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이재명 두고 "굴욕외교" 맹공
민주당 의원 방중에도 비판 쏟아내
싱하이밍 주한 중국 대사의 '베팅' 발언으로 한중관계가 한층 더 얼어붙었다. 정부·여당은 중국 측에 싱 대사에 대한 조처를 촉구하는 한편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굴종 외교'라고 비판했다. 싱하이밍 주한 중국 대사가 8일 저녁 서울 성북구 중국대사관저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예방을 받고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시스 |
[더팩트ㅣ국회=조성은 기자] '베팅' 발언으로 외교적 결례 논란을 빚은 싱하이밍 주한 중국 대사의 거취 문제를 두고 국민의힘 내에서는 추방 주장이 나오는 한편 싱 대사와 회동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화살을 돌렸다. 국민의힘은 민주당 의원들의 중국 방문에 대해서도 '조공 외교'라며 날을 세웠다. 여야 간 정쟁과 얽히며 한중관계가 더욱 경색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4일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마치고 취재진과 만나 "(싱 대사의) 부적절한 처신에 대해 정부·여당이 입장을 밝혔다"며 "중국 측의 조치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윤 원내대표가 말한 '중국 측의 조치'는 싱 대사의 소환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민주당 일부 의원들의 중국 방문에 대해 "시기적으로 적절하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이날 민주당 민생경제위기대책위원회 소속 김태년·홍익표·고용진·홍기원·홍성국 의원이 지난 12일부터 3박 4일 일정으로 베이징을 방문 중인 사실이 알려졌다. 이들의 중국 방문은 중국의 초청으로 2개월 전부터 준비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쑨웨이둥 중국 외교부 부부장 등을 만나 중국의 한국 단체관광 규제와 한한령을 풀 것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민수 국민의힘 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민주당은) 여당 때도, 야당인 지금도 오직 '굴종 외교'로 국격을 훼손하고 있다"면서 "민주당은 이런 외교 참사를 벌려놓고도 수습은커녕, 중국 외교부 초청을 받았다며 배알도 없이 의원 5명을 중국에 보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는 한중관계에 리스크를 더하는 것"이라며 "중국이 굴종적인 민주당을 활용해 대한민국 국론을 분열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의 핵심 가치와 이익을 지켜야 할 공당이 자신들의 지지층 결집을 위해서 무조건적인 정부 비난과 함께 외교 영역까지 이용하려다 중국에 역이용만 당하는 꼴"이라며 "외세를 끌어들여 국내 정치에 이용하는 것은 '외환의 죄'를 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전주혜 원내대변인도 "민주당은 단순한 의원 외교일 뿐이라며 방문 취지를 축소했지만, 이는 명백한 국격 훼손 행위"라며 "중국의 심기를 살피기 위해 '조공', '알현' 외교를 자처하는 민주당의 모습을 보며 대체 어느 나라의 정당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중국은 높은 산봉우리이고 우리는 작은 나라'라 칭했던 문재인 전 대통령의 사대주의, 패배주의 의식에서 이제 벗어나라"고 했다.
싱하이밍 주한 중국 대사 발언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13일 "주한 중국 대사의 부적절한 처신을 국민께서 아주 불쾌해하신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충북 청주 문화제조창 중앙광장에서 열린 평택~오송 고속철도 2복선화 사업 착공 기념식에서 기념사하고 있다. /뉴시스 |
정부·여당은 싱 대사의 거취를 두고 강경한 입장을 내비쳤다. 윤석열 대통령은 전날(13일) 국무회의에서 "한중관계는 상호 존중과 우호 증진, 공동 이익 추구가 대원칙"이라며 "주한 중국 대사의 부적절한 처신을 국민께서 아주 불쾌해하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은 지난 12일에도 "가교 역할이 적절하지 않다면 본국과 주재국의 국가적 이익을 해칠 수 있다"고 한 바 있다. 사실상 중국 정부에 싱 대사의 교체를 공개적으로 요구한 것으로 해석됐다.
싱 대사는 지난 8일 이재명 대표와의 만찬 회동에서 "미국이 전력으로 중국을 압박하는 상황 속에서 일각에선 미국이 승리하고 중국이 패배할 것이라고 베팅하는 것 같은데 이는 분명히 잘못된 판단"이라며 "아마 반드시 후회할 것"이라고 말해 논란이 일었다.
