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내에서도 미지근한 반응...野 "정치 혐오에 기댄 포퓰리즘" 비판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정치개혁'의 방안으로 '의원 정수 축소'를 꺼내든 가운데 정치권 안팎에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회의적인 반응이 나온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407회국회(임시회) 5차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뉴시스 |
[더팩트ㅣ국회=조성은 기자]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개혁 의제 '의원 정수 축소'를 꺼냈지만, 실현 가능성은 떨어지고, '인기 영합용 공수표'라는 비판이 나온다.
21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의원 정수 축소'는 논의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윤재옥 원내대표는 의총이 끝난 뒤 취재진과 만나 "(향후) 의원총회를 열어서 총의를 모아보겠다"면서 "오늘은 시간적인 제약도 있고 불체포 특권 관련해 의견을 수렴했다"고 했다.
윤 원내대표는 의석수 감축과 관련한 법안 발의를 묻는 말에는 "(정치개혁과 관련해) 곧 정개특위에서 선거법 협상이 있을 것"이라며 "논의하면서 양당 입장이 합의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민주당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지적에는 "국민이 원하고 있기 때문에 민주당도 여론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김 대표는 전날(20일) 국회 교섭단체대표연설에서 "국회의원 정수 10% 감축"을 주장하며 "정답은 민심이다. 주권자인 국민께서 국회의원 수가 많다고 생각하시는 데엔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지난 4월 선거제 개편 논의를 위한 국회 전원위원회 개최를 앞두고 '의원 정수 축소'를 주장한 바 있다.
당내에서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비례 의석을 확대하면 지역구 의석이 줄어드는데, 여야를 막론하고 의원들이 이를 반기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공은 민주당에 넘어갔다'는 입장이다. 한 중진 의원은 "다수당인 민주당이 반대하면 어차피 안 될 일"이라고 일축했다. 한 초선 의원도 "국민이 그걸 바란다면 민주당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면서도 "민주당은 물론이고 의원들 상당수가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 관계자는 "김 대표는 정치개혁이라고 했는데 단순히 사람을 줄인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선거구제 등과 맞물린 아주 복잡한 문제"라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조해진 국민의힘 의원도 이날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비례를 축소하거나 없애는 식으로 전체 의석을 줄여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면서도 "민주당이 의석수를 늘리는 쪽으로 당론을 정하고 우리가 줄이는 쪽으로 정한다면 그 당론을 가지고 여야 간 대화하고 소통하며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그러면서 최종 의견을 조정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20일 열린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은 '비례대표를 확대해야 한다'는 공론조사 결과를 두고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토론자가 편향됐다"고 비판했다. 야당은 공론조사위 구성은 여야 합의로 이뤄지지 않았냐고 반박했다. /뉴시스 |
김 대표 주장에 "정치개혁의 발목을 잡으려는 시도"라는 비판도 있다. 정개특위 소속 야당 의원은 "정치혐오 정서에 기댄 포퓰리즘이자, 실제로는 기득권 강화를 위한 선언"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국회의원 중에서도 기득권은 지역구 의원이다. 영남 이런 곳은 국민의힘의 텃밭"이라면서 "지역구 숫자를 그대로 두고 비례 의석을 축소해 마치 정치개혁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기 기득권 철밥통을 지키겠다는 아주 강고한 수호 의식"이라고 비판했다.
김찬휘 선거제도개혁연대 대표는 "정치개혁을 막기 위해 강수를 둬서 어느 정도 수준에서 마무리하려는 것 아니겠냐"고 보았다. 그러면서 "비례대표가 늘어나면 기득권이 축소되니 그러는 것 아니겠냐"고 꼬집었다.
학계와 시민사회에서는 나아가 '의원 정수 확대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이 모인 상태다. 핵심은 비례대표 의석 확대다. 의원 정수를 유지한 채 비례 의석을 늘리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국회의원 1인당 대표하는 국민의 수, 국회의 다양성 확보, 행정부에 대한 효과적인 견제 등을 고려했을 때 의원 정수 확대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정개특위도 앞서 여야 논의 끝에 '의원 정수 확대'를 꺼내 들었지만, 여론의 반대로 '정수 유지'로 선회했다.
