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화' 개념 혼재…사회복지시설 민간 위탁 99%
한국 공공 사회복지 지출 규모 'OECD 최하위'
윤석열 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지속가능한 복지' 전략을 두고 논쟁이 뜨겁다. 야권은 정부가 복지 분야 민영화를 시도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한다. 지난달 3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사회보장 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윤 대통령. /대통령실 제공 |
[더팩트ㅣ박숙현 기자] "사회 보장 서비스 자체도 시장화가 되고, 산업화가 되고, 경쟁 체제가 돼야 한다."
지난달 31일 윤석열 대통령이 사회보장 전략회의를 직접 주재하며 '사회 서비스 경쟁 체제 도입'을 핵심으로 하는 윤석열 정부의 복지 정책 기조를 발표하자, 야권과 시민단체가 "민영화 포문"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공적 영역이 부담해야 할 사회 서비스를 민간 주도로 전환하면 복지 서비스 차별화가 이뤄지면서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한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사회 서비스 경쟁 체제' 도입을 둘러싼 세 가지 주장을 짚어봤다.
[검증 대상]
1. 윤석열 정부의 '사회 복지 서비스 시장화'는 민영화를 의미하나.
2. 현재도 사회 복지와 사회 서비스는 99%가 민간 위탁하고 있나.
3. 한국의 공공 사회 복지 지출 규모는 OECD 최하위 수준인가.
[검증 방법]
대통령실 '사회보장 전략회의' 브리핑 자료, 보건복지부 '국민이 체감하는 선진 복지국가 전략 수립' 보도자료,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고서, 보건복지부 2022년 통계연보 등
'민영화' 정의는 크게 두 가지다. 반대하는 측은 '정부 역할을 축소하고 민간 부문 역할을 증대시키는 행위'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지난 2일 국회 소통관에서 윤석열 정부의 복지 정책 규탄 기자회견을 하는 시민단체. /참여연대 제공 |
◆사회 복지 서비스 고도화는 민영화? 판단 보류
윤석열 정부가 지난달 31일 발표한 '지속가능한 복지국가' 비전의 핵심은 현금 복지는 취약계층에 집중하고 돌봄과 교육 등 사회 서비스에 경쟁 체제를 도입, 시장화해 사회 서비스 고도화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대통령실은 '사회 서비스 고도화 추진 방향'에 대해 "취약계층 위주 사회 서비스를 중산층으로 확대하고, 복지 기술, 적극적 규제 개선 및 투자, 경쟁 여건 조성 등을 통해 좋은 일자리 창출과 '복지-고용-성장' 선순환을 달성하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즉, 현재 취약계층 위주인 사회 서비스 대상자를 중산층으로까지 확대하고, 소득 수준에 따른 본인 부담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이는 정부의 사회 보장 분야 최상위 계획인 '제3차 사회보장기본계획('24~'28)'에도 담길 예정이다.
정부의 사회 서비스 고도화를 달성하기 위한 방향 중 '양질의 민간 공급자 육성' 계획을 두고 야권과 시민단체는 "사회 복지 서비스 분야의 민영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것(민주당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회의원 일동 및 돌봄 공공성 확보와 돌봄권 실현을 위한 시민연대, 2023년 6월 2일 기자회견)"이라고 주장했다.
사회 서비스 고도화가 민영화인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선 '민영화(privatization)' 개념의 명확한 정의가 필요하다. '사회 복지 서비스 전달 체계의 민영화 쟁점과 과제(최재성 연세대 교수, 한국사회복지학회)'에서는 민영화와 관련해 일반적으로 두 가지 정의가 있다고 봤다. "사회 복지 서비스의 생산과 전달을 공공부문에서 민간 부문으로 이양하는 것"이라는 좁은 의미, "재산(assets)의 소유나 관련 사항에 있어서 정부의 역할을 축소하는 행위나, 혹은 민간 부문의 역할을 증대시키는 행위"라는 넓은 의미의 민영화가 그것이다. 야권과 시민단체는 '국가의 역할 축소'와 '시장의존형 복지 시도'에 초점을 두고 '사회 보장 서비스 고도화 전략'을 민영화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정부는 사회 보장 서비스 고도화를 "국민 모두가 사회 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서비스의 양과 질을 확충하는 것"이라고 모호하게 정의하고 있다. '양질의 민간 공급자 육성' 방안에 대해서도 정부는 "컨설팅 강화와 자금 지원을 확대하는 한편, 경쟁 원리 도입과 서비스 품질 제고 방안도 마련한다"는 내용만 밝힌 상태다. '경쟁 원리 도입'으로는 아이돌봄 서비스의 경우 시군구별 제공기관을 복수로 지정하거나 장기요양원 부실기관 퇴출, 지역사회 바우처 지역 칸막이 제거 등을 예로 들었다. 사회 서비스 고도화 관련 정부의 구체적인 계획이 아직 나오지 않았고, 민영화 정의가 통일되지 않아 관련 주장은 판단을 보류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가격탄력제 등을 도입해 중산층이 본인 부담을 더해 고품질의 서비스를 제공받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2년 9월 27일 세종 도담동 아이누리어린이집을 방문해 아이들과 함께 아나바다 시장놀이를 참관하고 있는 윤 대통령. /뉴시스 |
◆현재도 사회 복지와 사회 서비스는 99%가 민간 위탁?...대체로 사실
"지금도 사회 복지와 사회 서비스는 99%가 민간에 위탁돼 있다. 이로 인해서 혈세 낭비는 일상이 되었고 서비스의 질은 바닥이고, 서비스를 직접 제공하는 돌봄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 조건으로 고통받고 있다.(2023년 6월 1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사회 서비스 시장화' 반대 측이 내세우는 근거 중 하나는 역대 정부와 해외에서도 민간 주도 사회 복지 서비스 정책을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했다는 것이다. 특히 현재도 대부분의 사회 복지와 사회 서비스를 민간에 위탁하고 있지만, 서비스의 질이나 종사자의 처우가 열악하다고 주장한다.