국민의힘은 싱 대사를 페르소나 논 그라타(외교적 기피 인물)로 지정하고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문제의 발언이 나온 자리에 함께한 이 대표에 대해 '굴욕 외교'라며 공세를 폈다.
이철규 당 사무총장은 13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싱 대사의 발언이 있던) 지난 6월 8일은 조선 말기 청나라의 위안스카이가 조선에 내정 간섭한 것에 버금가는 치욕적인 날"이라며 "싱 대사의 무례한 태도와 언행은 부적절한 정도를 넘어 외교관의 자격마저 재고해야 할 중대한 사안"이라고 밝혔다.
그는 "거대 야당의 대표가 한낱 국장급에 불과한 중국 대사의 관저까지 찾아가 국민의 자존심을 짓밟고 국격을 스스로 깎아내렸다"며 "이 대표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로 15분간 훈시를 듣는 모습에 국민의 심정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참담하기 그지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간사인 김석기 의원도 "싱 대사의 공식 사과를 요구한다"면서 "이에 응하지 않거나 이런 무례가 반복된다면 페르소나 논 그라타로 지정해 추방하는 조치를 취할 것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천안함의 최원일 전 함장의 면담을 거부하는 등 호국 영웅들에게 그렇게도 뻣뻣한 자세로 일관하던 이 대표가 공손한 자세로 앉아서 일개 국장급 외교관인 싱 대사의 훈계를 받아적는 모습을 보고 국민은 참담한 심정이었다"며 "이 대표는 국민에게 굴욕감을 느끼게 한 자기 행동에 큰 책임감을 느끼고 국민께 사과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만약 주한 일본 대사가 이 대표에게 싱 대사와 같은 무례한 태도를 보였다면 아마 민주당은 당장 일본 대사를 추방하고 우리 정부가 직접 일본에 항의하라고 할 것"이라며 "민주당은 중국에 대해선 일관되게 쩔쩔매는 태도를 보이면서 유독 우방인 일본에 대해선 어떻게든 반일 감정을 고취하기 위해 혈안이 된 듯한 자세를 보인다"고 했다.
그러나 정부여당의 싱 대사 비토 기류에도 중국은 싱 대사에 대한 징계나 소환 등의 조치를 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3일 "대사가 한국의 각계각층 인사들과 광범위하게 접촉하고 교류하는 것은 그 직무이며 그 목적은 중한관계의 발전을 유지하고 추동하는 것"이라며 "대대적으로 부각할 화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싱하이밍 주한 중국 대사 추방을 주장하면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향해 "굴욕 외교"라고 공세를 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 발언하고 있다. /이새롬 기자 |
국민의힘은 14일에도 싱 대사와 중국 정부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 조경태 의원은 이날 BBS 라디오 '전영신의 아침 저널'에 출연해 "(싱 대사의 발언은) 중국이 구한말 시대 때 철저하게 내정 간섭을 했던 연장선에 있는 것"이라면서 "즉각적으로 싱 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함으로써 이 문제를 일단락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싱 대사와 만난 이 대표에 대해서도 "판을 깔아준 그런 외교 행위, 정치 행위는 상당히 부적절한 처신"이라며 "우리나라를 얕잡아보고 업신여기는 대사를 왜 만나서 그 판을 깔아줬는지 석고대죄하는 마음으로 입장 표명을 해야 한다"고 했다.
여당 일각에서는 싱 대사 추방 주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현 상황이) 한중관계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 같다. 이런 식으로 계속 추방(얘기)까지 가는데 추방까지 가서는 안 된다"며 "이런 걸 가지고 (전화위복 삼아) 오히려 새롭게 뭔가 돌파구를 열어야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럴 때일수록 어떤 문제의 본질을 찾기 위해서 물밑 대화를 하고 비공개 특사도 파견하고, 그러면서 전화위복을 만들어 가는 것 그게 바로 외교"라고 말했다.
그는 "한중관계가 악화가 돼서 이런 식으로 양국의 대사를 서로 추방하고, 만약에 경제 분야까지 가면 결국 우리한테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며 "이런 때일수록 한중 간의 전략적인 물밑 대화를 해야 한다. 그래서 왜 이런 식으로 한중관계가 흘러가고 있는지 서로 살펴보고 그걸 통해서 뭔가 새로운 계기를 만들어서 지금이야말로 한국과 중국 간의 전략대화를 개시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