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사교육비 증가폭 역대 최대
'킬러 문항' 출제 배경, 복합 요인 작용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5일 이른바 '수능 킬러 문항 배제'를 지시하면서 학생과 학부모, 교육계가 예의주시하고 있다. 지난 1월 5일 교육부-문화체육관광부 업무보고에서 발언하는 윤 대통령. /뉴시스 |
[더팩트ㅣ박숙현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5일 수능 출제와 관련해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의 문제는 수능출제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구체적으로 지시한 후 교육계가 들썩였다. 6월 모의평가 난이도 조절에 실패했다는 이유로 수능 담당 교육부 국장은 경질되고, 감사 계획이 알려지자 출제기관인 한국교육평과정평가원 원장이 전격 사임했다.
교육부는 이른바 '킬러문항(초고난도 문제) 배제'를 골자로 하는 '사교육비 경감 대책'을 부랴부랴 내놓았다. 이에 대해 야권은 인위적인 '킬러 문항 배제'는 사교육비 절감 효과는커녕 수능을 5개월 남겨두고 학생과 학부모에 큰 혼란을 야기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수능 출제 방향과 사교육 관계'를 둘러싼 2가지 쟁점을 살펴봤다.
[검증 방법] 한국교육과정평가원 2011~2024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시행기본계획', 통계청 '사교육비조사 결과', 대통령실 브리핑 및 교육부 '사교육비 경감 대책' 자료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윤 대통령의 발언이 '즉흥적이었다'는 비판에 대해 반박하면서 이전 정부에서도 '공교육 내 출제'가 기본 원칙이었다고 주장했다. 28일 오전 경기 고양시 EBS 본사를 방해 수능 강의 제작 현장을 살펴보고 있는 이 장관. /뉴시스 |
◆'킬러 문항 배제', 역대 정부도? 文 정부 수능 출제 원칙과 동일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언론 인터뷰와 브리핑 등을 통해 거듭 '킬러 문항 배제'는 윤석열 정부 이전부터 수년 간 견지해온 수능 출제 원칙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 장관은 지난 22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킬러 문항은 배제하고 공교육 과정 내 출제한다는 원칙은) 수년 간 수능 기본계획 매년 발표할 때도 다 들어가 있던 내용"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이 수능을 5개월 남겨두고 '공교육 과정 내 수능 출제'라는 '즉흥' 발언을 해 교육계에 혼란을 초래한다고 비판받자, 윤 대통령의 언급은 갑작스러운 지시가 아니며, 이전 정부부터 추진해온 원론적인 원칙을 재확인한 차원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공교육 과정 내 수능 출제' 원칙을 이전 정부부터 유지했다는 주장은 사실로 판단된다. 윤석열 정부가 지난 3월 28일 발표한 '2024학년도 시행기본계획'과 문재인 정부 때인 지난해 3월 발표한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시행기본계획'을 비교해본 결과, 두 기본계획의 시험의 성격과 목적, 출제 원칙의 내용이 모두 동일했다.
구체적으로 수능의 목적에 대해 "대학교육에 필요한 수학 능력을 측정하고,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내용과 수준에 맞추어 출제해 고등학교 교육의 정상화에 기여하며, 개별 교과의 특성을 바탕으로 신뢰도와 타당도를 갖춘 시험으로서 공정성과 객관성이 높은 대입 전형자료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명시했다.
또 "학교 교육의 정상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내용과 수준에 맞추는 것"과 "기본 개념과 원리에 충실하고 추리, 분석, 종합, 평가 등의 사고력을 측정하도록 출제하는 것"이라는 2가지 출제 원칙을 제시했다.
2018에는 영어 영역을, 2022년에는 한국사, 제2외국어 및 한문 영역까지 절대평가로 적용하는 등 영역별 출제 방향에 변동은 있었지만,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내용과 수준에 맞추어 학교교육의 정상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한다'는 출제 원칙은 이명박 정부 때 발표된 2011학년도 수능기본계획 때부터 일관성을 보였다.