여론은 달라지고 있다. 지난달 1~13일 시민참여단 469명을 대상으로 한 공론조사 결과 300석 의석을 유지한다고 했을 때 지역구를 줄이고 비례를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70%에 달했다. 의원 정수 확대와 관련해서는 찬성하는 의견이 13%에서 33%로 증가했다. 65%로 압도적이었던 축소 의견도 37%로 줄어들며 차이를 좁혔다.
김 대표는 "두 번의 공론조사에서 비례대표 확대 지지율이 늘어났다"면서 "정보가 충분히 주어지니 국민의 판단이 달라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공론조사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전문가 토론'이 편향적이었다"며 조사 결과를 부정했다. 야당은 공론조사위 구성과 결과 발표 모두 여야 합의로 결정된 사안이기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토론에서 발제를 맡았던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전날(20일) 정개특위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의원 정수 축소'에 대해 "그렇게 말할 전문가가 없거니와, 국민들이 갖고 있는 정치혐오를 불러일으키는 방식"이라고 밝혔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의원 정수 축소'를 꺼낸 데에는 총선을 앞두고 정치개혁 이슈를 선점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407회국회(임시회) 제4차 본회의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교섭단체대표연설을 등던 중 잠시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젖힌채 생각에 잠겨 있다. /뉴시스 |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윤관석·이성만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 이래경 전 혁신위원장 사태 등으로 수세에 몰린 상황에서도 반사이익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윤석열 대통령의 '수능' 발언을 수습하는 데 진땀을 흘리고 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입시 전문가"라는 등의 발언으로 오히려 반감만 샀다는 의견이 나온다.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한 높은 반대 여론도 넘어야 할 산이다.
여론조사 기관 조원씨앤아이(C&I)가 스트레이트뉴스 의뢰로 지난 17~19일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2002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내년 총선에 어느 정당에 투표할 예정인가"라는 질문에 민주당이 44.3%, 국민의힘이 38.8%로 나타나며 민주당 투표 의향이 오차범위(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2.2%포인트) 밖에서 높았다. 정당 지지율에서도 민주당 41.2%, 국민의힘 38.7%로 집계됐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한국갤럽이 지난 13~15일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한 6월 3주 차 여론조사에서도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각각 34%로 같았다. 특히 함께 이뤄진 양당 대표에 대한 평가에서 김기현 대표가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29%,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은 57%를 기록했다. 이재명 대표가 '잘하고 있다'는 32%, '잘못하고 있다'는 60%였다.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이런 상황에 '의원 정수 축소' 카드를 꺼내 든 것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개혁' 이슈를 선점하려는 의도라는 분석과 함께 이 대표의 '불체포 특권 포기' 선언에 대한 맞대응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민주당은 최근 혁신위원회 인선을 마치며 수습을 마무리 짓는 수순에 들어갔다. '개혁' 이미지를 가져가면서 여론 악화에 돌파구의 계기가 될 수 있다.
더욱이 김 대표는 앞서 지난 4월에도 '의원 정수 축소'를 주장한 바 있다. 당시 열린 의원총회에서는 김 대표가 제안하는 수준에 그치며 당론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당시는 정개특위 합의안이 발표되고 국회 전원위원회를 앞둔 상태였다. 당 안팎으로는 태영호 전 최고위원과 김재원 최고위원의 설화로 '리더십 위기론'이 제기되던 때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국민의 국회 불신 정서를 이용한 여론몰이용 포석"이라며 "내년 총선을 앞두고 리더십의 위기를 타개하려는 시도"라고 분석했다.
그는 "의원 정수 축소는 당내에서도 동의할 수 없다. 안 될 걸 뻔히 알고 있을 것"이라며 그런데도 이를 던진 데에는 '오르지 않는 당 지지율'을 짚었다. 그는 "민주당이 악재에 악재를 거듭하는데도 (지지율은) 국민의힘과 별 차이가 없다. 다시 말하면 국민이 국민의힘에 기대가 없다는 것"이라며 "김 대표는 집권당의 대표로서 정치를 주도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의제 선점도, 입법 성과도 없다. 야당과 '정치'가 아닌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면서 "대통령실의 명을 받들고, 야당에 대해 끊임없이 비난하는 것만으로는 내년 총선에서 승리할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