분을 육사에 모신다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28일 국민의힘 연찬회에서 "제일 중요한 게 이념"이라며 "철 지난 이념이 아니라 나라를 제대로 끌어갈 그런 철학이 바로 이념"이라고 강조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9일 대전현충원을 찾아 홍범도 장군 묘역을 참배했다. /최영규 기자 |
반면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가 이념 전쟁으로 국민 간 대결 양상을 부추긴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소영 원내대변인은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힘을 합쳐 민생을 챙겨도 모자랄 판에 왜 이렇게 (국민을) 좌우로 갈라 통합을 저해하는 행보를 보이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같은 정부의 노선에 여권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통화에서 "이념 공세에 집중하면 민생이 시급한 국민들이 봤을 때는 ‘한가한 소리’나 하고 있는 것"이라며 "TK(대구경북) 지역 내 보수 결집에는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수도권은 중도 싸움인데, 엎치락뒤치락하는 지역구에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상병 평론가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보수층을 결집하고, 정기국회에서 이념 문제로 공세를 펴려는 의도로 보인다"라며 "윤석열 정부가 사실상 이념 전쟁을 선포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박 평론가는 "총선 구도에 윤 정부는 자유민주주의 세력이고,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전체주의 세력, 공산당 세력이라고 하는 사실을 명확하게 해서 전선을 격화시키고 있는 것"이라며 "지지층 결집에 이념 문제가 좋을지 몰라도, 중도층 확장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전략"이라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