'2022년 보건복지통계연보'에 나온 우리나라 사회복지시설 운영 주체(2021년 기준)에 따르면 총 6만594개 시설 중 지자체가 직접 운영하는 시설은 399곳(전체의 0.56%), 지자체에 설치하거나 법인 등 민간이 운영하는 시설은 총 6만195곳(99.3%)이다. 시설은 △아동 △장애인 △정신보건 △노숙인 결핵 및 한센 △지역자활센터 △사회복지관 △어린이집 등을 포함하고 경로당과 노인교실은 제외했다. 이를 볼 때 사회 복지 시설의 99%가 민간 위탁 방식이라는 주장은 대체로 사실로 판단된다.
2021년 기준 한국 사회복지시설 운영 방식은 99%가 민간 위탁이다. 서비스업 종사자 처우는 열악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
'종사자 처우'는 대표적으로 임금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 지난해 11월 21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펴낸 '보건 복지 이슈 앤 포커스'를 보면, 2020년 사회 서비스 산업 전체 취업자의 월평균 임금은 225만 원으로, 오히려 2019년 226만7000원보다 1만7000원 줄었다. 이중 요양보호사나 사회복지사, 간호사 등 15개 핵심 산업군 취업자 월평균 임금은 196만2000원으로, 1년 전보다 6만 원 줄었다. 전체 사회 서비스 산업 종사자 수는 2016년 346만1000명에서 2019년 390만6000명으로 늘었지만, 같은 기간 임시·일용직 비중은 24.1%에서 29.0%로 늘었다.
정부도 '서비스업 종사자의 열악한 처우'에 대한 문제 인식을 갖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사회보장 전략회의'에서 "서비스에 종사한다는 사람들도 늘 불만이다. '왜 나한테 주는 월급과 보상이 이 정도밖에 안 되냐'고. 또 서비스를 받는 국민 입장에선 서비스 질이 나쁘다고 얘기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해법으로 '사회 서비스 경쟁 체제 도입'을 강조했다. 경쟁 체제가 형성되면 생산성이 향상되고, 서비스 복지 종사자들에 대한 보상 체계도 개선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방안은 서비스 비용 상한을 완화하고 가격탄력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가격탄력제란 정부지원금에 서비스 공급자의 역량에 따라 '본인부담금'을 내도록 해 가격을 차등화하는 것이다. 올해 하반기부터 시범사업을 실시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반대 측은 궁극적으로 서비스의 질이 소득의 높고 낮음으로 차별화되면서 사회적 약자들이 질 좋은 복지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하고, 소외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한국의 공공 사회 복지 지출 규모는 2019년 기준 OECD 38개국 중 36위, 2022년 잠정치 기준 34위다. /OECD 사회 지출 관련 통계 |
◆한국, 공공 사회 복지 지출 규모 OECD 최하위 수준? 대체로 사실
'경쟁 체제 도입'에 반대하는 이들은 '사회 서비스 산업 발전'에 대해 정반대 해법을 제시한다. 한국의 사회 복지 공공 지원 규모가 다른 국가들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 수준이며, 초저출생·초고령사회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시장화가 아니라 오히려 국가 책임을 강화하고 공공복지 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근거로 "우리나라는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이면서도 공공 사회 복지 지출 규모는 OECD 최하위 수준"이라고 주장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사회 지출(Social Expenditure) 업데이트 2023' 보고서에 따르면 이는 대체로 사실이다. 2019년(확정치 기준) 한국의 공공 사회 복지 지출 규모는 235조9000억 원(GDP의 12.3%)으로, OECD 38개국 중 36위를 기록했다. 이는 OECD 회원국 평균(20.1%)의 61.2%인 최하위 수준이다. 지표에서 '사회 지출'이란 노령, 질병, 실업, 재해 등에 직면한 개인에 대한 공적제도에 의한 현금이나 재화 서비스, 재정적 지원을 의미한다. OECD는 2022년에는 한국의 GDP 대비 공공 사회 복지 지출 규모가 14.8%에 이를 것이란 잠정치도 밝혔다. 이 경우에도 한국의 지출 규모는 OECD 38개국 중 34위로 하위권이다.
한편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민주당 의원 일동과 돌봄 공공성 확보와 돌봄권 실현을 위한 시민연대는 오는 19일 국회에서 "'혁신인가, 퇴행인가' 윤석열 정부 사회 서비스 정책 문제 진단 토론회"를 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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