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참여토론' 중복투표·조직적 독려 문제제기 반박
국민참여토론 4차 주제 '자동차 배기량 기준 개선' 선정
대통령실은 26일 심야 시간대나 도로 점거 방식 집회 및 시위를 제한하는 방향의 법령 개정을 정부에 권고했다고 밝혔다. 지난 5월 윤석열 대통령의 '불법 집회 엄단' 선언 이후 집시법 개정 움직임의 일환이다. 대통령실이 국민 여론을 활용해 정부 정책 추진의 당위성을 얻으려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날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집회·시위 제도 개선 관련 국민참여토론 결과 브리핑하고 있는 강승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 /뉴시스 |
[더팩트ㅣ용산=박숙현 기자] 대통령실은 26일 출퇴근·심야 시간대 또는 도로나 대중교통을 점거하는 방식의 집회·시위를 제한하고 집회·시위 중 소음 단속기준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및 시행령 개정과 후속 조치를 이행할 것을 국무조정실과 경찰청에 권고했다. 집회 시간대 제한과 소음 기준 강화 등 권고안 다수가 법 개정이 필요해 정치권 공방이 예상된다.
강승규 시민사회수석은 이날 오전 브리핑에서 "대통령실 국민제안심사위원회는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바탕으로 국무조정실 공공질서 확립 TF(태스크포스)와 경찰청에 '국민불편 해소를 위한 집회‧시위 제도 개선'을 권고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의 권고안은 △출·퇴근시간 대중교통 이용방해 및 주요도로 점거 집회 및 시위 △확성기 등을 활용한 지나친 소음 집회 및 시위 △심야·새벽 집회 △주거지역·학교 인근 집회 등에 따른 피해를 방지할 수 있도록 관계 법령 개정과 그에 따른 후속조치를 위한 이행방안을 마련하라는 내용이 담겼다.
아울러 불법 집회·시위에 대한 벌칙 규정 미비점을 보완하는 등 단속의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도 검토할 것도 권고했다.
이는 국민제안심사위가 '집회·시위 요건 및 제재 강화' 방안을 국민 토론 세 번째 주제로 선정하고, 이달 3일까지 3주간 국민참여토론을 실시한 결과를 반영한 것이라고 대통령실은 전했다. 토론은 국민제안 누리집에서 본인인증 후 추천, 비추천을 투표하거나 댓글로 의견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집시법 제도 개선과 관련해 추천 12만9416건(70.8%), 비추천 5만3288건(29.1%)으로 최종 집계됐고, 게시판 댓글 토론에서는 13만여 건의 의견 중 82%(10만 8000여건)가 집회 및 시위 제도 개선 필요성 찬성을, 12%(1만 5000여건)는 집회‧시위 요건 현행 유지 또는 완화 의견을 냈다.
정부·여당은 이미 집시법 제도 개선에 착수한 상태다. 지난 5월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서울 도심에서 1박2일 '노숙집회'를 벌인 것이 기점이 됐다. 윤 대통령은 이와 관련해 국무회의에서 "그 어떤 불법 행위도 이를 방치 외면하거나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집회 제도 개선을 선전포고했고, 직후 당정협의회에서 불법 집회 전력이 있는 단체가 주최하거나 출퇴근 시간대 도심 주요 도로에서 개최하는 집회를 금지·제한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대통령실은 이번 권고안을 통해 집시법 제도 개선의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이에 대해 관계자는 "저희가 제안한 건 오늘 발표한 내용이 전부"라며 "구체적인 법이나 시행령 개정 사항은 관련 부처에서 결정할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주요 도로 집회 제한'은 시행령 개정으로 가능해 곧 조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집시법 시행령에 따르면 관할경찰서장은 대통령령으로 정한 주요 도시의 주요 도로에 대해 교통질서를 이유로 집회·시위를 금지·제한할 수 있다. 그러나 집회 시간대 제한이나 집회 소음 제재 기준 설정은 법 개정이 필요해 여소야대 상황에서 당장은 추진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대통령실은 '국민참여토론'이 정부의 정책 추진을 뒷받침하는 도구로 변질된 게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국민참여토론은 대통령실 국민제안 누리집에서 접수된 여러 제도 개선 제안 중 △생활공감도 △국민적 관심도 △적시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국민제안심사위에서 선정한다. 그러나 접수 안건과 선정 절차, 위원회 명단과 활동 내역은 모두 비공개하고 있어 대통령실 의중에 따라 중복투표, 조직적 독려 등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이에 대해 강 수석은 "본인인증을 거치고 있는 만큼 투표 결과에 영향을 미칠만한 대규모 어뷰징은 불가능하다"면서 "누구나 토론에 참여할 수 있는 만큼, 사전에 특정한 결론을 염두에 두고 토론을 진행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도 밝힌다. 특정 세력만 토론 과정에 참여한다고 언급하는 것은 순수하게 참여해준 많은 국민 의견을 평가절하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한편 대통령실은 네 번째 진행될 국민참여토론 주제로 '자동차세 등 각종 행정상 자동차 배기량 기준' 개선방안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강 수석은 "현재 자동차세나 기초생활수급자격자를 결정할 때, 자동차의 재산가치를 배기량에 따라 산정하고 있다. 그러나 배기량 기준으로 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있다"면서 "재산세나 자동차세나 기초생활수급자 자격결정 기준을 자동차 가격 기준 등으로 변경하는 방안에 대해 국민 토론을 통해 의견을 들을 예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