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말하지 않으면 평화는 오지 않는다"
입력: 2023.08.24 00:00 / 수정: 2023.08.24 00:00

'정전 70년 한반도 평화행동' 시민단체 인터뷰
"평화 위한 가장 현실적인 방안은 대화·협력"


남북관계가 악화하며 한반도 긴장 수위는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윤석열 정부는 북한과 대화보다는 한미일 확장억제력 강화를 북한 핵·미사일 대응 정책의 핵심으로 압박하고 있다. 정부의 대북정책에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정전 70년 한반도 평화대회 참가자들이 지난달 22일 서울 광화문 네거리를 행진하는 모습. /정전 70년 한반도 평화행동 제공
남북관계가 악화하며 한반도 긴장 수위는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윤석열 정부는 북한과 대화보다는 한미일 확장억제력 강화를 북한 핵·미사일 대응 정책의 핵심으로 압박하고 있다. 정부의 대북정책에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정전 70년 한반도 평화대회 참가자들이 지난달 22일 서울 광화문 네거리를 행진하는 모습. /정전 70년 한반도 평화행동 제공

[더팩트ㅣ조채원 기자] 한반도 긴장 수위가 유례 없이 높다. 남북관계가 극도로 악화한 탓이다. 북한이 21일 시작한 한미연합훈련 기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 다양한 도발을 준비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언제든 전쟁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공포와 불안. 끝 모를 군비경쟁과 군사적 위협의 원인이자 결과물이다. 윤석열 정부는 한미일 확장억제력 강화를 북한 핵·미사일 대응 정책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무력에 맞선 무력의 끝이 '평화'가 될 수 있을까.

의구심을 표하는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있다. 올해 한국전쟁 정전 70년을 맞아 한반도 종전 평화 캠페인과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가 시작한 '정전 70년 한반도 평화행동'(이하 평화행동)이다. 이들은 "수십 년 동안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취해온 대북 경제 제재, 핵우산 제공 정책과 재래식 군비의 강화 등은 한반도 갈등 해결에 전혀 효과적이지 못했다"며 "한반도 평화를 위한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제재와 압박이 아니라 대화와 협력"이라고 강조한다. "2018년 남북미는 한미연합군사연습과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중단이라는 상호 위협 감소 조치를 통해 대화의 문을 열었고, 남북 군사 분야 합의를 통해 군사 충돌을 멈출 수 있었다"면서다.

황수영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팀장은 지난 16일 <더팩트>와의 인터뷰에서 평화행동에 대해 "'평화를 말해야 평화로 나아갈 수 있다'는 사회적인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캠페인이 출범했다"고 설명했다. 한반도 군사적 긴장감 고조의 근본 원인을 "평화 협정이 체결되지 않아 한반도와 그 주변국이 다시 전쟁할 준비를 해야 하는 체제를 유지하는 것"으로 짚으면서다. 황 팀장은 "한반도에서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선 안 된다"며 "대화와 협상이라는 평화적 해법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모으고 국제사회에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 정부 기조가 '힘에 의한 평화'인 만큼 대화 주제는 '무엇이 더 전쟁을 막는 데 현실적인 방안인가'에 집중됐다.

황수영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팀장. / 참여연대 제공
황수영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팀장. / 참여연대 제공

다음은 황 팀장과의 일문일답.

-북핵문제가 먼저 해결돼야 하는 게 아닌가.

한반도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북한의 일방적인 굴복이 아니라 상호 신뢰구축에서 나온다. 제재와 군사적 압박으로 북한의 핵 포기를 이끌어내겠다는 정책은 지난 수십년 동안 실패했다. 한국과 미국의 압도적 군사력과 압박이 지속할수록 북한의 핵 능력은 커져왔다. '힘에 의한 평화'는 결국 전쟁 위험과 핵 군비 경쟁의 악순환만을 불러올 뿐이다.

북한이 체제 안전을 위해 핵무기를 개발한 것이라고 한다면 북한의 불안을 해소할 출구를 마련해줘야 대화가 진행될 수 있지 않겠나. 대화 여건을 만들어 내려면 우선 한미연합 군사연습은 멈춰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아무것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

평화행동이 받고 있는 서명 내용. 서명운동을 시작한 지 1120일 만인 21일 17시 기준 서명인 수는 18만1천여명에 달했다. / 평화행동 홈페이지 캡처
평화행동이 받고 있는 서명 내용. 서명운동을 시작한 지 1120일 만인 21일 17시 기준 서명인 수는 18만1천여명에 달했다. / 평화행동 홈페이지 캡처

-거리서명에 나서보면 시민들 반응이 어떤가.​

사실 거리에서 서명을 받다 보면 될 것 같은 일에 동참하고 싶어하는 분위기를 느낀다. '평화협정' 체결을 비현실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단 얘기다. 그렇지만 언제까지 전쟁의 위협에 시달리고 막대한 국방비를 지출하고, 계속 18개월씩 군대 가면서 살 순 없는 노릇 아닌가. 남북의 강대강 대치가 단지 한반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동북아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고, 전 세계는 한반도의 평화를 원한다는 목소리를 계속 모을 필요가 있는 거다. 100만이란 목표치에는 미치지 못한 건 사실이다. 코로나19 기간동안 평화 협정과 관련해 계획했던 대형 집회를 하지 못했고 강제동원 문제나 후쿠시마 오염수 등의 현안에 더 집중해서 그런 탓도 있다. 그러나 17만명의 서명을 받은 것도 유례가 없는 일이다.

