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찬 대표 "탈북민 부모 경제적 불안정, 자녀 대까지 이어져"
"반드시 올 통일…'통일형 국제학교' 설립이 꿈"
김주찬 위로재단 대표는 "남북이 서로가 지닌 정체성과 문화, 사고방식,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 등을 한쪽으로 '동화' 아닌 서로 '융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특히 "준비되지 않은 통일은 오히려 비극"이라고 강조했다. / 남용희 기자 |
[더팩트ㅣ조채원 기자] "통일사회는 다문화 수용성과 다양성에 대한 존중을 넓히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김주찬 위로재단 대표는 지난 18일 <더팩트>와의 인터뷰에서 "통일은 어떤 '결과'가 아니라 지금부터를 통일의 '과정'으로 보고 가야 한다"며 "남북이 서로가 지닌 정체성과 문화, 사고방식,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 등을 한쪽으로 '동화' 아닌 서로 '융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융화'하려면 같은 시대를 살 사람들이 어울리고 부딪혀 봐야 한다"며 "준비되지 않은 통일은 오히려 비극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탈북 후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거쳐 연세대학교에서 신학, 대학원에서 심리상담을 전공한 김 대표. 그는 2021년부터 통일부 산하 비영리 공익법인을 설립해 탈북민의 경제적 안정을 돕는 일을 맡고 있다. 법인 이름 '위로'는 우리(WE·위)가 함께 가는 길(路·로)이자 '따뜻한 말이나 행동으로 괴로움을 덜어 주거나 슬픔을 달랜다'는 위로(慰勞)의 뜻을 담고 있다.
김포시에 위치한 '위로'에서 운영하는 취업 교육, 창업 컨설팅 등은 모두 경제적 안정을 통해 '다음 세대를 준비'하기 위함이다. "탈북민 부모가 안정적이지 않으면 2세들도 안정될 수 없는 구조에 놓여 있어요. 부모들이 처한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먹고 사는 일', 경제적 불안정성인거죠. 여러가지 일을 하는 것 같지만 궁극적으론 탈북민 2세들을 잘 교육하고 양육할 수 있도록 부모들의 경제적·심리적 장애물을 제거하는 일을 돕는 겁니다."
2018년 시작해 잠시 중단했던 '통일형 유소년 축구교실'도 최근 다시 열었다는 김 대표. 탈북·다문화·남한 가정이라는 다양한 배경의 아이들이 축구를 매개로 통일을 간접 경험하게 하는 게 목표다. 최근 통일 정책 변화로 정부·지자체 차원의 지원이 어려워져 우선 자체 예산으로 운영하고 있다. 일단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한반도 정세와 무관하게 '다양한 정체성을 이들이라도 함께 어울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기성 세대들은 이념에서 자유롭지 못한 부분들이 있지만 아이들은 정말 쉽게 친해져요. 서로를 얼굴을 맞대다 보면 부모들끼리도 북한에 대한 거리감이나 선입견 없이 신뢰관계를 쌓아가는 모습들을 볼 수 있어요. 다른 건 이상한 게 아니란 걸 인정하며 같이 살아가는 게 결국 통일 아닐까요."
8~11세를 대상으로 40여명 규모로 운영되는 유소년 축구교실 '위로FC'는 참가자들에게 별도의 비용을 받지 않는다. 김주찬 대표는 "축구교실 운영을 지속하기 위해 취지에 공감하는, 공식 후원사를 모집하고 있다"고 말했다. / 위로재단 제공 |
1986년생인 김 대표는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났다. 일상적인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1998년 처음 탈북했다. 중국 지린성 옌지, 랴오닝성 단둥 등에서 5년을 거주한 그는 한국으로 향하다 라오스에서 잡혀 다시 북송됐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또 넘겨 간신히 한국에 입국했던 2004년, 그의 나이 18살이었다.
대안학교를 다니며 1년 6개월 만에 초중고 검정고시를 통과한 그는 신학과에 진학한다. 안 그래도 치열한 남한의 경쟁사회, 내 몸 하나 잘 먹고 잘 사는 데에만 열중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15년 전 쯤 미국 워싱턴DC 홀로코스트 기념관에서 '기억하라, 절대 잊지 마라(Remever, never forget)'는 문구를 봤어요. 북한 내부는 정말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북한 사람들도 남한에 대한 동경과 이해도도 높아지고 있는데 막상 남한 사람들은 북한에 관심 자체가 없어요. 이렇게 통일이 됐다간 정말 큰일이란 들더라고요. 빠르게 변화하는 북한의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탈북민이자 남한 정착에 경험을 갖고 있는 제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 대표는 탈북민을 대상으로 전자기기 수리 교육, 소규모 무인 편의점과 카페 창업 교육·컨설팅을 직접 진행한다. 전자기기 사용자를 '찾아가 수리하는' 사업인 달수(달리는 수리점)등은 창업 초기자본을 갖추기 어려운 탈북민들이 정기적 수입을 창출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서비스업 종사를 위한 자격증은 갖췄지만 컴플레인 대처 능력 등에 취약한 이들을 위한 '실전형 교육' 프로그램도 있다. "작년부턴 남북한 청년들이 전자제품 수리기술을 같이 배우고 있어요. 같이 1년 간 교육을 받으면 저절로 친해지고 창업도 같이 하게 되겠죠. 그 과정에서 '다른 건 이상한 게 아니다'라는 걸 인정할 수 있고 서로 보완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어요. 자연스럽게 통일 준비 과정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김주찬 위로재단 대표는 18일 <더팩트>와의 인터뷰에서 "개인의 자유를 박탈하고 인권을 무시하는 북한 정권은 결국 무너져야 하고, 무너질 가능성도 높다고 본다"고 말했다. / 남용희 기자 |
두 아이 아빠로 어느덧 '남한 생활' 20년차인 그는 탈북민 정착지원 정책에 대해서도 쓴소리했다. '현장에서 보면 지금 당장 필요한 것보다는 현실과 괴리돼있는 정책들이 많다'면서다. "탈북민들의 극단적 선택이 문제가 되면 정부에서는 전문 심리 상담 인력을 늘린다거나 '탈북민 커뮤니티 네트워크 강화' 같은 대책을 내놓곤 해요. 그래봐야 상담은 받는 사람만 더 받지 당장 먹고살기 힘들 정도로 삶이 불안정한 사람들에겐 별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하면 탈북민들이 지역사회에 잘 스며들어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를 집중적으로 고민해야지, 탈북민 '끼리' 소외되는 사람이 없게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김 대표의 꿈은 통일 시대를 이끌어 갈 인재를 양성하는 학교, '통일형 국제학교' 설립이다.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아이들이 넓은 세계관과 국제적 관점에서 통일을 이해하고 준비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자녀의 성공을 위해 부모가 엄청난 관심과 비용을 들이는 사회죠. 통일은 굉장히 갑자기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자녀를 공부로 상위 1~2%에 들게하는 것 보다 통일시대를 대비할 수 있는 안목을 키워주는 게 훨씬 더 경쟁력이 될 거라고 봐요. 작게 시작하더라도 가능한 많은 시민들의 마음을 모으고 동참시키는 게 올해 제 큰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