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 미뤄 폐기 수두룩…유명무실 '국회동의청원제'
입력: 2023.08.07 00:00 / 수정: 2023.08.07 00:00

21대 국회 국민동의청원 145건 중 채택 '0건'
시민단체 "국회, 청원심사의무 방기…청원권 침해"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1대 국회에 접수된 청원은 2일 기준 모두 145건이다. 이 가운데 채택된 청원은 한 건도 없다. /더팩트 DB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1대 국회에 접수된 청원은 2일 기준 모두 145건이다. 이 가운데 채택된 청원은 한 건도 없다. /더팩트 DB

[더팩트ㅣ신진환 기자] "교사가 정상적인 '수업'을 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정당한 교육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학부모의 갑질, 학생의 폭력과 폭언 등에서 자유롭도록 해주십시오. 실질적으로 교사를 학부모의 악성 민원, 학생의 폭언과 폭행에 대응할 수 있도록 조처해 주십시오."

'학부모의 악성 민원 및 학생 폭언, 폭행에 대응할 수 있는 제도 및 법 제정에 관한 청원'이 5만 명의 동의를 얻어 지난달 24일 소관 상임위원회(교육위원회)로 넘겨졌다. 이 청원을 제기한 청원인은 학부모의 악성 민원 등 갑질을 방지할 수 있도록 관련 법률 개정을 요청했다. 교사들의 '교권 확립' 요구에 불을 지핀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이 계기로 보인다.

과연 이 청원은 국정에 반영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능성은 크지 않다. 다른 청원들도 마찬가지다.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1대 국회에 접수된 청원은 2일 기준 모두 145건에 달하는데, 이 가운데 채택된 청원은 한 건도 없기 때문이다. 본회의에 부의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된 '본회의 불부의' 24건, '청원인의 철회' 1건을 제외한 120건은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3년이 넘도록 먼지만 쌓인 청원도 있다. 21대 국회 임기는 1년도 남지 않았다.

이전 국회에서도 채택 건수는 한 자릿수에 그친다. 13대(13건)와 14대(11건) 이후 △15대 3건 △16대 4건 △17대 4건 △18대 3건 △19대 2건 △20대 4건이다. 청원 폐기율도 높아지는 추세다. △13대 35.4% △14대 57.1% △15대 66.7% △16대 55.7% △17대 73.1% △18대 74.6% △19대 78%였다. 국민동의청원제가 신설된 20대 국회의 폐기율은 80.7%로 정점을 찍었다. 청원 대부분이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청원 요건을 충족한 국민동의청원은 30일 이내 5만 명의 동의를 얻으면 정식으로 국회에 접수된다. 이후 국회법에 의해 청원 내용에 따라 해당 위원회로 회부되며, 위원회는 청원이 회부된 날부터 '90일 이내'에 심사 결과를 의장에게 보고해야 한다. 다만, 특별한 사유로 그 기간 내에 심사를 마치지 못했을 때는 1회에 한해 최장 60일까지 심사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민선영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간사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국회는 장기간 심사가 필요한 사안을 신중히 심사할 수 있도록 예외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청원심사의무를 방기하며 청원인들의 청원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청원이 상임위에 회부된 날부터 일정 기간 안에 심사를 진행하고, 청원인 등을 회의장에 불러 청원 취지를 직접 청취하는 과정을 거쳐 청원인과 찬성자들에게 (그 결과를) 공개하는 것이 국민동의청원제도의 완결"이라고 강조했다.

참여연대와 탈석탄법 제정을 위한 시민사회연대는 지난 6월 국회가 청원 심사를 무기한 미룰 수 있게 하는 국회법 제125조 제6항과 국회가 적법하게 접수된 청원을 심사하지 않는 심사부작위가 헌법이 보장하는 청원권을 침해하여 위헌임을 확인해 달라는 헌법소원을 헌법재판소에 청구했다.

국회의 청원심사가 내실 있게 이루어지지 않아, 헌법에 명시된 국민 청원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동의청원 누리집 갈무리
국회의 청원심사가 내실 있게 이루어지지 않아, 헌법에 명시된 국민 청원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동의청원 누리집 갈무리

'늑장 청원 심사'는 국회의원들의 무관심이 가장 큰 요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각 상임위에는 청원심사소위원회가 구성돼 있는데, 제대로 청원을 심사하지 않는다는 게 시민단체들의 비판이다. 한 상임위 청원심사소위 위원장은 통화에서 "국민동의청원에 대한 심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점은 국민께 송구한 부분"이라면서 "소위에서 방대한 양의 법률안을 검토·심사하는 데만 집중한 측면이 있는 듯하다. 앞으로 상임위 차원에서 청원 심사에도 노력을 쏟자고 목소리를 내겠다"고 말했다.

이미 청원심사소위 활성화를 골자로 한 법안이 발의돼 있다.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20년 7월 '국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매월 1회 이상 청원심사소위 개회 의무화가 핵심이다. 또 청원인이 위원회에 참석해 취지를 설명하도록 하고, 청원 심사 시에 현장이나 관계 기관 등에 파견하여 청원인·이해관계인 등의 진술을 듣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 법안은 계류 중이다.

이에 대해 국회 측은 검토보고서에서 "주요 위원회의 20대 국회 청원심사 실적을 보면, 위원회별로 청원 회부 및 폐기 실적의 차가 크고, 회부된 청원 건수가 가장 많은 행정안전위원회의 경우에도 평균 월 1건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개정안과 같이 전체 위원회에 대해 일괄적으로 매월 1회 이상 청원심사소위를 개회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은 위원회 운영의 효율성 측면을 고려할 때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국민동의청원의 '무더기 폐기'를 막는 내용의 법안도 소관 상임위에 머물고 있다. 윤영덕 민주당 의원이 2020년 11월 대표발의한 국회법 개정안은 5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접수된 국민동의청원은 국회의원의 임기가 만료되더라도 폐기되지 않고 차기 국회에서 계속 심사하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윤 의원은 통화에서 "의원은 임기가 있지만, 국민의 의사가 반영된 국민 입법 청원은 국회 회기와 관계없이 지속되는 게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그게 상식"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심사 과정에서는 이미 시기적으로 부합하지 않는 청원은 우선 심사가 이루어지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국회는 국민의 뜻이 모인 청원을 국회에서 정한 절차에 따라 심사를 진행하고 심사 결과를 구민에게 보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shincomb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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