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백지화→사과 전제 사업 재개→지역 주민에 "최대한 빨리" 약속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 재추진 명분쌓기에 나서는 모양새다. 원 장관이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15개 단지정보 포함 조사 결과 및 후속조치 계획을 발표 브리핑에 참석해 발언하는 모. /장윤석 인턴기자 |
[더팩트ㅣ국회=조성은 기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서울-양평 고속도로 백지화" 선언 이후 점차 사업 재개 가능성을 언급하며 명분 쌓기에 나서고 있다. 당초 '전면 백지화'를 선언했다가 사과를 전제로 한 사업 재개로 한발 물러서더니 급기야 주민 여론을 내세워 "조속한 추진"을 약속했다. 야당은 국정조사 요구서를 제출한 데 이어 대통령실 특별감찰을 요구하며 전방위적으로 압박했다.
야당은 연일 원 장관을 향한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경기도당은 1일 원 장관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발했다. 국가재정법·도로법·대도시권 광역교통관리에 관한 특별법 등 위반 혐의다. 민주당 경기도당은 지난달 13일에도 원 장관을 고발한 바 있다.
앞서 원 장관은 지난 6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가 이 사건 전에 김건희 여사의 땅이 그곳에 있다는 걸 조금이라도 인지했거나, 노선에 관여한 사실이 있다면 장관직뿐 아니라 정치생명을 걸겠다"면서 사업 백지화를 선언했다. 사전에 대통령실과 교감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아니다"라며 오직 자신의 결단임을 강조했다.
이후 지난달 12일 원 장관은 자신의 유튜브 채널 '원희룡TV'에서 '일타강사'로 나서며 "그동안은 민주당의 거짓 선동이 먹혔을지 모르겠지만 윤석열 정부, 특히 원희룡 장관하에서는 안 먹힌다"며 사업 백지화 선언이 민주당의 정치공세 탓임을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야당이 근거 없는 의혹 제기를 멈추면 사업을 즉각 재개하겠다"는 조건을 걸었다.
지난달 27일에는 양평군을 찾아 "전문가 검증과 양평군 주민 의견을 수렴해 서울-양평 고속도로의 최적 노선을 결정하겠다"면서 "고속도로를 최대한 빨리 놓겠다"고 밝혔다. '주민 여론'을 명분으로 사실상 재추진을 약속한 셈이다.
지난달 26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국회에서 열린 국회 국토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실무자와 대화하는 모습. /이새롬 기자 |
원 장관은 사업재개의 명분을 만들고 있다. 원 장관은 지난달 30일 야당에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검증위원회를 꾸려 노선을 정한 뒤 사업을 재개하자"고 제안하며 야당에 공을 넘겼다. 당초 야당의 사과를 촉구하던 강경한 태도에서 한껏 누그러진 태도다. 그러면서 사업 재추진 여부는 야당에 달렸음을 강조했다.
원 장관은 야당의 국정조사 요구에는 "국정조사까지 갈 것도 없이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7일 전에만 전문가들을 부르면 되고, 증인 선서에서 거짓말하면 처벌도 가능하다"며 "상임위를 무제한 열고 증인을 부르는 데 협조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서울-양평 고속도로는 이미 정쟁화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벗어나려면 전문가의 과학, 상임위를 통한 진실 규명, 고속도로 수혜자인 양평군민의 뜻을 최대한 모아내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 검증을 통한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 재개 절충안을 야당에 제안한 셈이다.
민주당은 바로 다음 날인 31일 "국정조사를 하자는데 검증위원회가 웬 말인가. 잔머리 굴리지 말라"고 일축했다. 앞서 검증위원회를 처음 제안한 심상정 정의당 의원도 원 장관에게 "사업 백지화에 대한 대국민 사과와 '백지화의 백지화'를 공식 선언하라"며 원 장관을 압박했다. 그는 "원 장관이 직권남용으로 가장 먼저 뿌린 정치적 오물을 걷어내라"며 "공정한 노선 검증을 위해 김건희 여사 일가의 강상면 일대 토지를 매각하라. 이를 원 장관이 윤 대통령에게 답을 받아내라"고 촉구했다.
국토부와 국민의힘도 사업 재개 가능성이 열려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국토부는 지난달 23일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 관련 자료가 담긴 온라인 사이트를 개설해 의혹 해명에 적극 나섰다. 이어 다음날(24일) 국토부 관계자는 기자간담회에서 원 장관의 사업 백지화 선언에 대해 "어떻게 보면 충격요법"이라고 의미를 축소했다. 그러면서 "의혹이 해소되면 사업을 재개하겠다고 얘기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지난달 26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 국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원희룡 국토부 장관에게 질의하는 모습. /이새롬 기자 |
이어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다음날인 25일 "정부 부처에서 국민적 관심 사안에 대해 자료를 모두 공개하고 국민의 질문에 일일이 답하겠다고 하는 건 대단히 전향적인 태도"라고 평가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여당 간사인 김정재 의원도 같은 날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오죽 답답했으면 전례 없이 타당성 조사 중간단계 관련 자료를 모두 공개했겠느냐"며 정부가 의혹 해소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 의원은 "민주당의 사과 없이 사업을 재개하지 않겠다는 게 기존 입장 아니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의혹이 해소되고 (민주당이) 투명성과 공개성을 인정한다면 그 자체가 사과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멈춰있는 서울-양평 고속도로가 하루속히 재개될 수 있도록, 거짓과 선동의 구시대적 정쟁을 끝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사업 백지화의 원인이 야당에 있음을 시사했다.
원 장관이 사업 백지화에서 사업 재추진으로 방향을 틀면서 '말 바꾸기'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지만 동시에 목적을 달성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원 장관은 처음부터 백지화할 생각이 없었을 것"이라며 "백지화 선언으로 아젠다가 (김 여사 일가 의혹에서) 재추진 여부로 틀어졌다"고 설명했다.
다만 여론은 원 장관에게 불리하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여론조사 꽃'이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1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7월 5주 차(7월 28~29일) 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응답률 19.1%)에 따르면 "원 장관의 '변경된 종점에 대통령 배우자 소유의 땅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주장을 신뢰하느냐"는 질문에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74.0%에 달했다. '신뢰한다'는 응답은 20.4%에 불과했다.
보수층에서도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55.7%로 과반에 달했으나 신뢰한다'는 응답은 39.4%에 그쳤다. 모든 권역과 연령대, 남녀 모두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높았으나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만 '신뢰한다'는 응답이 52.5%로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38.8%로 나타났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