다만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2011학년도 기본계획'에는 "교과내용의 중요도를 고려하되, 점수 분포가 고르게 나올 수 있도록 쉬운 문항, 중간 정도의 문항, 어려운 문항을 균형 있게 출제한다"는 내용을, 2012학년도와 2013학년도 기본계획에는 "수능시험 난이도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예측가능성을 제고하기 위해 영역별 만점자가 1% 수준이 되도록 최대한 노력한다"는 내용을 명시해 '변별력 확보'에 주안점을 뒀다.
윤 대통령은 평가원에서 밝힌 기본 계획의 출제 기준이 이전 정부 때처럼 원론적인 원칙에 그치지 않고 준수해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윤 대통령의 '공정 수능' 관련 지시가 교육부의 '대통령 지시사항 이행 현황' 등 기록물로는 남아 있지 않고, 구두로만 전달된 것으로 파악되면서 '즉흥 발언' 논란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야권은 '킬링 문항' 기준 등이 모호하다면서 정부의 '사교육비 경감 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지난 21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대통령과 이주호 교육부 장관의 수능 발언에 대해 사과 및 사태 수습을 촉구하고 있는 민주당 국회 교육위원회 의원들. /뉴시스 |
◆문재인 정부 때 사교육비 폭등? 1인당 사교육비 증가 폭 최대
윤석열 정부가 '수능 킬러 문항 배제'를 골자로 사교육 경감 대책을 내놓은 데는 최근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 사교육비가 배경으로 꼽힌다. 특히 여권은 문재인 정부 시기 사교육비가 폭등했다며 야권과 이른바 '사교육 카르텔'과의 유착 가능성까지 제기하고 있다. 서병수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27일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문재인 정부 시기 사교육비가 폭등했는데, 사교육을 방치하고 공교육을 죽인 결과 아니겠는가"라며 "언론 보도를 보면 반미를 외쳤던 운동권 출신들이 학원 시장에 뛰어들었다고 하는데, 이에 문재인 정부가 사교육시장을 손대지 못했던 것인지 의심할 수 있겠다"고 주장했다.
통계가 처음 집계된 2007년 이래 역대 정부의 초·중·고교생 1인당 평균 사교육비 추이를 살펴보면, 이명박 정부 때는 2008년 23만3000원에서 임기 마지막 해인 2012년 23만6000원으로 소폭 올랐다. 박근혜 정부 때는 2013년 23만9000원에서 2016년 25만6000원으로 7%의 증가 폭을 기록했다. 조사 대상이 되는 사교육비는 초·중·고교생이 학교 정규교육 과정 외에 개인적으로 지출하는 학원비·과외비·인터넷 강의비 등을 의미한다.
통계청이 지난 3월 내놓은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사교육비 총액은 26조 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초·중·고교생 1인당 평균 사교육비는 문재인 정부 출범 첫해인 2017년 27만2000원에서 2022년 41만 원으로 50.7% 급증했다. 코로나19가 발생한 2020년에는 평균 30만2000원으로 다소 줄었다가 2021년 평균 36만7000원으로 늘었다.
역대 정부의 사교육비 추이를 살펴본 결과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시기 사교육비가 급증했다는 주장은 사실로 판단된다.
정부는 사교육비 경감 대책의 일환으로 '사교육 카르텔 엄단' 방침을 밝혔다. 사진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모습./뉴시스 |
대통령실과 정부는 수능에서 킬러문항이 계속 출제되는 가장 큰 원인으로 '사교육 이권 카르텔'을 꼽고 이들을 엄단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그러나 교육계에선 다양한 요인을 종합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2018년 수능부터 전환된 영어 영역 절대평가 방침이나, 도입된 지 30년 지난 수능 문제의 정형화에 따라 변별력을 확보하기 위해 국어나 수학 영역의 난도가 상대적으로 상승하게 됐다는 것이다. 국내 사교육업계 대표 인사인 손주은 메가스터디 회장은 지난 27일 KBS 2TV '더라이브'에서 이명박 정부 당시 수능 문제 EBS 연계율 70% 등을 배경으로 꼽기도 했다.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김상우 연구원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현 수능은 상대평가 체제이기 때문에 대입에서 우수한 학생들을 뽑기 위해 번별력을 중요시하다 보니 킬러 문항이 나오게 됐다고 본다"라며 "과도기적인 면에서 학생들이 좀 혼란스러울 수 있겠지만 지금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