-남북 대화·교류협력을 우선시한 문재인 정부도 결과적으론 북핵 미사일 고도화를 막지 못했지 않나.

문재인 정부도 방법론적으로 윤석열 정부와 크게 다를 게 없었다고 보고 있다. '판문점 선언(2018. 4. 27)'과 '평양공동선언(2018. 9. 19)'에서 합의한 군사적 긴장 완화, 군사적 신뢰 구축에 따른 단계적 군축 등을 제대로 이행할 의지를 보였느냐는 점에서다. 북한이 핵·미사일 모라토리엄(2018년 4월 북한이 자발적으로 핵실험장 폐기와 함께 핵실험 및 ICBM 시험발사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것)을 유지할 동안 국방력 강화는 꾸준히 이뤄졌다. (2018~2021년 국방예산 평균 증가율은 7.0%로 2014~2018년 4년간 평균 4.1%보다 2.9%포인트 더 높다) 결국 남북정상이 합의한 사항인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재개도 이뤄내지 못했고 중단됐던 한미 연합연습은 재개됐다. 다만 접경 지역 지방자치단체장들이나 주민들은 적어도 군사합의 이후엔 무력 충돌에 대한 불안감은 없었다는 데 입을 모은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북한과 그들을 추종하는 반국가 세력들이 종전선언과 연계해 유엔사령부 해체를 끊임없이 주장한다"고 발언했는데.

종전선언은 그 자체는 우리 단체가 주장하는 바는 아니다. 다만 '더 이상 한반도에서 전쟁을 중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남북 합의든 남북미 정상회담의 결과물이든 평화협정으로 가는 길에 종전선언이 필요하다면 할 수 있는 것이고, 평화협정의 내용 중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이라 본다. 문재인 정부는 종전선언을 하더라도 유엔사의 지위나 주한미군 철수 등에 전혀 영향이 없다고 선을 그었고 북측도 주한미군 문제와 연계하지 않겠다고 했다. 현 정부가 무엇을 근거로 하는 이야긴지 모르겠다.

황수영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팀장(가운데)이 지난달 27일 정전 70년 국제 심포지엄 : 휴전에서 평화로에서 발표하고 있다. / 참여연대 제공
황수영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팀장(가운데)이 지난달 27일 '정전 70년 국제 심포지엄 : 휴전에서 평화로'에서 발표하고 있다. / 참여연대 제공

-'평화협정'은 국제사회에서 공감대를 이끌어 내고 있다고 보나.

미국 하원의회의 '한반도 평화법안'을 들 수 있겠다. 2021년에 발의돼 민주·공화당 의원 46명의 지지 서명을 받았지만 회기 만료와 함께 폐기됐는데 지난 3월 재발의됐다. 법안은 △ 판문점 선언 지지 △ 한국전쟁 종식을 위한 외교추구 △ 평화협정 달성을 위한 국무부 차원의 로드맵 마련 △ 대북한 여행금지 조치에 대한 전면 재검토 △ 북미 간 연락사무소 설치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한미 시민단체의 긴밀한 협력, 미국 하원의원들의 지지서명을 받기 위한 한인 유권자들의 노력, 국회 의원외교 등의 결과물이다. 사실 미국에선 6·25 전쟁 자체를 모르는 사람도 많고 북한의 ICBM 발사도 뉴스에 나올까 말까다. 아직 법안이 통과된 건 아니지만 한반도 평화를 위해 미국이 적극적 행동을 해야 한다는 데 이만큼 공감대를 이끌어 낸 건 큰 진전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과 바라는 점이 있다면.

오는 9월엔 제78차 유엔총회가, 10월 초부터는 군축과 국제안보 관련 의제를 토의하는 1위원회가 시작된다. 그간 모은 한반도 평화선언에 대한 전 세계 서명과 각계의 지지 선언을 모아 남북미중을 포함한 한국전쟁 관련국 정부와 유엔에 전달될 예정이다. 각국 정부가 전쟁을 예방하고 대화의 장을 열 수 있도록 적극적 역할을 촉구하기 위함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영논리를 벗어나 '남북이 평화체제를 원한다'는 하나의 목소리를 모아야 할 필요가 있다. 평화 싫고 전쟁 좋다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국제사회가 '한국인들이 진짜 평화를 원하는구나'를 알려면 입법기관에서 뭔가 나와야 하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없는 수준이다. 시·구의회에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관련 결의안이 통과한 것, 정전 70주년을 맞아 과반야당이 종전선언과 한반도 평화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당론으로 채택해 발의한 것에 의의를 둬야 하는 정도다. 종교계가 성명을 내고 정부와 시민단체가 유엔가서 말을 하면 뭘 하나. 평화를 말하지 않으면 평화는 오지 않는다.

chaelog@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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