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초유의 '근로자위원 해촉'...노동계 "전례 없는 일"
국민의힘 "최저임금 과도한 인상, 소득주도성장 논리"
국민의힘에서는 내년도 최저임금을 두고 노동계가 제안한 최저임금 인상 규모를 비판하는 한편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부결된 업종별 차등 적용 안의 필요성도 거듭 강조하고 나섰다. 최승재 국민의힘 의원은 23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 적용을 주장했다. /최승재 의원실 제공 |
[더팩트ㅣ국회=조성은 기자] 내년도 최저임금 최종 법정 심의 기한이 다가오는 가운데 국민의힘에서는 내년도 최저임금을 두고 성토의 목소리가 나왔다. 노동계가 제안한 최저임금 인상 규모를 비판하는 한편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부결된 업종별 차등 적용 안의 필요성도 거듭 강조했다. 사상 초유의 근로자위원 해촉 사태까지 불거지며 최저임금을 둘러싸고 정부·여당과 노동계 간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여당 간사인 류성걸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최저임금의 과도한 인상이 자영업자 몰락, 고용 참사로 이어진다는 건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확인된 사항"이라며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노동계를 규탄했다.
류 의원은 "국세청에 따르면 2017년 2170만 원이었던 자영업자의 평균 소득이 재작년엔 1952만 원으로 크게 줄었다. 한 달 평균 162만 원 수준"이라며 "그에 비해 최저임금을 받는 근로자 임금은 하루 8시간, 주 5일 근무했을 때 191만 4000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노동계의 최저임금 인상 요구는 소득주도성장 논리와 같다"면서 "최저임금의 목적은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는 건데 과도한 인상은 오히려 경제적 약자를 보호막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우려했다.
소상공인연합회장을 지낸 최승재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차등 적용 안건 부결에 대해 "소상공인과 영세 자영업자는 안중에도 없이 오로지 노동자만을 위한 노동 일변도의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공익위원들이 어느 일방의 의견만을 대변하고 한쪽에 편중된 결정을 지속해 내리고 있다"면서 "본 의원이 지난 2020년 발의한 사업 규모별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위한 최저임금법은 3년째 논의조차 이루지 못하고 있다. 노동자만을 대변한다고 편중된 거대 야당 민주당이 막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최 의원은 노동계의 인상안을 두고도 "이미 알바생보다도 돈을 벌지 못하는 '사용자 보수월액 간주 규정'에 따라 건보료를 납입한 자영업자가 100만 명에 달하는 실정"이라며 "금속노조가 평균 월급 480만 원 받아 갈 때, 자영업자 소상공인은 최저임금 근처도 못 가는 금액으로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다. 자영업자 부채는 이미 1000조 원을 넘어섰고 연체율은 역대 최대를 기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22일 최저임금위원회 근로자위원인 류기섭 한국노총 사무총장이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최저임금 최초 요구안 발표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모두 발언을 하던 당시. /이동률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부터 여러 차례 언급해 온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 적용은 전날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7차 전원회의에서 부결됐다. 찬성 11표, 반대 15표로, 반대표가 근로자위원 수(8명)보다 많아 공익위원 상당수도 반대표를 던졌다.
경영계는 강하게 반발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심각한 우려와 유감을 표명한다"면서 "구분 적용이 무산된 이상 내년 최저임금은 반드시 현재 최저임금 수준을 감당하지 못하는 어려운 업종을 기준으로 결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영계는 아직 요구안을 제시하지는 않았으나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동결'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노동계는 적정 가구 생계비를 근거로 올해 최저임금 9260원보다 26.9% 인상된 시간당 1만2210원을 최고 요구안으로 제시했다.
노사 입장차가 커서 논의에 진통이 예상되는 가운데 구속된 근로자위원 김준영 한국노총 금속노련 사무처장의 공석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도 난제다. 윤 대통령은 이날 김 사무처장에 대한 해촉을 재가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21일 김 위원을 "근로자위원으로서 품위를 심각하게 훼손해 위원으로서 적합하지 않다"며 윤 대통령에게 해촉을 제청했다. 김 사무처장은 전남 광양에서 망루 농성을 벌이다 경찰과 충돌해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지난 2일 구속됐다.
김 사무처장의 해촉을 두고도 정부와 노동계는 충돌했다. 노동부가 해촉을 제청한 뒤 한국노총은 성명을 내고 "김 위원이 법정구속 상태인 점을 이용해 강제 해촉 절차를 진행하는 것은 최저임금위원회 내에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다"면서 "정부의 각종 위원회에 직능단체를 대표해 참석하는 위원들을 마음대로 해촉하는 것은 노동부의 월권이며 직권남용"이라고 반발했다.
한국노총은 또 김 위원의 자리를 김만재 금속노련 위원장으로 교체를 추진했으나, 노동부는 "해촉을 제청하는 위원과 동일한 사유로 수사받는 대상"이라며 난색을 보였다. 김 위원장도 김 위원과 함께 농성 중 체포돼 불구속 상태로 수사를 받고 있다. 한국노총은 "무죄추정의 원칙이 있는데, 구속된 것도 아닌 김 위원장에 정부가 된다, 안 된다고 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면서 "정부 입맛에 맞는 사람만 위원에 임명시키겠다는 것은 월권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지현 한국노총 대변인은 통화에서 "정부의 노동 탄압 기조의 연장선"이라며 "최저임금위원회뿐만 아니라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윤택근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을 해촉한 것 등 각종 정부 위원회에서 노동계를 배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주 69시간제 등 정부의 노동 정책에 대한 노동계의 우려와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노동계와 대화할 의지가 전혀 없다"면서 "최저임금위원회의 근로자위원이 한 명 부족해졌는데, 내년도 최저임금이라는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최악의 경우 그대로 표결을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