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도 제보도 아닌 취재 기자의 당연한 책무
양측의 '쓴소리'에 '씁쓸'...지난한 싸움 종식되길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등 시민단체들이 12일 오전 서울 용산구 용산구청 앞에서 박희영 용산구청장 사퇴를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장윤석 인턴기자 |
[더팩트ㅣ설상미 기자] "기자는 어떻게 알고 간 거죠? 기획인가요? 제보인가요?"(아이디 peac****, 네이버 댓글)
우려했던 반응 그대로였다. 결론만 말하면 기획도, 제보도 아니다. 한 네티즌은 "설상미 기자, 그 새벽에 부끄럽지도 않느냐"라고 했다. 이럴 땐 참 속상할 따름이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지난 7일 보석으로 풀려난 후 단 한 차례도 이태원 참사 유가족을 만나지 않았다. 언론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입장을 듣고 싶었다. 14일 오전 <더팩트>를 통해 보도된 [단독] '새벽 기도' 참석 박희영 용산구청장, 사퇴 압박 시위에 "면담 요청 없어"는 기자가 직접 보고 들은, 사실만을 가감 없이 쓴 기사임을 다시 한번 밝힌다.
13일 오후 박 구청장이 새벽 기도를 한 후 출근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기자는 용산에 거주 중이며, 5년 차 정치부 기자다. 교회를 알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정치부장에게 "박 구청장이 새벽 기도를 간다는데, 내일 다녀와도 될까요? 없으면 조용히 예배만 하고 출근하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조용히 다녀오라"는 부장의 답이 돌아왔다.
사실 크게 기대하진 않았다. 정가 관계자 역시 "박 구청장이 매일 새벽 교회에 가겠어요? 석방되고 하루 잠깐 다녀온 거겠지"라고 했다.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모를 일이다. 6월 14일 새벽 4시 반, 오랜만에 새벽 기도나 다녀오자는 마음으로 교회로 향했다.
택시를 타고 녹사평역 인근 교회에 도착했다. 예배 홀은 웅장하고 고요했다. 오른편에 자리를 잡았다. 눈을 감고 있다, 인기척에 뒤돌았다. 파리한 얼굴에 작은 체구, 검정 바지에 검정 재킷. 박 구청장이었다. 5시 21분쯤이다. 잠이 확 달아났다. 조용히 일어나, 박 구청장의 왼편 대각선 뒤 자리로 옮겼다. 열 명쯤 되는 성도들이 예배 홀 내에 자리했다. 취재를 하되, 교회 밖에서 박 구청장에게 입장을 묻겠노라 다짐했다. 오늘 이곳에 있는 성도들에게 내가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라 생각했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배우자와 함께 14일 서울 용산구 내 한 교회에서 새벽 기도를 드리고 있다. /설상미 기자 |
5시 30분 찬송가로 예배가 시작됐다. 박 구청장은 계속해 손을 만지작거렸다. 박 구청장 사진을 찍어 부장에게 보냈다. "이렇게(봐서)는 모르겠다"라는 부장의 답이 돌아왔다. 몸으로 휴대폰을 가릴 수 있는 최대한의 높이에서 사진을 찍어도 각이 안 나왔다. '에라 모르겠다' 싶어 그냥 셔터를 눌러댔다. 그러다 딸깍 소리가 났다. 박 구청장이 기자 쪽으로 약간 고개를 돌렸다. 다행히 눈치를 못 챈 듯했다.
예배 내내 박 구청장은 힘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예배가 끝나자마자 예배 홀 밖으로 나와 박 구청장을 기다렸다. 불이 꺼진 예배 홀에서 성도들의 기도가 이어졌다. 그들 속에서 박 구청장의 기도 역시 길어졌다. 밖에서 서성이다 예배 홀로 다시 들어가 기도하는 박 구청장을 바라봤다. 박 구청장의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인간 대 인간으로 연민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6시 10분쯤 박 구청장과 배우자가 일어날 채비를 했다. 한 남성 비서가 박 구청장과 배우자를 보좌했다. 재빠르게 나가 엘리베이터를 먼저 탄 채 기다렸고, 그들이 곧이어 합류했다. 박 구청장과 눈이 마주쳤다. 이번 취재에서 가장 긴장됐던 순간이었다. 넷이서 좁은 엘리베이터를 같이 탄 채로 1층으로 내려갔다. 박 구청장은 작은 목소리로 배우자에게 "속이 안 좋으니, 약을 좀 달라"라고 했고, 배우자는 "갖다주겠다"라며 "병원을 가보자"라고 대답했다.
