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리스크', '민주당 방탄 프레임' 돌파 승부수 분석
與 비난 속 당내 긍정 평가 기류…"당내 소란 덜할 듯"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9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자신을 향한 검찰 수사에 대해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남용희 기자 |
[더팩트ㅣ국회=신진환 기자] "저를 향한 정치 수사에 대해 불체포 권리를 포기하겠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9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이같이 선언했다. 애초 연설 원고에 없던 부분으로, 말 그대로 '깜짝 발언'이다. 지난 3월 대장동·위례 신도시 개발 특혜와 성남 FC 후원금 뇌물 의혹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그가 자신의 사법 리스크와 당 악재 돌파를 위해 승부수를 띄웠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대표는 이날 경제와 외교, 정치 등 분야를 망라해 윤석열 정부를 비판했다. 특히 사정 당국에 대한 불만을 공개 표출했다. "압수수색, 구속기소, 정쟁에만 몰두하는 윤석열 정권을 두고 '압·구·정 정권'이라는 비판이 공감되지 않을 수 없다", "헌법 가치를 수호하고 국민 인권을 보호해야 할 검찰은 '우리' 대통령을 지킨다며, 국민을 향해 쉼 없이 칼을 휘두른다" 등 대목이 대표적이다.
이 대표는 위례 신도시·대장동 개발 특혜와 성남 FC 후원 의혹에 관해선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배임·뇌물)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이 대표는 성남시장 재직 당시 민간업자 등에게 유리한 대장동 개발사업구조를 승인해 성남도시개발공사에 4895억 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를 받는다. 또한 측근에게 직무상 비밀을 흘려 민간업자들이 부당이익을 얻게 한 혐의도 있다.
또한 성남 FC 구단주 당시 2014~2016년 네이버, 두산건설 등 기업들로부터 후원금 명목의 대가로 건축 인허가나 토지 용도 변경 등 편의를 제공한 혐의도 받는다. 이 대표는 자기 혐의에 대해 전면 부인하고 있다. 오히려 검찰의 무리한 수사·기소라며 반박하고 있다. 아울러 검찰은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 백현동 특혜 개발 의혹 등 이 대표와 관련한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이재명 대표는 19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압수수색, 구속기소, 정쟁만 일삼는 무도한 '압구정 정권'의 실상을 국민에 드러내겠다"고 말했다. 지난 대선에서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 대표가 지난 2일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는 모습. /박헌우 기자 |
자신을 겨누는 이런 검찰의 행태는 정치적 탄압 수사라는 게 이 대표의 시각이다. 그는 검찰의 전방위 압수수색에 대해 "자신들의 무능과 비리를 숨기고 오직 상대에게만, 사정 칼날을 휘두르면서 방탄 프레임에 가두는 것이 바로 집권여당의 유일한 전략"이라며 "이재명을 다시 포토 라인에 세우고 체포동의안으로 민주당의 갈등과 균열을 일으키는 것인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이제 그 빌미마저 주지 않겠다. 저를 향한 저들의 시도를 용인하지 않겠다"면서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검찰이 저를) 소환한다면 10번이 아니라 100번이라도 응하겠다.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제 발로 출석해 영장실질심사를 받고 검찰의 무도함을 밝히겠다. 압수수색, 구속기소, 정쟁만 일삼는 무도한 '압구정 정권'의 실상을 국민께 드러내겠다"고 했다.
이 대표가 불체포 특권을 포기하겠다고 한 배경은 '민주당 방탄' 프레임을 걷어내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노웅래(뇌물수수 등 혐의) 의원과 이 대표(배임 등)에 이어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에 연루된 윤관석·이성만 무소속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지난 12일 부결됐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방탄 정당'이라는 여당의 비판을 정통으로 맞고 있다. 이 대표가 지난 대선 후보 시절 불체포 특권 폐지 공약을 내걸었던 게 부메랑으로 되돌아온 모양새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 연설 직후 논평에서 "이미 겹겹이 방탄조끼를 입어놓고서 사과 한마디 없이 큰 결단이라도 하는 것처럼(중략) 5분 신상발언을 보는 듯한 몰염치의 극치(유상범 수석대변인)', "본인의 사법 리스크를 막기 위해 보궐선거와 당대표에 출마하고, 셀프 당헌 개정에, 체포동의안 부결까지 민주당을 '방탄 정당'으로 만들고, 전례 없는 나락으로 떨어뜨렸다(전주혜 원내대변인)"고 맹공을 가했다.
이재명 대표는 19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사정 당국을 향해 "체포동의안으로 민주당의 갈등과 균열을 노리는데 이제 그 빌미마저 주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새롬 기자 |
검사 출신 김웅 국민의힘 의원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대장동, 성남 FC 사건 등으로도 이미 불구속 재판을 받는 이재명을 백현동 비리만으로 구속하기에는, 법원으로서 부담스럽다"며 "이재명은 그런 계산을 하고 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나가더라도 영장이 기각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계산을 했기에 이번에는 출석하겠다고 말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대표의 불체포 특권 포기가 다소 늦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이 대표가)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 철폐를 윤관석·이성만 의원에 대한 표결 전 빨리 정리했어야 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 격이 됐다"면서도 "다만, 이 대표 처지에서는 위기에 벼랑 끝에서 그나마 좀 더 힘을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고 말했다.
당내에선 이 대표가 불체포 특권 포기를 선언하며 사법 리스크에 우려를 표하는 비명계의 요구를 어느 정도 수용, 내부 결속을 고려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계파색이 옅은 비명계 한 의원은 통화에서 "국민 앞에서, 정부·여당,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보는 가운데 떳떳하게 특권을 포기하겠다고 한 일은 잘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가 설령 억울한 측면이 있다더라도 앞으로 또다시 영장이 청구된다면, 저번(지난 2월 체포동의안 때)처럼 당내 소란은 덜하지 않을까 싶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