1층에 내린 후 박 구청장에게 바로 붙어 질문했다. 아래는 박 구청장과의 대화다.
-기자 : 구청장님 안녕하세요. 더팩트 설상미 기자라고 합니다.
-박 구청장 : 지금 제가 속이 너무 안 좋아요.
-기자 : 유가족분들에게 한 말씀만 해주시면 안 될까요.
-박 구청장 : 아 너무 죄송하죠. 제가 지금 속이 너무 안 좋아서. 아까 말 들으셨죠. 제가 너무 많이 아파요. 유가족들한테 너무 죄송하죠.
-기자 : 앞으로 사퇴 계획 얘기가 계속 나오고 있는데.
-박 구청장 : 제가 선출직이라서. 여러 가지 그거를 반영해서. 우선은 지금 제가 업무 복귀한 지 얼마 안 됐잖아요.
-기자 : 유가족분들은 언제쯤 만나실 계획이신가요.
-박 구청장 : 제가 지금 진행 중인 법적인 그런 부분도 반영해서. 죄송해요. 들으셨지만, 거짓말이 아니라, 속이 너무 아파요. 궁금하신 건 저희 언론 홍보라인 통해서 하시면 아주 성실하게. 어떻게 이렇게 제 교회 생활까지. 하시는 건 좀.
-박 구청장 : 제가 아프단 걸 거짓말로 하지 않는다는 거 아셨잖아요. 제가 너무 많이 아픕니다. 유가족을 위해서는 정말 기도 많이 하고 있고요. 위할 수 있는 방법들은 최대한 찾고 있습니다. 제가 무슨 말씀을 드려도 얼마나 속상하시겠어요. 그리고 지금 보석될 때 여러 가지 제한들이 있습니다. 피해자 측이랑 불필요한 접촉을 해선 안 되지만. 구청장으로서는…. (면담 요청) 하지 않으셨어요. 제가 유가족을 위해서 매일 매 순간 추념할 수 있도록. 이렇게 새벽부터 오는 건 오늘만 해주세요.
-기자 : 알겠습니다.
-박 구청장 : 제가 거짓말로 아프다고 하는 거 아니라는 거 들으셨잖아요. 제 남편이 언론인이기 때문에 언론을 회피하거나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유족들한테 다 만족스러운 회답이나 뭘 들을 수 없는 입장이기 때문에 그런 거지. 일부러 피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원하시는 답변을 드리면 좋은데 상황이 지금 그렇지 않고. 전 부구청장 처음 봤습니다. 1월 1일 발령됐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업무를 다시 제가 가져오면서 업무의 연속선상에 있는 건 계속 부구청장께서 해주십사 하는 거예요. 제가 지금 너무 힘들고, 교인으로서 회개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가겠습니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일대를 찾은 시민이 '이태원 참사 기억의 길'에 고인을 기리며 메모를 붙이고 있다. /서예원 인턴기자 |
기사는 이날 정오 전에 출고됐다. 즉각, 박 구청장 측에서 항의 연락이 왔다. 현장에서 묻고 답한 그대로 기사를 썼지만, 그들에게는 기사 내용이 불편했던 것 같다.
2022년 10월 29일. 159명의 목숨을 앗아간 그 대형 참사가 있던 날, 기자는 당직을 서고 있었다. 그래서 시간 단위로 그날을 기억한다. 새벽 내내 울렸던 앰뷸런스 소리마저 또렷하다. 249일이 지난 현재, 유가족들은 여전히 용산구청 앞에서 지난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한 유가족 관계자는 "본인이 구청장직에서 사퇴한 후 가족들에게 진정히 사과한다는 뜻을 밝힌다면 면담을 고려해 보겠다"고 말했다. 이 참사가 벌어진 후 책임을 지고 사퇴한 정부 공직자는 단 한 명도 없다.
박 구청장을 만난 날, 목회자는 구약성경 이사야서 말씀을 바탕으로 "우리나라를 긍휼히 여기고, 삶 속에 삶을 감당하기 위해 이겨내고 있는 사람들을 기억해달라"고 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기리며, 삶 속에 삶을 감당하기 위해 하루하루 버티고 있을 유가족들의 안녕을 간절히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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